김성진 대표가 구속된 것은 2016년 10월이다. 사문서위조, 사기 등 총 9개 혐의였다. 이 사건은 아이카이스트에 투자했다가 돈을 날린 피해자들 고발로 시작됐다. 수사는 대전지검 특수부가 맡았다. 2018년 9월 대법원은 김 대표 상고를 기각하고 징역 9년, 벌금 31억 원의 형을 확정했다. 아이카이스트는 김 대표 구속 후 폐업했다.
그로부터 5년여 뒤, 잊혔던 사건이 다시 회자된 것은 지난해 대선 과정에서였다. 한 유튜브 채널은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2013년과 2015년 김 대표로부터 성접대를 받았다고 주장했다. 이 대표는 시종일관 이를 강하게 부인했지만, 국민의힘 윤리위원회는 7월 8일 이준석 대표에게 ‘당원권 6개월 정지’ 결정을 발표했다. 이 대표 소명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는 게 윤리위 입장이었다.
이 대표 징계를 두고 여러 정치적 해석이 나오고 있는 것과는 별개로 정가의 레이더는 김 대표가 구속됐던 2016년경으로 향하는 모습이다. 김 대표가 이 대표를 비롯한 정·관계 인사들과 친분을 쌓으며 민원을 넣고 로비를 벌였다는 의혹 때문이다. 한 국민의힘 의원은 “김 대표가 이 대표에게 접대를 했다고 주장하는 시기는 2013~2015년이다. 그때 이 대표는 국회의원도 아니었다. 실력자라고 보긴 힘들었다”면서 “이 대표는 김성진 인맥의 곁가지에 불과할 것”이라고 했다.
2016년 검찰 수사 과정에서도 이를 뒷받침하는 첩보와 증언들이 여럿 나온 것으로 전해졌다. 아이카이스트 투자 관련 업무에 관여했던 한 관계자는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대전지검 요청으로 참고인 조사를 받았다. 김 대표가 이 대표와 어울렸다는 내용도 진술했다. 당시 수사관이 김 대표와 자주 만나던 여야 국회의원들, 금융권 인사들, 언론인, 연예인들에 대해 물어봤는데 내가 알고 있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아 놀란 적이 있다”고 전했다.
김 대표 한 지인은 2015년 여름의 일화를 들려줬다. 그는 “김 대표가 대전에선 제법 유망한 사업가로 이름이 알려져 있던 때다. 서울의 한 고급 중식당에 초대를 받아 갔는데 정치권 인사들이 3~4명 와 있었다. 그중 2명은 2016년 총선 때 배지를 달았다. 또 대기업에서 재무를 담당하는 최고위 임원, 기자들도 같이 식사했다”면서 “김 대표 인맥이 전국구라는 걸 느꼈다. 이런 점들이 투자에도 유리하게 활용됐다”고 말했다.
검찰 수사 시작 후 피해자들 사이에선 김 대표가 구명 로비를 하고 있다는 얘기가 파다하게 돌았다고 한다. 평소 알고 지내던 정치권 인사 등을 통해 수사에 영향력을 미치려 한다는 게 골자다. 앞서의 아이카이스트 투자 관계자는 “김 대표 측이 ‘잘 해결될 것이니 예정대로 일을 하면 된다’고 했다. 상황이 이런데도 계속 투자자를 모아야 하나 고민을 했던 기억이 난다”고 말했다.
대검찰청에서도 사건을 보고받은 후 서울중앙지검 이첩 또는 대전지검으로의 인력 파견 등을 검토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주요 인사들에 대한 부적절한 접대, 정관계 로비 여부 등으로까지 번질 경우 그 파급력이 적지 않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대검에선 대전지검 자료에 더해 자체적으로 이른바 ‘김성진 파일’도 만들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한 검찰 관계자는 “김성진 사건은 대전지검에서 하는 것이고, 대검에선 주로 로비 부분에 집중을 했다. 김성진 대표가 다녔다는 유흥주점과 음식점을 상대로 탐문까지 했다”고 말했다.
당시 과정에 대해 잘 알고 있는 한 전직 검찰 간부는 “김성진 사건에 정치권 연루 가능성이 높다는 내용의 범죄첩보가 검찰 수뇌부로 올라갔다. 김 대표와 관련이 있는 인사들 실명도 적시됐다”면서 “하지만 여러 조건을 따져본 결과 대전지검이 계속 하는 걸로 정리됐다”고 했다. 그는 “그때 온 국민의 관심사였던 국정농단 사건도 영향을 미쳤던 것으로 안다. 대검이나 중앙지검에서 여력이 없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앞서의 아이카이스트 관계자, 김 대표 지인, 그리고 검찰 파일 등엔 공통적으로 언급되는 인사들이 있다. 이준석 대표 징계 후 최근 여의도를 중심으로 오르내리는 ‘김성진 리스트’도 크게 다르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여기엔 현재 민주당과 국민의힘 소속 국회의원들, 국민의힘 전신인 자유한국당 인사들, 박근혜 정부 최고위직 관료, 현직 지방자치단체장, 방송사 임원, 언론인, 연예인 등이 포함됐다.
이런 가운데 이준석 대표 성접대 사건을 수사하는 경찰의 칼날이 김성진 대표 정관계 로비 부분으로까지 확대될 가능성을 다룬 보도가 나왔다. 7월 12일 JTBC 보도에 따르면 경찰은 김 대표가 숨겨놓은 휴대전화 확보에 나선 것으로 전해진다. 이 휴대전화를 보관 중인 인물은 김 대표와 정·관계 인사 등이 나눈 대화와 사진이 존재한다고 주장했다. 경찰 수사가 이 대표를 넘어 정치권으로 향할 수 있음을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검찰이 직접 수사에 나설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2016년 작성했던 김성진 파일을 언제든 다시 꺼낼 수 있다는 뜻이다. 문재인 정부 때 좌천당했다가 복귀한 특수통 검사들이 대거 포진한 서울중앙지검에서 이 사건에 관심을 두고 있다는 얘기가 서초동에선 벌써 파다하다. 여의도를 겨냥한 윤석열 정부의 사정 드라이브 일환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이다.
취임 두 달이 지난 윤 대통령은 현재 지지율 하락으로 곤혹스러운 처지에 놓였다. 경제 여건도 좋지 않다. 비선 논란 등 구설도 끊이질 않는다. 문제는 별다른 출구전략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윤 대통령이 ‘주특기’라고 할 수 있는 사정 정국을 조성해 지지율 반등에 나설 것으로 점쳐지는 배경이다. 서해 피격 공무원 월북 논란, 탈북민 북송 사건 등 지난 정부에서 벌어진 안보 이슈를 집중 파헤치는 것과 비슷한 맥락이다.
국민의힘 한 친윤 의원은 “여당 대표가 중징계를 먹은 사건이다. 수사기관이 정치권 누구를 수사하더라도 할 말이 없다는 뜻이다. 민주당에서도 감히 정치보복이라고 할 수 없을 것”이라면서 “윤 대통령은 정치권에 빚진 게 별로 없는 대통령이다. 장기적으론 정치개편을 노리고 있다. 검찰발 여의도 사정을 꺼낼 수밖에 없는 이유”라고 했다. 김성진 사건이 윤 대통령에게 ‘꽃놀이패’가 될 수도 있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이준석 성접대 폭로' 김성진은 누구? '한국의 빌 게이츠' 사기꾼 전락
1984년 충북 음성에서 태어난 김성진 대표는 어릴 때부터 지역에서 ‘신동’으로 유명했다고 한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컴퓨터에 관심이 많았고, 중학교 3학년 때에는 제1회 전국 중고생 창의력 컴퓨터작품 공모전에서 대상을 받았다. 같은 해 한국정보올림피아드에선 금상을 받았다.
그는 이미 중학생 때부터 100개 이상의 컴퓨터 프로그램을 개발, 동호인들 사이에선 ‘한국의 빌 게이츠’로 불렸다. 카이스트 신입생이던 2003년엔 유해·음란물 퇴치 프로그램을 제작, 정보통신부로부터 정보문화상을 받았다. 역대 최연소 수상자였다.
카이스트에서 산업디자인을 전공한 김 대표는 유수의 대기업 입사 제의를 거절하고, 2008년 벤처기업 ‘휴모션’을 설립했다. 휴모션은 ‘생각으로 가는 자동차’를 모토로 내건 회사였다. 김 대표는 2008년 ‘피겨 유망주’ 김연아, 체조의 신수지 등과 함께 ‘대한민국 인재상’을 받기도 했다.
김 대표는 2011년 회사를 매각하고, 아이카이스트를 설립했다. 김 대표는 모교인 카이스트에 투자 설득을 했고, 카이스트는 지분 49%를 보유한 자회사가 됐다. 카이스트가 기업의 자회사가 된 것은 그 때가 처음이었다.
아이카이스트는 2011년 4월 스마트 패드를 이용한 교육 소프트웨어 ‘스쿨박스’ 등을 히트시키며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2013년엔 박근혜 전 대통령이 직접 아이카이스트를 방문해 화제를 모았다. 김 대표에겐 ‘창조경제의 아이콘’이라는 닉네임이 붙었다.
하지만 김 대표는 회사 매출 규모 등을 부풀려 투자자에게 투자금을 받아낸 뒤 다른 용도로 사용한 혐의, 아이카이스트가 상당한 매출 실적을 올리는 것처럼 꾸미기 위해 허위의 세금 계산서를 꾸민 혐의 등으로 2016년 구속됐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