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시작된 '규제 샌드박스'란 아이들이 자유롭게 뛰노는 모래 놀이터처럼 새로운 서비스나 제품을 내놓을 때 일정한 범위 내로 잠시 기존 규제를 면제해주는 제도다. 물샐틈없는 규제로 혁신적인 산업이나 기술이 발붙이지 못하는 상황을 해결하기 위한 ‘혁신의 실험장’인 셈이다. 시범사업 기간 동안 사업의 안전성과 유효성이 입증되면 법령 개정 절차까지 밟을 수 있다. 제도가 시행된 이후 약 700개의 기업이 혜택을 입었다. 개중에는 규제 샌드박스가 없었더라면 생겨나지 못했을 스타트업들도 적지 않다. 올해 창간 30주년을 맞은 일요신문이 까다로운 절차를 밟아 규제 샌드박스를 통과한 기업들의 이야기와 성과를 들여다봤다.[일요신문] 올해 1분기 기준 국내 차량 등록대수가 2500만 대를 넘어섰다. 국민 2명 중 1명은 차량을 소유하고 있다는 의미다. 누구나 원할 때 차량을 사용할 수 있을 것 같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타운즈는 바로 이 지점에서 창업 아이디어를 얻은 스타트업이다. 타운즈가 선보인 이웃 간 차량 공유 서비스 타운카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정보통신기술(ICT) 규제 샌드박스 실증특례로 2021년 9월부터 경기도 하남시 일부에서 시범 사업을 하고 있다. 타운카가 규제 샌드박스 특례기업으로 승인받기 위해 걸어온 길과 청사진을 짚어봤다.
정종규 대표와 최윤진 대표는 타운즈의 공동창업자다. 고등학교 동창이고 취업 준비 도중 공모전 등에서 합을 맞추던 두 사람은 각각 KT&G와 한국타이어에 입사한 후에도 주말마다 만나 창업의 꿈을 키웠다. 2010년대 초반부터 2017년까지 추진하다 접은 창업 아이템만 4개다. 그러다 두 사람의 눈에 들어온 것이 주차장에 주차돼 있던 차들이었다.
최윤진 대표는 “차는 출고된 후 96%를 주차장에서 쉰다고 한다. 주차장에 빼곡이 늘어선 차들을 보자 이웃끼리 유휴차량을 나눠 탈 수 있도록 중개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실제로 교통 인프라가 열악한 신도시의 경우 한 가구당 차를 2대 이상 가진 경우가 많다. 가구 구성원 각각의 이동수단 확보를 위해 '세컨드 카'를 마련하는 경우, 비용 부담이 높은 데다가 주차장 포화로 분쟁이 꾸준히 발생할 수도 있다. 유휴차량 공유가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두 대표는 우선 이웃의 차량을 대여하는 서비스가 실제로 가능한지 파일럿 테스트부터 진행했다. 당시 최윤진 대표가 거주하던 경기도 하남시의 미사강변도시는 막 입주가 시작되던 시점이라 지하철이 없었고 5호선이 시작되는 상일동역까지 나가기에는 교통이 불편했다. 차 한 대를 섭외해 아파트 게시판에 공고문을 붙이고 기다렸다. 최 대표는 “진짜 사람들이 이웃의 차를 빌려 탈까, 자기 차처럼 깨끗하고 안전하게 쓸까, 우리 집 주차장에서 차량 픽업하고 반납하니까 편리하다고 생각할까 등 다양한 가설들을 테스트하는 심정이었다”라고 말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정종규 대표는 “한 번 빌리신 분들이 반복해서 서비스를 이용하는 비율이 70%에 달했다. 이웃끼리라 사고나 분쟁도 전혀 벌어지지 않았다. ‘이건 무조건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정식 론칭을 모색하자마자 곧바로 벽에 부딪혔다. 50대 미만의 소규모 사업의 경우 자동차 대여사업 운영이 불가능하다는 ‘여객자동차 운수사업법’의 존재를 알게 됐기 때문이다. 해외와 달리 국내의 P2P 카셰어링 서비스가 활성화하지 못한 이유기도 했다. 해당 법이 버티고 있는 한 타운카 서비스가 아예 불가능했다. 이를 회피할 수 있는 수단도 마땅치가 않았다. 당시 타다 이슈부터 모빌리티 업계와 정부 규제 간의 갈등이나 사회적 문제가 불거지던 시점이었다.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던 차에 눈에 들어온 것이 ‘규제 샌드박스’였다.
길을 찾았지만 특례기업으로 승인받는 과정은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실제로 두 공동대표는 규제 샌드박스 승인이 제일 힘들었다고 입을 모았다. 정종규 대표는 “타다나 쏘카, 카카오 같은 규모 있는 기업들도 풀어내지 못한 숙제인데 우리가 잘 모르고 덤빈 것이다. 알면 알수록 보통 일이 아니구나 싶었다”고 말했다. 법의 틈새를 파고들어 사업을 한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었다. 끊임없이 예측 못한 변수들이 튀어나왔다. 2020년 2월에 착수한 사업이 특례로 지정받는 데만 14개월이 소요됐고 사업에 시동을 걸기까지도 6개월이 더 걸렸다. 2년 가까이 규제 샌드박스에만 매달렸던 셈이다.
단번에 승인을 받은 것도 아니었다. 중간에 받은 ‘불수용’ 판정은 뼈아팠다. 포기하고 그대로 사업을 접을 수도 있었지만 ‘이건 된다’는 믿음 하나로 매달렸다. 국토교통부와의 미팅에서 거절을 당하고 돌아올 때마다 기차 안에서 어떻게든 아이디어 피벗(방향전환)을 거듭했다. 미팅이 끝나고 돌아온 날이면 두 대표 모두 사무실에 틀어박혀 퇴근하지도 않고 밤새 보완책 마련에 매달렸다. 최윤진 대표는 “기존 법령의 틀에 맞춰 조율하는 과정에서 아이디어 피벗을 끊임없이 했다. 혼자였으면 절대 그 과정을 못 버텼을 것”이라고 말했다.
국토부 설득을 위해 세상에 없던 보험까지 새로 개발했다. 당시 신생 보험회사였던 캐롯손해보험과 손을 잡았다. 캐롯 측도 처음에는 난색을 표했다. 두 대표는 P2P 카셰어링 중에서도 ‘이웃 간’이라는 핵심 콘셉트를 강조했다. 보험사의 가장 큰 리스크인 사고율에 대해서는 자신 있다며 큰소리를 쳤다. 두 대표의 자신감과 노력에 캐롯도 결국 모험을 감행했다. 아직 특례 지정도 받지 않은 스타트업을 위해 1년여에 걸쳐 새로운 종류의 보험 개발에 착수했다. 새로 개발된 보험을 들고 가자 국토부에서도 혀를 내둘렀다.
규제 샌드박스 승인기준 충족을 위해 노력하는 동안 법이 불필요한 규제가 아니라 오히려 꼭 필요하기 때문에 생긴 규제라는 생각이 들었다. 기존 법의 취지에 맞게 ‘안전’을 최우선으로 두고 신중하게 서비스를 설계했다. 최윤진 대표는 “소비자들에게 컨디션 좋은 차를 제공해서 사고가 안 나게 관리할 수 있도록 사업 모델을 통째로 바꿨다. 결과적으로 에어비앤비처럼 아무나 제한 없이 참여하는 게 아니라 저희가 중간에서 등록·허가업무까지 주관하는 가장 현실적인 방식을 도입해 규제 샌드박스 특례 승인이 떨어졌다”고 말했다.
최대한 많은 이용자들이 편리하게 가입하고 이용할 수 있도록 서비스하는 일반적인 커머스 스타트업과 달리 타운카 서비스는 폐쇄적이다. 타운카 이용자들은 주민등록증과 운전면허증, 거주지 증명 서류가 완벽하게 일치해야만 서비스에 접근할 수 있다. 차량 소유주의 경우 타운카 직원들과 실제 대면하고 신원을 확인한 후 차량을 등록할 수 있다. 해당 방식으로 현재 경기도 하남시에서 약 16대의 차량이 운영되고 있다.
두 대표는 특히 미성년자의 타운카 이용을 차단하는 데 중점을 뒀다. 최 대표는 “렌터카 사업을 하다 보면 미성년자들이 사망 사고까지 내는 경우가 정말 많다. 저희는 그 부분만큼은 절대로 타협하지 않기로 했다”고 말했다. 원래는 2022년 중순까지 경기도 다른 신도시와 성남시, 남양주시까지 사업을 확장할 계획을 세웠으나 기존에 진행하던 사업의 기초를 탄탄하게 다지는 쪽으로 방향을 선회했다. 신중에 신중을 더한 점과 ‘이웃 간 대면 서비스’라는 콘셉트가 합쳐져 9개월 동안 현재까지 약 700여 건의 대여가 이뤄졌는데 놀랍게도 사고나 분쟁이 일어난 횟수는 ‘0’이다.
사업 확장 속도는 느리지만 투자는 꾸준히 늘고 있다. 타운카는 2021년 5월 프리시리즈A 투자를 통해 11억 원을 유치한 데 이어 올해 1월에는 17억 원의 투자를 추가로 유치했다. 기존 투자자였던 베이스인베스트먼트, 패스트벤처스, 퓨처플레이, 마크앤컴퍼니에 이어 국내 정상의 인지도를 자랑하는 한국투자파트너스가 새로 합류했다. 그만큼 사업성이 주목을 받고 있다는 방증이다. 일반적인 렌터카 사업들은 수천 대가량의 차를 일일이 구입하고 유지·보수하는 데 비용이 소모된다. 그러나 타운카는 차량을 직접 소유하지 않기 때문에 거래 금액이 꾸준히 발생하는 데 비해 투입되는 비용이 극히 낮다.
타운카 사업을 통해 타운즈가 추구하는 궁극적인 목적은 ‘오래오래 살기 좋은 우리 동네’를 만드는 것이다. 최윤진 대표는 “한 청년이 고향에서 오신 부모님을 마중하러 타운카를 빌려 타고 동서울터미널까지 갔는데 부모님께서 ‘좋은 동네 사는구나, 차가 없어도 싸게 빌릴 수 있고’하면서 칭찬해주셨다는 이용자 후기가 기억에 남는다”라고 말했다. 정종규 대표 역시 “타운즈는 살기 좋은 동네 만들기에 방점을 찍은 프로젝트다. 첫 번째 지역이 경기도 하남시고, 그 첫 시작이 타운카다”라고 말했다.
김정민 기자 hurrymi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