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종수 늦은 나이 미국행 극복 못해 방출…캔자스시티 계약 엄형찬 “성공한 메이저리거 될 것”
우렁찬 목소리로 인사하는 모습에 절로 미소가 나왔다. 고교야구 최고의 포수로 평가받은 선수이고, 최근 메이저리그(MLB) 캔자스티시 로열스와 계약을 맺은 터라 자신감이 대단해 보였다.
덕수고 투수 심준석의 미국 무대 진출 여부에 관심이 쏠린 상황에서 엄형찬의 캔자스시티 로열스 계약 소식은 큰 화제를 모았다. 진행 과정이 전혀 소문이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조심스럽게 움직였고, 발표하기 전까지 최대한 비밀을 유지했다고 한다.
엄형찬의 캔자스시티 로열스행 소식이 알려지면서 경기상고에서 코치로 활약 중인 아버지 엄종수 코치의 이력이 관심을 모았다. 엄 코치가 선수 시절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산하 마이너리그 팀에서 포수로 활약했기 때문이다. 비록 빅리그로 올라서지 못했고 2시즌 만에 방출되면서 선수 생활을 마무리했지만 아들과 아버지가 미국 야구와 인연을 맺어 큰 이슈가 됐다.
7월 9일 경기상고 훈련장에서 엄종수-엄형찬 부자를 만났다.
만약 엄형찬이 캔자스시티 로열스와 계약하지 않았다면 그는 올해 KBO 신인 드래프트에 참가할 고교 포수 빅3(엄형찬, 김범석, 김건희) 중 프로팀 스카우트들로부터 가장 많은 관심을 받았을 것이다. 7월 14일 현재 고교 통산 53경기에 출전해 3홈런 56타점 3도루 타율 0.369 OPS 0.979의 성적을 올렸고, 올 시즌에는 5경기에 나서 3홈런 25타점 타율 0.452 OPS 1.194를 기록 중이다.
고교 야구 관계자들은 엄형찬이 포수로서 갖춰야 할 기본 자질이 매우 뛰어나다고 입을 모은다. 투수 리드와 프레이밍, 블로킹 등은 최고의 실력을 갖췄고, 고교 무대에서 101이닝을 뛰는 동안 도루 저지율 70%를 자랑할 정도의 강한 어깨의 소유자라고 평가한다.
이런 그가 KBO리그 대신 메이저리그 직행을 선택했다. 야구를 시작하면서 막연히 가졌던 미국 야구에 대한 꿈이 현실로 이뤄진 것이다. 더욱이 포수로 메이저리그에 도전장을 내민 아버지의 길을 뒤따른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아버지 엄종수 코치는 아들이 캔자스시티 로열스와 계약하게 된 과정을 이렇게 설명한다.
“어느 순간부터 형찬이한테 미국에서 야구할 수 있는 길이 열리면 무조건 보내겠다고 마음먹었다. 누구보다 형찬이가 가장 원하는 목표였다. 경기상고로 형찬이를 스카우트할 때도 최덕현 감독님이 약속한 부분이기도 했다. 그런데 실제 이런 상황이 펼쳐질 줄은 정말 몰랐다. 아직도 실감이 나지 않고, 형찬이가 자신의 꿈을 향해 갈 수 있도록 도와주신 학교 측과 최덕현 감독님께 진심으로 감사한 마음을 전하고 싶다.”
캔자스시티 로열스는 엄형찬이 중학교에서 야구할 때부터 스카우트가 나와 경기를 지켜봤다고 한다. 야구도 잘하지만 인성이 좋기로 소문난 엄형찬에게 지속적인 관심을 기울였고, 오랫동안 관찰하고 분석한 스카우팅 리포트가 쌓이면서 비로소 계약에 까지 이를 수 있었다는 후문이다.
아버지 엄종수 코치는 1996년 2차 28번으로 한화 이글스 유니폼을 입었다. 처음에는 포수로 계약을 맺었다가 이후 투수로 전환했는데 그게 선수 생활을 단축시킨 원인으로 작용했다.
“포수였지만 공이 빠르다는 게 알려지면서 코치들이 투수해보라고 권유했다. 투수로 포지션을 변경했지만 어깨 부상이 이어지면서 선수 생활을 지속할 수 없었다. 결국 2년 만인 1998시즌 마치고 방출됐다.”
엄 코치는 한화에서 나온 후 아는 선배가 감독을 맡고 있는 신일중학교에서 코치로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다. 당시 만난 선수가 김현수, 나지완, 임훈 등이다. 그러다 우연히 신일중 전지훈련장을 방문한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스카우트 눈에 엄 코치가 선수들에게 공을 던지는 장면이 포착됐다. 매우 빠른 공을 던진 것이다.
“중학교에서 코치로 3년을 보내고 4년째 접어들었을 때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스카우트 눈에 띄었다. 테스트를 해보고, 팀 관계자가 나와서 직접 확인 후엔 바로 계약하자고 하더라. 이번엔 포수였다. 당시 내 나이가 서른 살이었고, 아내가 큰 아들을 임신한 상태였다(엄형찬은 둘째). 아내가 적극 권유한 데다 더 이상 잃을 게 없다는 생각에 애틀랜타와 계약을 맺고 혼자 미국으로 향했다. 그 전부터 미국 야구를 보고 배우고 싶은 마음이 컸는데 정말 우연한 기회에 연수가 아닌 선수로 마이너리그 팀에서 생활하게 된 것이다. 당시 애틀랜타에는 신일고에서 온 봉중근이 있었다. 봉중근과 마이너리그에서 같이 선수 생활을 했고, 봉중근의 전담 포수로 활약하며 루키리그와 싱글A 경기를 소화했다.”
신일중학교 코치와 신일고 출신의 투수가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루키리그에서 서로의 꿈을 향해 발을 내딛었던 시간들이었다. 어린 나이의 봉중근한테 포수 엄종수는 큰 도움이 될 수밖에 없었다. 외국인 포수보다 한국인 포수와 배터리를 이룰 수 있었고, 구단에서도 봉중근의 전담 포수로 엄종수 코치를 정해 놓은 터라 힘든 마이너리그 생활을 서로 의지하며 헤쳐나갈 수 있었던 것.
“봉중근과 함께 생활했다는 내용은 처음 공개하는 이야기다. 지금은 잊지 못할 추억으로 남았다. 이후 봉중근은 더블A, 트리플A로 계단을 밟아 올라갔고, 난 다시 방출 선수가 돼 한국으로 돌아와야만 했다.”
포수보다 힘들었던 게 빠른 공을 상대해야 하는 타석이었다고 한다. 한국에서 140km/h 대의 공만 보던 선수가 150km/h 중반을 넘는 빠른 공에 대응하기가 정말 어려웠던 것.
“공은 잘 보였는데 몸이 안 움직였다. 마이너리그에서 올린 기록 중 7타점이 있는데 그 7타점이 전부 봉중근이 선발로 나갔을 때 올린 성적이다. 후배를 돕고 기를 살려줘야 한다는 책임감이 타석에서 힘을 발휘할 수 있게 만들었다.”
엄 코치의 미국 야구는 2시즌 만에 멈췄고, 한국으로 돌아온 그는 신일중학교 코치로 복귀했다.
아들 엄형찬의 원래 꿈은 축구 선수였다고 한다. 아들의 바람대로 축구부에 가입시켰는데 엄형찬은 다른 포지션이 아닌 골키퍼를 고집했다. 그 이유를 물었더니 엄형찬이 재미있는 대답을 들려준다.
“나는 남들과 다른 특이한 걸 좋아한다. 그래서 남들이 다 하는 필드 플레이어보단 선수들을 조율하고 리드하는 골키퍼에 더 큰 매력을 느꼈다. 아버지가 골키퍼를 하느니 차라리 야구를 하는 게 어떻겠느냐고 말씀하셔서 이후 야구부에 가입했는데 이번엔 포수에 관심이 갔다. 아버지는 너무 힘든 포지션이라 포수만큼은 하지 않기를 바라셨지만 내 마음은 이미 포수한테 기울어져 있었다.”
엄형찬은 초등학교 시절 투수도 해봤지만 공을 던지는 것보다 받는 게 더 재미있었다고 한다. 엄종수 코치는 부상 위험에 노출된 포수보다 1루수 또는 3루수로 뛰길 원했다. 다음은 엄 코치의 이야기다.
“정말 인정하기 싫지만 유전자의 힘이 존재하는 것 같다. 형찬이 스스로 포수란 포지션에 운명처럼 끌려갔다. 중학교 졸업 앞두고 여러 학교에서 스카우트 제의가 왔다. 포수가 디테일한 훈련이 필요한데 아무래도 내가 직접 가르치는 게 더 낫지 않을까 싶어 경기상고에 입학시켰다.”
엄 코치의 말대로 엄형찬은 여러 학교에서 서로 데려가려고 앞장 선 포수였다. 경기상고 최덕현 감독은 “엄형찬을 이 학교로 데려올 수 있었던 건 엄 코치의 도움 덕분이었다”면서 “당시 엄 코치가 내건 조건이 해외 진출할 기회가 있으면 꼭 보내달라는 부탁이었는데 이번에 그 약속을 지킬 수 있었다”라고 설명했다.
한 야구부에 아버지가 코치로, 아들이 선수로 뛴다는 건 쉽고도 어려운 문제다. 아버지이자 지도자인 엄종수 코치로선 경기에서 패하면 아들 때문에 진 것 같아 힘들었고, 아들이 1학년 때부터 경기 출전을 이어간 부분도 때론 비난의 대상이 되었다는 걸 잘 알고 있다. 다음은 최덕현 감독의 설명이다.
“형찬이가 실력이 없었다면 다른 선수 부모들이 가만히 있었겠나. 형찬이는 실력으로 증명하면서 성장했다. 선수들도 그런 형찬이를 인정했고 잘 따랐다. 엄종수 코치가 마음고생 많이 했을 것이다. 그래서 고맙고 미안한 마음이 크다.”
인터뷰 말미에 엄형찬은 미국 무대를 향하는 마음가짐을 이렇게 표현했다.
“야구를 하다 보니 어느 순간 아빠의 길을 걷고 있는 내 자신을 발견했다. 아빠는 길게 선수 생활을 못했지만 나는 오랫동안 미국에서 활약하다 빅리그 무대까지 오르고 싶다. 그러기 위해선 모든 걸 잘 준비해서 미국으로 향할 계획이다. 한국에 남아 프로야구에 도전하든, 메이저리그에 도전하든 어려운 건 마찬가지다. 내게 주어진 기회를 잘 살려서 실패한 또 다른 마이너리그 출신의 한국인이 아닌 성공한 코리언 메이저리거가 돼 다시 인사드리고 싶다.”
이영미 스포츠전문기자 riveroflym@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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