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도적인 스케일의 해양 전투 액션신…100% 넘어선 완성도의 자신감
오는 27일 개봉을 앞둔 ‘한산: 용의 출현’은 김한민 감독의 ‘명량’(2014) 이후 8년 만에 선보이는 후속작이자 프리퀄이다. 2023년 개봉이 예정돼 있는 ‘노량: 죽음의 바다’와 함께 이순신이라는 명장의 대서사시를 그리는 3부작 프로젝트의 두 번째 작품이기도 하다. 명량 해전이 발발하기 5년 전, 임진왜란의 삼대 대첩 중 하나인 한산도 대첩을 주제로 하는 이 작품은 이전보다 더욱 방대해진 스케일의 해상전투를 선보여 눈길을 끌고 있다.
‘명량’에서의 이순신에 최민식을 내세웠던 김한민 감독은 이번 ‘한산: 용의 출현’에서는 새로이 ‘박해일 이순신’을 스크린 앞에 세웠다. 무인(武人)의 카리스마보단 문인(文人)의 부드러움을 먼저 떠올리게 하는 박해일에게 이순신을 덧씌운다는 것에는 기대보다 우려가 앞서기도 했다. 그러나 공개된 ‘한산: 용의 출현’ 속 박해일의 이순신은 그의 차분하고 절제된 감정 연기로 냉철한 전략가로서의 모습을 유지하며 그간의 우려를 불식시킨다.
이번 ‘한산: 용의 출현’에서 박해일의 연기는 이 작품 전투 신의 가장 큰 볼거리, 학익진(鶴翼陣)의 생생한 구현에 더해지면서 더욱 뚜렷하게 진가를 드러낸다. 이순신이 최초로 학익진을 펼친 해전인 한산도 대첩을 다루는 작품답게 이순신의 전략에 따라 바다를 가르며 대열을 갖춰 나타난 전투선들의 웅장한 모습은 비록 곧바로 본격적인 전투 신으로 이어지지 않더라도 강렬한 긴장감과 짜릿한 카타르시스를 관객들에게 선사한다. 특히 거북선까지 가세해 쉴틈 없이 몰아치는 전투의 후반부는 이 전투의 결과를 아는 관객들마저 주먹을 꽉 쥐고 시트 앞으로 바짝 몸을 세우게 만든다.
이순신에 맞선 일본의 장수 와키자카 야스하루(변요한 분)도 존재감으로서는 그에게 뒤지지 않는다. 승리를 확신하며 경거망동하지 않고 사냥감을 노리는 포식자처럼 때를 기다리는 그 역시 이순신과 동일한 무게감으로 각자의 저울 위에 서 있다. 한산도 해전의 무대인 견내량 전투 신을 더욱 긴장감 넘치게 만드는 데도 호전적이나 성급하지 않은 와키자카의 캐릭터성이 큰 힘을 불어넣은 것으로 보인다.
두 장수들이 팽팽한 긴장감을 유지하며 극을 이끌어가지만, 캐릭터 성으로 접근했을 때 좀 더 입체적인 캐릭터로서 기능하는 와키자카와 달리 이순신은 처음부터 끝까지 큰 고뇌나 감정의 고저 없이 전략적이고 냉철한 장수로서의 한 모습만 유지한다는 점이 아쉽다. 명장 이순신 뿐 아니라 인간 이순신을 함께 기대한 관객들에게도 액션의 스케일에 비해 납작하게 느껴지는 이순신의 캐릭터 성은 다소 실망스러운 부분이 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한산: 용의 출현’ 속 이순신의 이런 모습에는 김한민 감독과 배우 박해일의 의도가 강하게 반영됐다. 명량해전에서 용장(勇將·용맹한 장수), 노량해전에서 현장(賢將·현명한 장수)로서의 이순신이 존재한다면 한산해전에서의 이순신은 지장(智將·지혜로운 장수)으로서의 면모를 보여준다는 것이 김한민 감독의 이야기다.
19일 오후 서울 송파구 롯데시네마 월드타워에서 열린 ‘한산: 용의 출현’ 언론배급시사회에 참석한 박해일은 “‘명량’에서의 대역전극과 다르게 제가 맡은 이순신은 물처럼 어떤 것이 섞여도 그 느낌이 나는 인물이다. 그런 이순신 주변의 배우들이 잘 드러나길 바랐다”라며 “이순신이 나타나지 않은 장면에서도 그가 구사하는 전략들이 다른 배우들에 의해서 구현되는 차이가 있을 거라고 본다. 좀 더 차분하고 냉정하게, 유비무환 정신으로 모두가 함께했던 느낌이 우리 영화의 차별점이자 내가 맡은 이순신의 또 다른 느낌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순신 장군은 말수가 적고 희로애락 등 감정 표현이 드러나지 않으며 절제 돼 있는 느낌이었다”라며 “감정 표현을 하지 않아야 하는데 그렇다고 연기를 안 할 수는 없지 않나. 그 절제 속에서 에너지를 잃지 않아야 하는 것이 저만의 숙제였다”고 덧붙였다.
김한민 감독은 “‘명량’은 기대하지 않았던 흥행이었다. 당시 세월호 참사 발생 두 달 후에 개봉했고, 비슷한 해역에서 벌어진 참사였다. 배를 끌어내고 보호하는 극 중 민초들, 백성들의 모습이 국민들에게 큰 위안과 위로가 되지 않았나. 영화가 품은 함의가 얼마나 중요한지 배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런 지점에서 '한산'은 전쟁 초기 조선이 끝장날 수 있는 시기에, 이순신 장군이 홀로 고군분투하며 벌인 전투다. 이런 영화가 지금 현재를 사는 우리로 하여금 자긍심을 가지게 하고, 큰 위안과 용기로 남을 것이라고 생각해 '한산'에 의미를 두고 있다”고 덧붙였다.
주로 일본 상대의 대규모 전투를 배경으로 하는 사극 특화 감독에게 숙명처럼 주어지는 ‘국뽕’ 우려에 대해서는 “‘한산’은 국뽕 너머의 국뽕”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그는 “상업적인 ‘국뽕 팔이’가 아닌 진정성과 자긍심, 우리에게 어떤 위로나 위안, 용기, 힘, 연대감 이런 것들이 ‘한산’을 본 뒤 생겼으면 좋겠다”라며 “저는 울림, 감흥이 있고 장르적인 룰을 지키며 영화를 만들려 한다. 이순신을 팔아서 흥행할 수는 없는 거다. 오히려 그러다간 욕을 먹고 뻔한 작품이 나올 수밖에 없기에 이를 굉장히 경계하고 만들었다”고 밝혔다.
한편 '한산: 용의 출현'은 명량해전 5년 전, 진군 중인 왜군을 상대로 조선을 지키기 위해 필사의 전략과 패기로 뭉친 이순신 장군과 조선 수군의 한산해전을 그렸다. 대형 스크린을 통해서만 비로소 200% 느낄 수 있는 압도적인 스케일의 해전을 놓친다면 올 여름이 두고두고 후회될 것. 129분, 12세 이상 관람가. 27일 개봉.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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