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19일 인천 미추홀경찰서에 따르면 인하대학교 1학년에 재학 중인 A 씨는 7월 15일 새벽 인천시 미추홀구 인하대 캠퍼스에 있는 5층짜리 단과대학 건물에서 평소 알고 지낸 동급생 B 씨를 성폭행한 뒤 도주했다.
먼저 알려진 건 피해자 B 씨의 사망 소식이었다. B 씨는 15일 오전 3시 49분쯤 해당 단과대학 건물 앞 바닥에서 나체로 발견됐다. 발견자는 전날 저녁부터 함께 있던 A 씨가 아닌 행인이었다. B 씨는 곧바로 병원으로 이송됐으나 숨졌다. 국립과학수사연구소는 16일 진행된 부검에서 B 씨의 사인에 대해 다발성 손상이라는 구두 소견을 경찰에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같은 날 오전 1시 30분쯤 A 씨가 B 씨를 데리고 건물로 들어가는 모습이 찍힌 CCTV와 현장에서 발견된 A 씨의 휴대전화를 토대로 A 씨를 유력 용의자로 특정한 경찰은 오후 2시쯤 자취방에 있던 A 씨를 체포했다. 그는 범행을 저지른 후 B 씨가 건물에서 추락하자, B 씨의 옷과 물품 등을 다른 장소에 버리고 자신의 자취방으로 도주한 것으로 전해졌다.
현재 A 씨에게 적용된 혐의는 준강간치사다. A 씨가 경찰 조사에서 B 씨가 건물에서 떨어져 숨진 사실은 인정하면서도 “밀지 않았다”며 고의성을 부인하고 있어서다. 준강간치사는 저항할 수 없는 상태에 있는 피해자를 성폭행하고, 그 직접적인 결과로 피해자가 죽음에 이르렀을 때 적용되는 죄목이다. 경찰은 A 씨가 B 씨를 건물로 떠민 정황이 확인되면 준강간살인으로 죄명을 바꾼다는 방침을 세우고 17일 사건 현장에서 다양한 상황을 가장한 현장 실험을 하기도 했다.
이와 별개로 A 씨가 추락한 B 씨를 알고도 방치했는지 여부도 조사 중이다. 경찰에 따르면 피해자는 15일 오전 3시 49분 행인의 최초 신고가 있기 전까지 1시간 넘게 건물 앞에 쓰러진 채 방치됐다. 119구급대가 현장에 도착했을 때 피해자는 머리뿐 아니라 귀와 입에서도 많은 피를 흘리고 있었지만 호흡을 하고 맥박도 뛰고 있었다. 만약 A 씨가 피해자의 추락 사실을 인지하고 곧바로 신고했다면 죽음은 막을 수도 있었을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19일 인천소방본부 관계자는 “오전 3시 55분쯤 현장에서 구조했고 구급차 안에서 맥박이 약해져 CPR(심폐소생술)을 했지만 병원에 도착할 때까지도 호흡과 맥박이 있었다”고 말했다. 오전 4시 15분쯤, 가천길병원 외상센터로 이송된 피해자는 수차례 심정지와 회복 상태를 오가다 오전 7시 2분 결국 사망 판정을 받았다.
이런 이유로 A 씨가 피해자의 추락 사실을 알았거나 알고도 고의로 방치했을 경우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죄가 적용될 수도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은 가해자가 살해에 고의가 없다고 하더라도 범행 당시 ‘사망할 수도 있다’는 위험성을 인식하고 있거나 ‘죽어도 상관없다’는 생각을 해 끝내 피해자를 사망에 이르게 했다면 보통의 고의범으로 취급하는 것이다.
앞서 법원은 서울 광진구의 한 클럽에서 태권도 4단 유단자 3명이 행인 한 명을 폭행하고 방치해 숨지게 한 사건에 대해서 “비록 처음부터 살해 공모를 안 했어도 폭행 당시 사망할 수도 있다는 위험성을 인식하고 있다고 보이므로 암묵적 살인 공모가 인정된다”며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을 적용한 바 있다. 당시 가해자들은 “때린 건 맞지만 죽을 줄은 몰랐다”고 고의성을 부인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19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B 씨를 유리창으로 밀어 던지지 않았다고 해도 일단 (건물에서) 떨어지면 당연히 생명의 위협을 받는다는 건 상식적으로 아는 거 아니냐”며 “119 신고를 하지 않고, 구조하지 않아 사망에 이르게 한 거라면 미필적 고의 또는 부작위에 의한 살인까지는 최소한 갈 수 있다. 그러면 살인죄가 적용될 개연성이 높다”고 했다.
사건 당시 상황이 조금씩 드러나면서 추가되는 죄명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지금까지 드러난 정황으로는 불법촬영과 증거인멸 시도 등이 의심된다. 경찰은 범행 현장에서 발견된 A 씨의 휴대전화에서 당시 상황이 담긴 동영상 파일을 확보했다. 다만 A 씨가 영상을 찍던 중이었는지 영상물이 완성되지 않아 이 경우에도 불법촬영 혐의를 적용할 수 있는지 검토하는 중이다. 영상이 촬영된 시간은 B 씨가 발견된 시점과 1시간가량 차이가 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경찰은 디지털 포렌식을 통해 해당 기기에서 삭제된 자료와 영상도 확보해 현장과 관련된 자료가 있는지도 확인하고 있다.
증거인멸 시도도 추가 확인이 필요하다. A 씨는 범행 이후 B 씨의 유류품을 현장이 아닌 여러 장소에 뒀다. B 씨의 상의는 추락 장소 인근에서 발견됐지만 하의와 다른 옷가지들은 교내 다른 장소에서 발견됐다. 자기 범죄의 증거를 인멸하는 행위에 대한 처벌은 따로 없으나 성폭행‧불법촬영‧증거인멸 시도‧추락한 피해자를 장시간 방치한 것들이 사실로 드러날 경우 양형 사유로 참작되는 등 법정에서 불리하게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A 씨는 피해자의 사망과 관련해서는 고의성을 부인하면서도 범행 직후 현장을 벗어난 것에 대해서는 “무섭고 경황이 없었다”고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준강간치사,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부작위에 의한 살인’의 차이
사람이 사망한 사건인 만큼 ‘준강간치사’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부작위에 의한 살인’의 처벌 수위는 비슷하게 높다. 준강간치사는 무기 또는 10년 이상의 징역형이며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과 부작위에 의한 살인은 모두 살인죄로 사형,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형이다. 다만 검찰 입장에선 공소사실에 대해 법원이 유죄 판결을 하느냐가 관건이다.
이번 인하대 사건의 경우 검찰이 주의적 공소사실은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나 부작위에 의한 살인으로 가되, 행여 미필적 고의나 부작위가 인정되지 않아 살인죄가 무죄로 나오는 상황에 대비해 예비적 공소사실로는 준강간치사를 추가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그만큼 미필적 고의나 부작위는 한국 법원에서 다소 소극적으로 적용되는 편이다.
우선 ‘준강간’은 형법 제299조에 규정돼 있는데 사람의 심신상실 또는 항거불능의 상태를 이용하여 간음한 범죄를 의미한다. 그런데 준강간의 죄를 범한 자가 사람을 살해한 때에는 준강간치사가 되는데 이 경우 형법 제301조의2는 무기 또는 10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과 부작위에 의한 살인은 모두 살인죄로 형법 제250조는 사람을 살해한 자는 사형,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형법 제13조는 ‘죄의 성립요소인 사실을 인식하지 못한 행위는 벌하지 아니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고의가 입증돼야 처벌이 가능한데 여기서 자주 사용되는 법률 용어가 확정적 고의와 미필적 고의다. 기본적으로 사람을 죽일 의도를 갖고 살인을 하면 확정적 고의가 입증돼 살인죄로 처벌이 가능하다.
‘미필적 고의’는 특정 행동을 함으로써 어떠한 결과가 반드시 발생하는 것은 아니지만 발생 가능성이 있음을 인지하고 있을 때, 그 결과가 발생해도 상관없다는 심리로 그 행동을 하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은 반드시 살인을 하겠다는 ‘확정적 고의’는 없었을 지라도 사람이 살해될 가능성을 인지하고 있을 때, 사람이 살해돼도 상관없다는 심리로 행동을 한 경우를 의미한다. ‘미필적 고의’가 인정되면 살인죄로 처벌받는다.
부작위는 형법 제18조에 규정돼 있는데 위험의 발생을 방지할 의무가 있거나 자기의 행위로 인하여 위험발생의 원인을 야기한 자가 그 위험발생을 방지하지 아니한 경우를 의미하는데 부작위로 인해 발생된 결과에 대해서는 처벌한다고 규정돼 있다. 따라서 부작위가 인정되면 살인죄로 처벌 받는다.
신민섭 기자 leady@ilyo.co.kr
최희주 기자 hjo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