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한 것에 편안함이 있다면 낯선 것에는 설렘이 있다. 편안함 가운데 설렘이 주는 느낌은 어떨까. 안정된 일상 속에서 누리는 여행 같은 것은 아닐까. 설렘을 향해 길을 떠나지만 언제나 돌아올 수 있는 안정된 약속이 있는 여행. 명승지에 숨어있는 풍경을 만났을 때 얻을 수 있는 야릇한 흥분 같은 것도 이와 같을 게다.
익숙한 명승지에서 남들은 보지 못한 뷰포인트를 찾아냈을 때 자신만의 여행에 의미가 생긴다. 이런 발견은 우리의 시야를 넓혀준다.
명승이 되는 것은 많은 이들이 다양한 해석을 붙여주었기 때문이다. 이런 해석은 여행의 매뉴얼이 된다. 그래서 그 틀에 맞춰 여행을 하게 된다.
자신만의 여행을 만들어내는 일은 모험이 뒤따른다. 접근하는 데 필요한 안내서 없이 길을 나서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칫하면 목적지조차 찾지 못하고 헤매다 끝날 수도 있다. 망쳐버린 여행에 대한 주관적인 합리화가 될 수도 있다. 여행의 의미 자체를 포기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생각의 방식과 범위를 넓힐 수 있는 일이기도 하다.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새로운 의미를 찾을 수도 있다. 그래서 명승지에서 숨어 있는 풍경을 찾아내는 일은 늘 보았던 주변의 사물에서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는 기쁨과도 같다. 깨달음의 묘미를 찾는 일이니까. 이게 진정한 의미의 여행이 아닐까.
최수란의 회화는 여행에서 무엇을 얻을 수 있는지를 생각하게 한다. 그는 여러 나라를 직접 여행한 경험을 바탕으로 작품을 만든다. 관광지에 대한 기행문 형식이 아니라 자신의 주관적 감성이 들어간 감상문 같은 성격을 띤다. 따라서 그의 그림은 시적인 요소가 더 많다. 제목이 없다면 작품에 등장하는 장소가 어디인지 쉽게 알아내기가 어렵다.
작가는 명승지를 여행하지만 이름난 풍경을 소재로 삼지 않는다. 자신이 그곳에서 느꼈던 감정을 간략한 구성과 단순한 색채로 담아낸다.
우연한 마주친 분위기 있는 카페나 식당, 길을 잃었던 골목길 혹은 날씨에 따라 변화하는 도시의 표정 등을 속도감 있는 터치로 표현한다. 그런데도 작가가 그려낸 장소를 짐작케 하는 요소가 있다. 도시를 연상케 하는 색채나 선의 성격이다. 단순화한 이런 회화적 요소에서 작가가 다녀온 여행의 흔적을 찾을 수 있다.
여행에 대한 작가의 해석은 관광 가이드의 안내로 만나는 풍경이 아니라 자신이 본 것, 그래서 새롭게 찾아낸 풍경을 보여주는 일이라고 한다. 그래서 그의 회화에는 여행의 향수 같은 것이 묻어난다.
비즈한국 아트에디터인 전준엽은 개인전 33회를 비롯해 국내외에서 400여 회의 전시회를 열었다. <학원>, <일요신문>, <문화일보> 기자와 성곡미술관 학예실장을 역임했다. <화가의 숨은 그림 읽기> 등 저서 4권을 출간했다. |
전준엽 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