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는 상상력의 공간에 지은 집이다. 그곳에 깃들어 살고 싶게 이끄는 것이 예술이다. 사람들이 모여들어 동네를 이루면 문명이 된다. 인류를 번성시킨 곳에는 풍부한 상상력을 재료 삼은 튼실한 구조의 신화가 있었다.
우리에게도 이런 신화가 있다. 고구려 신화는 우리 상상력의 넓이와 깊이를 가늠케 했으며, 표현에서도 얼마나 기발한지를 잘 보여준다.
지난 평창 동계올림픽 개막식 공연에 등장해 우리가 이제야 알게 된 인면조는 이런 모습을 확인해 주었다. 미국 ABC뉴스는 ‘이상하고 무섭지만 재미있고 유니크한 매력이 있다’고 평했고, 일본에서는 많은 언론이 주목해 네티즌 사이에서 여러 가지 패러디가 나올 정도로 화제가 됐다.
그런데도 정작 우리나라에서는 일회성으로 지나쳐버리는 듯한 분위기여서 아쉽기만 했다. 심지어 ‘우리 문화지만 익숙하지 않은 데다가 기괴하다’는 부정적인 이야기까지 나올 정도였다.
우리 선조들의 상상력과 표현의 힘은 21세기 대중문화의 주요 모티브로 각광받는 판타지 세계를 무색케 한다. 시공을 뛰어넘는 사랑 이야기는 동서양 영화와 TV드라마에서 흥행 보증수표로 통한다. 이게 바로 신화의 힘이다.
안진희 회화도 신화를 주제 삼고 있다. 그는 신화가 많기로 소문난 제주 작가다. 안진희는 제주에서 태어나 자랐으며, 현재까지도 제주에서 활동하고 있다. 따라서 작품의 내용은 자연스럽게 제주의 신화를 주제로 삼고 있다. 신화의 틀을 빌리고 있지만 자전적 스토리를 담고 있다.
제주 여성의 강인함을 보여주는 작가의 삶은 여성 주제 신화가 강한 제주도의 이력과 맞닿아 있다. 이는 주체적 정체성을 찾으려는 작가의 노력이기도 하다. 그런 작업의 결과물은 안진희의 다음과 같은 고백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일상 속에서 나 자신을 들여다본다. 거기서 제주 토박이인 나를 만난다. 나는 제주의 본질을 담아내기 위해 그림 속에 다양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제주 신화 속 여신으로, 바다 속 해녀로, 오름을 오르는 말테우리로, 그렇게 제주를 그리는 화가로 나의 그림에 자연스럽게 등장한다.”
안진희 그림에는 여인이 등장하며 그 품에 제주 신화의 조각들이 나타난다. 그런데 신화는 서술적으로 표현되지 않는다. 추상적 이미지나 서정적 풍경으로 등장하는가 하면 상징적 기호로 표현한다. 여인의 이미지도 거친 선과 무채색으로 표현돼 구체적이지 않다. 강인하면서도 포용성이 있는 여인의 모습이다. 그래서 다양한 해석을 짐작하게 만든다. 상상력을 자극하는 것이다.
비즈한국 아트에디터인 전준엽은 개인전 33회를 비롯해 국내외에서 400여 회의 전시회를 열었다. <학원>, <일요신문>, <문화일보> 기자와 성곡미술관 학예실장을 역임했다. <화가의 숨은 그림 읽기> 등 저서 4권을 출간했다. |
전준엽 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