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 공안과 3년 공조, 쫓고 쫓기는 검거작전 성공…텔레그램 마약왕·탈북 마약왕 이어 ‘최상선’ 검거
경찰은 ‘동남아 마약왕’ 김 씨에 대한 정보는 이미 수년 전에 파악했지만 국내가 아닌 동남아시아를 기반으로 활동하고 있는 터라 꽤 오랜 수사 시간이 필요했다. 김 씨의 주요 근거지로 알려진 베트남과의 협조가 중요했는데 경찰은 2019년 6월 김 씨에 대한 인터폴 적색수배서를 발부받으면서 베트남 공안과 본격적인 공조 수사에 돌입했다.
이미 김 씨의 거주지가 베트남 호찌민이라는 사실은 확인된 상황이었다. 2020년 9월 한 마약 유통책의 1심 판결문에도 피고가 베트남 호찌민에 있는 김 씨의 주거지에서 마약을 받아왔다는 내용이 나올 정도다. 또한 김 씨의 텔레그램 프로필에도 호찌민 시의 사진이 올라와 있다. 그럼에도 검거를 위해선 더 많은 정보가 절실했는데 코로나19 팬데믹(Pandemic·대유행)으로 베트남을 쉽게 오가는 것조차 한동안 매우 힘들었다.
김 씨의 베트남 소재지 관련 첩보가 많았지만 검거가 쉽지 않았던 까닭은 그가 수사망을 피해 자주 거주지를 옮겼기 때문이다.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한 전재홍 경찰청 인터폴 계장은 “도피사범들은 주기적으로 옮기는 게 습성화된 것 같다. 언제 잡힐지 모른다는 마음이 항상 있기 때문에 주기적으로 계속 옮겨주는 것 같다”고 말했다.
‘텔레그램 마약왕 전세계’ 박왕열이 2020년 10월 필리핀에서 붙잡히고, 2022년 4월에는 ‘탈북 마약왕’ 최 씨가 캄보디아에서 검거돼 국내로 송환되면서 김 씨 관련 수사도 속도를 냈다. 참고로 박 씨는 아직 필리핀과 법무부가 아직 송환 절차를 마무리 짓지 못해 현재 필리핀에 수감 중이다.
이후 꾸준히 김 씨와 관련된 여러 가지 첩보를 입수한 경찰청은 베트남 공안과의 협의를 거쳐 2022년 5월 공동조사팀을 현지에 파견하기도 했다. 그리고 최근 확실한 첩보를 입수한 경찰청은 7월 16일 경찰청 인터폴 계장과 베트남 담당, 인천경찰청 국제공조팀원, 경기남부경찰청 수사관 등으로 구성된 검거 지원팀을 베트남으로 파견했다. 그리고 바로 다음 날인 17일 오후 2시쯤 베트남 공안과 함께 베트남 호찌민 소재의 김 씨 주거지를 기습해 검거하는 데 성공했다.
전재홍 경찰청 인터폴 계장은 “사라 김은 베트남 내에서 인도네시아 사람들이 많이 거주하는 지역에 있었다. 자신이 한국 사람이 아닌 것처럼 위장하려 했던 것 같다”면서 “한국인 근처에 안 가고 외국인 있는 곳에 있어서 자기가 한국인이 아닌 것처럼 해서 검거를 피하려고 했던 것 같다”고 설명했다.
사실 이번에도 검거 작전도 실패할 뻔했다. 확실한 첩보를 바탕으로 경찰청이 검거 지원팀을 베트남으로 파견했는데 김 씨가 또 거주지를 옮겼기 때문이다. 7월 16일에 호찌민에 도착해 17일에 검거 작전에 돌입할 계획이 어긋날 위기의 순간이었다. 그런데 베트남 공안이 다시 추적을 해 이사 가는 새 거주지를 알아내면서 예정대로 검거 작전이 개시돼 결국 붙잡았다.
호찌민 시내 한복판에 외국인이 많이 사는 고급 주상복합 아파트로 거주지를 옮기던 김 씨는 채 짐도 풀지 못한 채 베트남 공안과 한국에서 파견된 검거 지원팀에 검거돼, 이틀 뒤인 19일 국내로 송환됐다. 이렇게 3년여 동안 이어진 대한민국 경찰청과 베트남 공안부의 국제 공조수사가 비로소 큰 성과를 냈다.
게다가 김 씨 검거 과정에서 또 다른 성과도 있었다. 검거 당시 김 씨와 함께 있던 또 다른 한국인이 있었는데 그 역시 보이스피싱으로 수배 중인 인물이었다.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전재홍 경찰청 인터폴 계장은 “확인해 보니 보이스피싱으로 수배 중이던 사람이었다”라며 “딱 보니까, 계속 도피사범 업무를 하다 보니까 사진을 자주 본다. 사진을 보고 이름을 들으니까 알겠더라”고 말했다. 김 씨와의 공범 여부까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지만 그 역시 보이스피싱 수배범인 까닭에 베트남 현지에서 행정 절차가 끝나면 22일 국내로 송환될 예정이다.
김 씨가 텔레그램을 활용해 국내 공급책과 거래하며 필로폰과 합성대마 등을 국내로 판매하기 시작한 것은 2018년부터로 알려져 있다. 바로 경찰이 김 씨의 존재를 파악해 2019년부터 본격 수사에 돌입했지만 김 씨는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마약 공급을 이어가며 세력을 키워갔다. 한국 경찰과 베트남 공안의 거듭된 공조 수사를 비웃기라도 하듯 거물로 성장한 김 씨는 동남아 마약밀수의 최상선 총책이 된다.
김 씨는 ‘동남아 3대 마약왕’으로 구분되지만 그가 ‘텔레그램 마약왕 전세계’ 박왕열과 ‘탈북 마약왕’ 최 씨에게도 마약을 공급했음을 감안하면 그가 실질적인 최상선이다. 심지어 박왕열도 김 씨의 직원에 불과하다는 주장도 있다. 뉴스타파가 단독 보도한 한 마약 유통책의 편지에는 “박왕열은 김 아무개의 직원입니다. 마약한 지 얼마 안 됐어요. 광고 사진들도 김 아무개 작품이고요”라는 표현이 나온다.
뉴스타파는 취재진이 마약 판매상으로 위장해 김 씨와 문자로 대화를 주고받은 내용도 공개했는데 여기서 김 씨는 “필리핀 감옥에서 박왕열을 처음 만났고 탈옥한 박왕열에게 마약을 대량으로 공급해 줬다”고 말했다.
결국 경찰은 김 씨의 체포 및 국내 송환에 성공했다. 경찰에서 파악한 국내 판매책 등 공범만 20여 명이고 확인된 마약 국내 유통 규모는 시가 70억 원이 넘는데, 비로소 김 씨가 검거돼 국내로 송환된 만큼 보다 정확한 유통 규모가 밝혀질 전망이다. 경찰은 지금까지 파악된 수치보다 실제 유통 규모가 훨씬 클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강기택 경찰청 인터폴국제공조과장은 “베트남 공안부와 지속적인 공조를 통해 동남아 마약밀수 조직의 최상선 총책을 검거한 우수 사례”라며 “앞으로도 해외 거점 범죄에 대응하기 위해 외국 경찰과 국제 공조를 강화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전동선 프리랜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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