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계변경의 용역비 협의 요구에 조합 측 묵묵부답…오늘 8월 총회 결과 주목
#반응 없는 조합에 설계사 최후통첩
둔촌주공 재건축 사업의 대표 설계사인 삼우종합건축사사무소(삼우건축)는 지난 7월 5일 조합 측에 ‘설계변경비 협의 독촉, 실시설계도서 납품 시 기성 미지급에 대한 조합의 설명 재요청의 건’이라는 제목의 공문을 발송했다. 삼우건축에 따르면 2019년 7월 이후 1차~4차에 달하는 설계변경의 용역비 협의를 줄곧 진행했으나 2년 가까이 지난 현재까지도 용역비를 확정받지 못한 상황이다.
삼우건축 측은 공문을 통해 “더 이상 선투입된 비용을 감당할 수 없다”며 “7월 31일까지 설계변경비에 대한 금액 확정이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설계변경 업무를 중단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게다가 2021년 10월 실시 설계도서의 납품을 완료했지만 조합은 설계 용역비로 책정된 37억 원 중 절반 수준인 18억 5000만 원만 지급됐다는 것이 삼우건축의 주장이다. 삼우건축은 2021년~2022년에 걸쳐 조합에 수차례 공문을 보내 미수금 정산과 해명을 요청했으나 조합 측에 별다른 입장을 듣지 못하고 있다. 이와 관련, 조합 관계자는 “재건축 현장에서 정산 독촉을 받는 건 흔한 일이고 관련 사안은 내부에서 합리적으로 검토해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조합 측의 입장과 달리 설계사의 업무중단은 공사 재개를 위해 반드시 해결해야 하는 문제다. 재건축업계 한 관계자는 “건축사무소가 설계변경 업무를 중단하면 공사가 재개된다고 해도 세부 설계도면이 없어 다시 멈출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분쟁이 심화되는 가운데 여전히 공사 재개의 실마리는 보이지 않고 있다. 둔촌주공 재건축현장 전체에 유치권을 행사 중인 시공사업단(현대건설·HDC현대산업개발·대우건설·롯데건설)과 둔촌주공조합 정상화위원회는 지난 7월 13일 1차 면담을 갖고 협의체를 구성한 상태다. 정상위 측에서는 시공사업단이 8월 23일 사업비 7000억 원을 대위변제해준 후 구상권 행사 및 조합 재산에 대한 가압류 조치 등을 유예해줄 것을 요청했다. 철거 예정인 타워크레인 역시 8월 말까지 철거 유예를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시공사업단은 7000억 원을 대신 상환하고 구상권을 행사하지 않는 건 주주에 대한 경영진의 배임행위에 해당하므로 불가피하다고 답변했다. 시공사 측은 구상권 행사 후 압류, 경매 등에 대해서는 조합원들의 정상화 의지에 따라 일시적 자금 지원이나 리파이낸싱 등 대안 마련을 긍정적으로 검토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즉 구상권 행사는 피하기 어렵다는 의미다.
#조합장 사퇴, 조합원 여론 바뀌나
구상권 행사를 피하기 힘든 상황에서 지난 7월 14일 집행부 측은 돌연 새로운 대주단 섭외 소식을 알렸다. 새롭게 사업비 대출에 성공했으므로 시공사가 대위변제를 할 필요가 없고 경매나 압류 등 시공사의 구상권 행사 리스크도 제거할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국내 대형 증권사 1곳, 소형 증권사 2곳에서 1년 동안 7.5%의 금리와 1% 수준의 취급수수료를 내는 조건이다.
하지만 조합원들의 반응은 조합 측의 기대와는 달랐다. 둔촌주공조합 정상화위원회(정상위) 한 관계자는 “조합원들 사이에서는 금리 급상승기에 시공사 보증 없이 공사가 중단된 재건축 현장에 돈을 빌려주는 곳이 과연 제대로 된 곳이냐, 사채라도 쓴 거 아니냐는 반응이 주를 이뤘다”고 말했다.
실제 현재 비공개로 전환된 상태인 ‘둔촌주공 조합원 모임’ 온라인 카페 내부에서는 조합원들의 반발과 문제제기가 이어지자 대대적인 활동정지 처분과 '강퇴' 처분이 이루어졌다는 증언이 나왔다. 활동을 정지당한 조합원들이 정상위 인터텟 카페로 모여들면서 가입자와 게시글 등을 반영하는 활동점수가 2배 가까이 늘기도 했다. 상황이 이렇자, 결국 김현철 조합장이 7월 17일 사퇴하면서 대출 포기 의사를 밝히면서 소동이 일단락됐다. 현재는 박석규 재무이사가 조합장 직무대행을 맡고 있다.
조합 집행부 측은 7월 20일 현재 시공단과 대주단 교체 없이 충실히 협상에 임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상태다. 하지만 공사 재개의 가장 큰 걸림돌로 부상한 상가 분쟁과 관련 조합은 기존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앞서의 조합 관계자는 “PM사가 요구하는 보상안이 있으면 합리적인지 검토하겠다”고 말했다.
#8월 총회가 분수령 될지 주목
공사 지연 기간이 길어지면서 조합원 이자 부담은 점차 늘어가고 있다. 조합이 철거 기간 안에 동·호수 추첨과 조합원 분양 계약을 완료하지 않은 탓에 시공단의 사업비 지원이 2021년 12월로 중단됐기 때문이다. 60대인 한 조합원은 “지난해 말부터 한 달에 130만 원씩 이자를 내고 있다. 처음에는 3~5개월만 내면 될 거라고 했는데 공사 재개가 안 돼 이자를 매달 내고 있다 ”고 말했다.
또 다른 조합원은 “구 조합의 경우 관리처분계획 수립이 늦어지면서 뒤늦게 동·호수 추첨을 하려 했는데 당시 비대위였던 현 조합 집행부가 강하게 제동을 걸었다. 분양 계약이 마무리되면 설계변경이나 마감재 업체 변경이 어려워지기 때문에 현재 집행부 측이 분양 계약을 고의로 늦춘 게 아닐까 의심된다”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8월로 예정된 조합 총회에서 조합 집행부 해임 결의가 이루어질지 주목된다. 앞서의 정상위 관계자는 “집행부 해임을 위한 표를 충분히 모았기 때문에 이 추세대로라면 다음 총회에서 집행부 해임 결의를 통과시킬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며 “시간이 없기 때문에 총회 소집 권한을 가진 직무대행을 제외한 집행부를 바꾸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김정민 기자 hurrymin@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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