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당신은 끝났어 허먼 케인으로부터 성추행을 당했다고 주장한 샤론 바이어리크와 카렌 크라우샤. 진저 화이트는 13년 동안 케인과 불륜 관계였다고 주장했다(맨 왼쪽부터). 로이터/뉴시스 |
지난 두 달여 동안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대항마로 급부상하면서 공화당의 ‘검은 희망’으로 떠올랐던 허먼 케인(65)이 계속되는 성추문 스캔들에 발목이 붙잡혔다. 마치 양파 껍질을 벗기듯 계속해서 드러나는 성희롱 의혹에 급기야 불륜 스캔들까지 더해지면서 추락을 거듭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까지 케인에게 외설적인 말과 제스처로 성희롱을 당했다고 주장하고 나선 여성은 모두 네 명. 그리고 얼마 전에는 13년 동안 케인과 외도를 저질렀다고 주장하는 다섯 번째 여성까지 나타나면서 그를 더욱 궁지에 몰아넣고 있다. 지난 9월 이후 공화당 예비후보 가운데 선두를 달리면서 승승장구하고 있던 그였기에 이런 추문은 더욱 충격적이다. 하지만 현재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고 있는 그는 이런 흑색선전을 퍼뜨린 것이 다름 아닌 경쟁 상대들, 즉 다른 공화당 예비후보들이라며 비난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처음에는 들러리에 불과했던 자신이 유력한 후보로 떠오르자 근거 없는 소문을 퍼뜨리고 있다는 것이다. 만일 이것이 사실이라면 과연 그는 계속되는 경쟁자들의 공격을 꿋꿋이 버텨낼 수 있을까. 그리고 미 역사상 최초의 ‘흑 대 흑’ 대결을 이루게 될까. 하지만 현재로선 그가 그런 생각조차 하기 힘든 처지인 것은 분명한 듯하다. 지금 당장 코앞에 닥친 문제는 앞으로 얼마나 많은 여성이 더 튀어 나오느냐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공직 경험이라고는 한 번도 없는 신출내기 정치인인 케인이 미국인들 사이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이유는 뭘까.
미국 언론들은 케인의 강점으로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점을 꼽았다. 우선 그가 흑인이라는 점을 빼놓을 수 없다. 본인 스스로 “오바마에 맞설 강력한 카드는 바로 나”라고 외치듯이 오바마를 지지하는 흑인 유권자들의 표심 가운데 3분의 1을 가져올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그가 자수성가한 기업인이자 아메리칸드림의 표본이란 점도 사람들이 그에게 호감을 갖게 된 이유다. ‘코카콜라’, ‘버거킹’ 등을 거쳐 ‘갓퍼더스피자’ 체인점의 최고경영자로 근무했던 그는 파산 직전의 회사를 일으키는 데 성공하면서 뛰어난 경영 능력을 인정받았다. 이처럼 기업인 출신이라는 점이 ‘경제 대통령’을 간절히 원하고 있는 미국인들에게 신선하게 다가왔다.
이밖에도 낙태 반대, 작은 정부, 세금 인하 등을 주장하는 강경 보수파라는 점, 말기암을 이겨낼 정도로 투지에 불탄다는 점 역시 그에게 플러스로 작용했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그의 돌풍이 시작된 것은 지난 9월 무렵이었다. 5월 출사표를 던진 후 5%대 지지율로 내내 주목받지 못했던 그가 플로리다주의 비공식 예비투표에서 깜짝 1위를 하면서 급부상한 것이다. 당시 줄곧 1위를 달리고 있던 릭 페리보다 무려 두 배가 넘는 37.1%의 지지율을 얻은 그는 곧 공화당의 핵심 후보로 떠올랐다.
그리고 당시 ‘일회성’이라는 일부의 회의적인 태도에도 불구하고 돌풍은 계속됐다. 10월 초 미 중서부 비공식 투표에서도 77%의 지지율로 압도적 1위를 차지했는가 하면, NBC와 <월스트리트저널>이 공동 실시한 여론조사에서도 27%의 지지율을 얻으면서 1위를 기록했다.
10월 25일 <뉴욕타임스>와 CBS가 공동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 역시 마찬가지였다. 케인은 미트 롬니와 뉴트 깅리치를 따돌리고 25%의 지지율을 얻어 1위를 수성했다.
하지만 이런 달콤한 시간은 그리 오래 가지 못했다. 10월 30일, 그야말로 잘나가던 그에게 뜻하지 않은 역풍이 몰아치기 시작했다. 다름이 아니라 그를 둘러싼 성희롱 의혹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한 달 동안 계속해서 터져 나온 것이다.
가장 먼저 포문을 연 것은 정치전문 웹사이트인 ‘폴리티코’였다. 골자는 ‘케인이 1996~1999년 전국요식업협회(NRA) 회장으로 재직할 당시 협회 여직원 두 명에게 음란한 언행을 했고, 이에 불만을 제기했던 여직원들이 협회로부터 합의금을 받고 퇴사했다’는 것이었다.
현재 이 두 명의 여성 가운데 한 명은 신분이 밝혀졌지만 다른 한 명은 여전히 익명으로 남아 있는 상태. 웹사이트 ‘더데일리’에 의해 이름이 알려진 카렌 크라우샤(55)는 포드 대통령 시절 백악관 인턴으로 근무한 바 있으며, 요식업협회를 그만둔 후 법무부 홍보실을 거쳐 현재 국세청 감사실의 홍보부장으로 근무하고 있는 연방정부 공무원이다.
그녀는 자신이 1999년 케인으로부터 ‘부적절한 행동’을 당했다고 말하면서 “케인은 성희롱이라고 부를 수 있는 여러 가지 행동들을 했다. 나는 아직도 그때의 악몽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폭로했다. 케인을 가리켜 ‘몬스터’라고 부르길 주저하지 않는 그녀는 당시 4만 5000달러(약 5000만 원)의 합의금을 받고 회사를 그만 뒀던 것으로 알려졌다.
익명의 여성 역시 합의금으로 1년치 연봉에 해당하는 3만 5000달러(약 4000만 원)를 받았으며, “회사 워크숍 당시 호텔방에서 케인이 원치 않는 성적인 접촉을 시도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주장에 대해 케인 측은 “마녀 사냥이 시작됐다”며 반박하고 나섰다. 케인은 “아무런 근거 없는 흠집내기 공격”이라고 주장하면서 “나는 어떤 누구에게도 성희롱을 한 적이 없다. 모두 거짓말”이라며 혐의를 강력히 부인했다. 그러면서 그는 “도대체 누가 이런 소문을 퍼뜨리고 다니는지 모르겠다. 누군가 나를 끌어내리려 하고 있다”며 음모론을 제기했다.
그가 의심하고 있는 상대는 다름 아닌 릭 페리 캠프 측이다. 2004년 케인의 상원의원 선거 캠프에서 일했던 커트 앤더슨이라는 자문위원이 ‘폴리티코’에 정보를 흘렸다며 의심하고 있는 것이다. 현재 앤더슨은 페리 진영에서 일하고 있으며, 상원의원 선거 운동 당시 케인에게서 “과거 성희롱 혐의를 받은 적이 있다”는 말을 들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케인을 둘러싼 의혹은 커져만 갔다. 계속되는 질문에 말이 조금씩 바뀌면서 진정성을 의심받기 시작한 것이다. 처음에는 피해 여성들의 이름조차 모른다며 발뺌했던 그가 다음 날 갑자기 “한 명은 기억이 나는 것 같다”며 말을 바꾼 것이다. <폭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30대 후반에서 40대 초반의 한 여성이 내 행동 때문에 화를 냈던 일이 기억이 난다”라며 “어느 날 그녀가 내 사무실로 찾아왔다. ‘내 아내와 키가 비슷한 것 같다’며 내 턱에 손을 가져가면서 키를 재보는 시늉을 했다. 그런데 아마 이 동작이 오해를 샀던 것 같다”고 말했다.
이밖에도 그는 처음에는 “협회가 합의금을 지불했던 사실을 전혀 몰랐다”고 말했지만 나중에는 “3~6개월치 월급을 줬던 것으로 안다”며 말을 바꾸기도 했다.
하지만 이것이 끝이 아니었다. 잠시 숨을 돌릴 틈도 없이 곧 세 번째 여성의 폭로가 이어졌다. 요식업협회의 여직원이었던 그녀 역시 케인으로부터 외설적인 말과 행동을 당했다고 주장했으며, 심지어 케인이 회사 소유의 아파트로 자신을 초대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그의 제안이 불쾌하게 느껴졌던 그녀는 당시 이 요청을 거절했다고 말했다.
그리고 한 번 터진 봇물은 쉽게 멈출 줄 몰랐다. 이른바 ‘케인 스캔들’의 네 번째 여성인 샤론 바이어리크(50)라는 여성이 기자회견을 통해 “부적절한 행동을 인정하고 자백하라”며 요구하고 나선 것이다.
그녀는 자신이 1997년 케인에게 일자리를 부탁하던 중 자동차 안에서 성추행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그녀의 말에 따르면 케인은 그녀의 스커트 안으로 손을 집어넣어 음부를 더듬는 한편, 그녀의 머리를 자신의 다리 사이로 누르는 행동도 서슴지 않았다. 또한 그녀는 자신이 저항하자 그가 “일자리 구하러 온 거 아냐?”라며 되묻기도 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번에도 케인 측은 “나는 부적절한 행동을 하지 않았다”며 혐의를 부인했다. 케인은 “나는 그녀가 누구인지 모른다. 만난 적도 없다”고 말하면서 “거짓말 탐지기 검사를 받을 의향도 있다”며 맞섰다.
바이어리크의 진의를 의심하는 사람들 “그녀가 돈을 노리고 있는 것 같다”고 말하면서 그녀의 수상한 과거를 들춰내기 시작했다. 이를테면 사치를 부리면서 살다가 돈이 궁핍해지자 한밑천 잡기 위해 거짓말을 늘어놓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 2년 넘게 무직인 상태인 그녀는 과거 두 차례나 파산 신고를 냈을 정도로 형편이 어려운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 <시카고트리뷴>은 그녀가 세금을 미납하거나 신용카드 대금을 연체하는 일이 잦았고, 2001년 신고한 재산은 5700달러(약 650만 원)였던 반면 부채는 3만 6000달러(약 4100만 원)에 달했다는 점을 지적했다.
또한 그녀를 잘 아는 한 친구는 <뉴욕포스트>를 통해 “그녀는 평생 일하지 않고 살 만큼의 돈을 벌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다”라며 “그녀가 거짓말을 하고 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녀를 모른다고 주장하는 케인의 태도 역시 의심스럽긴 매한가지다. 라디오 진행자인 에이미 제이콥슨은 “케인은 거짓말을 하고 있다”면서 “케인과 바이어리크가 한 달 전 티파티 정기 행사에서 만나 다정하게 포옹하고 귀엣말을 나누는 모습을 봤다”고 주장했다.
이에 과연 누가 진실을 말하고 있을까 의심하고 있는 사람들은 모르긴 몰라도 양측 모두 100% 사실을 말하지 않고 있다며 의심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
한동안 잠잠했던 폭로전은 얼마 전 한 여성이 터뜨린 불륜 스캔들을 통해 재점화됐다. 진저 화이트라는 여성이 “나는 13년 동안 케인과 불륜 관계였다”고 주장하면서 다시 한번 케인을 궁지에 몰아넣은 것이다. 그녀는 <폭스5>와의 인터뷰에서 “불과 8개월 전만 해도 케인과 내연 관계였다”라며 “매우 단순하다. 복잡하지 않다. 나는 그가 유부남이란 사실을 알고 있었고, 내가 부적절한 행동을 하고 있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고 말했다.
케인과 불륜 관계였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그녀는 자신의 휴대폰을 증거로 제시했다. 실제 휴대폰의 전화번호부에는 케인의 개인 연락처가 저장되어 있었으며, 4개월 전까지 케인과 주고받았던 61건의 통화 기록과 문자 메시지가 남아 있었다. 이 가운데는 새벽 4시 26분에 주고받은 통화 기록도 있었다.
하지만 이런 메가톤급 폭로에도 케인은 꿋꿋했다. 그는 “그녀는 내가 친구 정도로 생각하는 아는 사람일 뿐”이라고 일축하면서 “절대로 부적절한 관계가 아니었으며 경제적으로 어려움에 처한 그녀를 도와준 것뿐”이라고 주장했다.
현재로서는 과연 어느 쪽이 진실을 말하고 있는지 알기 어려운 것이 사실.
그렇다면 이번 스캔들이 그의 지지율에 미치는 영향은 어느 정도일까. 과연 케인은 스캔들을 극복하고 내년 예비 투표에서 돌풍을 이어갈 수 있을까.
현재로선 그다지 상황이 낙관적이지만은 않다. 스캔들이 처음 불거진 지 일주일 만에 지지율이 하락세로 돌아서는 등 심상치 않은 조짐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11월 14일 실시된 여론조사에서는 뉴트 깅리치에 이어 두 달여 만에 2위로 밀려나기도 했다.
더 큰 문제는 앞으로다. 만일 계속해서 여섯 번째, 일곱 번째 스캔들이 터진다면 제아무리 너그러운 지지자들이라고 해도 쉽게 그의 편을 들어줄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갈수록 오리무중인 공화당 예비 후보 경선이 케인의 섹스 스캔들로 과연 앞으로 어디로 튈지 귀추가 주목된다.
김미영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
가상도시 건설게임 ‘심시티’서 따왔다?
케인이 오바마 정부의 증세 방안에 맞서 자신 있게 내세운 공약인 이른바 ‘9-9-9 정책’의 골자다. 단순하고 명확해서 모두가 이해하기 쉽다는 장점 때문에 지금껏 케인의 지지율 상승에 커다란 원동력이 됐던 효자 공약이기도 하다.
하지만 최근 이 정책에 숨은 비밀이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어 논란이 되고 있다. ‘왠지 어디서 많이 들어본 것 같다’며 의심하고 있는 사람들은 케인의 이 정책이 사실은 인기 비디오 게임인 ‘심시티’에서 따온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이를테면 가상 도시 건설 게임인 ‘심시티’ 시리즈 가운데 네 번째 버전에 등장하는 세금 정책과 똑같다는 것이다. 실제 이 게임 속에서 플레이어들은 도시를 건설하면서 각각 9%씩의 산업세, 주민세, 상업세를 내도록 되어 있다.
이와 관련, 케인의 공약이 엉터리라고 말하는 한 정치 인사는 “케인의 자문위원들이 급조해낸 것이다. 마치 케인이 쓰러져 가는 경제를 살려낼 전략이 있는 인물인 것처럼 보이도록 하기 위해서 만들어낸 가짜”라며 비난했다.
이런 주장이 제기되자 온라인 뉴스 웹사이트인 ‘허핑턴포스트’는 ‘심시티’ 개발회사인 ‘마지스’ 측에 “혹시 케인 측으로부터 연락이 온 적 있느냐”고 물었다. 이에 ‘마지스’의 한 게임 개발자는 “없다. 설령 그랬다고 해도 우리로선 별로 놀라운 일이 아니다. 우리는 정치인들에게 ‘심시티’와 같은 혁신적인 게임을 참고할 것을 늘 권고하고 있다. 그들이 게임을 통해 사회적인 그리고 경제적인 영감을 얻길 바란다”고 말했다.
하지만 케인 측은 이런 주장에 대해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으면서 “어찌 됐건 모두들 ‘9-9-9 정책’을 좋아하고 있는 건 맞지 않느냐”며 말을 아끼고 있다.
한편 케인 측은 ‘9-9-9 정책’에 대해 경제 자문위원이자 오하이오의 은행가인 리처드 로리 주니어에게서 얻은 아이디어라고 말한 바 있다. [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