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손정의 소프트뱅크 사장은 원자력 중심의 에너지 공급에 반대하며 대규모 태양광 단지를 조성하는 ‘메가 솔라’ 계획을 야심차게 추진 중이다. 연합뉴스 |
▲ 요네쿠라 회장 |
마치 손정의 사장을 견제라도 하듯 ‘풍력, 태양열 등 재생에너지는 기대할 수 없다’는 문구도 곁들였다. 비용이 많이 들고 공급이 불안정하다는 이유다.
회의에 참석한 손정의 사장은 원전 추진에 대한 반대의사를 분명히 했다. 요네하라 회장은 손 사장의 말을 몇 번씩이나 가로막으며 이사회의 박수를 유도해 회의를 끝내려 했다. 이에 손 사장은 “만장일치가 아니다”며 마이크로 책상을 두드리면서 반발했다. 평소에 보인 온화한 성격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손 사장은 나아가 “역대 게이단렌 회장, 부회장이 원전 사업자로 참여해온 만큼 원전사고로 국민에게 심대한 악영향을 끼쳤다는 사실을 게이단렌이 먼저 사죄하라”고 말했다. 후쿠시마 원전 운영사인 도쿄전력의 회장이 과거 장기간 게이단렌 회장을 맡았음에도 반성의 기미를 전혀 찾아볼 수 없음을 지적한 것이다.
하지만 300여 개 회사 경영자들이 참석한 이사회에서는 손 사장의 주장에 찬성 의견이 하나도 나오지 않았다. 결국 손 사장은 자기 의견서를 제출하는 것으로 회의를 마쳐야 했다. 그야말로 고립무원에 따돌림 수준인 셈이다. 손정의 사장과 뜻을 같이하던 일본 최대 쇼핑몰 사이트 라쿠텐의 미키타니 히로시 사장(46)은 지난 6월 “도쿄전력을 감싸는 태도를 이해할 수 없다”며 게이단렌을 탈퇴했다. 당시 아무도 말리는 이가 없었다고 한다.
더군다나 회의가 끝난 다음 주 요네쿠라 회장은 기자회견에서 “말이 안 되는 논리였다”며 손정의 사장의 발언과 태도를 문제 삼았다. 그래서인지 손 사장이 “게이단렌 내부에서 이의를 제기하는 게 필요하다”며 탈퇴 의사가 없음을 재차 확인했음에도 불구하고, 여기저기서 손 사장의 게이단렌 탈퇴 여부를 점치는 말이 나오고 있다.
손 사장이 의욕적으로 진행하고 있는 메가 솔라 계획도 주춤한 상태다. 손 사장의 계획에 동참해 에너지 혁명을 일으키겠다며 대규모 태양광 단지 유치 경쟁을 뜨겁게 벌였던 일본의 지자체들이 이제 예산 등을 이유로 일본정부의 눈치만 보고 있기 때문이다. 지자체에서는 태양광 패널 설치 등에 돈이 많이 드는 만큼 투자비용을 충당할 수 있도록 나중에 일본정부가 태양광 발전 전력량을 매수해주길 희망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 국회에 계류 중인 ‘재생에너지특별조치법’에는 태양광 발전 전력량을 일본 정부가 사들이는 전량매수제도가 빠져있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 10월 신임 노다 요시히코 총리가 후쿠시마 원전사고 후 가동을 중지한 일부 원전을 전면 재가동하겠다고 발표한 후, 전망이 불투명해졌다.
설상가상으로 값이 싼 중국산 태양광 패널의 시장 확대로 최근 일본의 태양광 패널 업체가 줄줄이 도산하면서 일본 내 관련 시장이 흔들리고 있다. 또 손 사장의 구상대로 대규모로 싸고 빠르게 태양광 단지를 건설하려면, 현재 각기 다른 태양광 패널의 사이즈와 부속기기의 규격을 통일해야 하는데 아직까지 표준화가 이뤄지지 못했다. 이런 어려움으로 인해 훗카이도에 건설 예정된 태양광 단지 규모가 10분의 1로 줄어들 것이란 소문도 흘러 나왔다.
이제 손 사장이 이런 난국을 어떻게 타개해 나갈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닛케비즈니스>에서는 “손정의 사장의 돌파력이 시험받는 시기”란 평을 내놓았다. 소프트웨어로 시작해 인터넷 서비스, 휴대폰으로 사업 확장 시마다 위기를 겪으면 이를 곧 극복해 온 손 사장의 경영 능력이 다시금 시험대에 올랐단 것이다.
이번에 손 사장이 공공연히 게이단렌 회장에게 반기를 든 것은 마찰을 충분히 예상하고, 나름대로 정치적인 계산 하에 이뤄진 행동이었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일본경제신문>의 분석에 따르면, 손정의 사장은 게이단렌이 원전 추진을 공식적인 입장으로 삼겠다고 공표한 시점인 7월 1차 제언 당시에는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고 한다.
그런데도 손정의 사장이 이 문제를 들고 나오는 데에는 시기를 노렸다는 점이다. 7월 당시에는 간 나오토 전 총리가 재임하고 있었으나 그 후 총리가 바뀌면서 탈원전 추진 정책이 흔들리자 게이단렌과의 대립 구도를 형성함으로써 대중에게 자기 입장을 널리 알리려 했다는 것이다.
손 사장의 인기는 여전하다. 각종 설문조사에서 호감도 상위권을 휩쓸고 있다. 일본 역사상 천재 경영자 2위, 일본의 이상적인 리더상 1위에 오르는 등 ‘결단력이 뛰어나며 신념을 갖고 개혁하는 리더십을 가진 따뜻한 경영자’로 부각되고 있다.
손 사장은 최근 소프트뱅크 야구팀 ‘소프트뱅크 호크스’가 일본시리즈에 우승했을 때 선수들이 먼저 나서서 헹가래를 쳐주었다. 스포츠 전문지 <넘버>에 따르면, 손 사장은 여태까지 기업 구단주와 전혀 다른 스타일로 선수 한 명 한 명을 존중하는 태도를 보여주며 선수들의 호감을 사고 있다고 한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요네쿠라 회장에 대한 여론은 썩 좋지 못하다. 평상시 워낙 고압적인 태도로 말을 해 인터넷에 어록이 떠도는 등 그간 좋은 인상을 주지 못했다. 또 원전 사고 후 무책임하고 무성의한 대응으로 일관해온 도쿄전력을 모두가 비판하는 와중에도 홀로 “도쿄전력은 도덕적인 기업”이라고 추켜세우거나 “피해자”라며 두둔하는 발언으로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제이캐스트뉴스>에 따르면 요네쿠라 회장이 원전 재가동을 주장하는 것은, 그가 이끌고 있는 일본 최대 화학 기업 스미토모화학이 원전의 핵연료 재처리 등으로 거액을 벌고 있기 때문이란 설도 제기되고 있다.
조승미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