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제국주의가 우리를 이렇게 만들어 놨어. 우리 민족은 통일이 돼야 해. 우리 민족끼리 통일을 못할 이유가 없어.”
나는 의문이 들었다. 사회의 밑바닥에서 소외되고 늙고 가난한 그들이 천민자본주의의 졸부들을 봤을 때 과연 우리 민족이라는 동질감을 느꼈을까. 당에서 강제로 박아 넣은 정신적 전족을 차고 앵무새 같은 구호를 외치는 것은 아닐까. 화면 속에서 한 노인이 이런 질문을 받는다.
“여기서 평생 살았는데 왜 굳이 북으로 돌아가려고 해요?”
“북에 두고 온 아들을 보고 싶어. 아마 지금 육십쯤 됐을 거야.”
그가 북으로 가고 싶은 진짜 이유였다. 그 노인은 한마디를 덧붙인다.
“남조선 사회에서 살아보니까 개인의 이익이 전부예요. 자기 이익 앞에서는 사회도 국가도 없어요.”
뼈가 들어있는 말이었다. 그러면 무엇이 그들을 평생 그렇게 경직되게 했을까. 그 답은 탈북한 지 얼마 되지 않는 북한 여성의 입을 통해 나왔다.
“남쪽으로 가서 통일 투쟁을 하다가 잡힌 영웅들의 가족에게 당은 매달 생활비를 지급하고 있어요. 혁명 영웅이 남조선에서 죽을 때까지 그 돈이 나오는 거죠. 북에 있는 가족들은 그 돈이 중단될 때 아 이제 우리 아버지가 내 남편이 남조선에서 죽었구나 하고 짐작을 합니다.”
그들이 왜 전향을 안 했는지 대충 알 것 같았다. 우리 사회는 그들의 둥지가 될 수 있을 만큼 따뜻하지 못한 것 같았다. 얼마 전 탈북한 지 몇 년 안 되는 여성과 만나 얘기를 나눈 적이 있다. 그녀는 구청의 계약직 공무원이 되어 민원창구에서 일하고 있었다. 그녀가 이런 말을 했다.
“제가 북한 말투니까 민원인 중에 철저히 무시하는 사람이 있어요. 돌돌 만 종이로 머리를 때리면서 북으로 도로 가라고 했어요. ‘내가 뭘 잘못했습니까? 선생님’ 하고 되물었죠. 저는 어린 딸을 데리고 탈북했는데 돈이 없어 술집까지 나간 적이 있어요. 그렇게 돈을 벌어 딸을 학교로 보냈는데 딸은 학교에서 왕따가 됐어요. 다른 아이들이 풀어진 자기 운동화를 우리 딸 보고 무릎 꿇고 앉아서 매라고 했대요. 이렇게 살 바에야 차라리 가족이 있는 북으로 돌아가고 싶어요.”
나는 우리 사회의 허영심과 위선을 보는 느낌이었다. 그들과 반대로 대한민국에서 북한으로 탈출한 사람의 얘기를 들은 적도 있다. 사업이 망하고 노숙자 신세가 된 사람이었다. 그는 중국을 거쳐 북한으로 들어갔다. 사회주의 사회는 평등하게 대해 줄 것 같았다. 가보니까 모두가 처절한 가난으로 평등했다.
수은주가 영하 20℃ 아래로 내려가는 겨울날 회령의 숙소에는 변기의 물도 나오지 않았다. 처음 얼마 동안 잘해주던 반짝 인심이 바로 식더니 냉대가 시작됐다. 어느 날 그를 판문각을 통해 남쪽으로 돌려보내라는 당의 명령이 떨어졌다. 남쪽의 노숙자 쓰레기가 시대의 물결에 밀려왔다는 것이었다.
그가 남쪽으로 내쫓기기 일주일 전쯤이었다. 그들은 그의 몇 개 안 남은 이와 썩은 이빨을 보더니 틀니를 만들어 주겠다고 했다. 그게 인민공화국의 온정이라고 했다. 그가 이를 뽑는 순간이었다. 북의 치과의사는 마취제가 없어서 미안하다고 하면서 그의 생니를 모두 뽑더라는 것이다.
판문각에서 남쪽으로 내동댕이쳐진 그는 몇 달 징역을 살고 나왔다. 그는 노숙자를 하더라도 대한민국이 좋다고 내게 말했다. 정부에서 주는 돈으로 쪽방을 얻고 혼자 밥을 해 먹어도 자유가 좋다는 것이다. 남과 북이 오랜 세월 너무 달라진 것 같다. 정말 우리의 소원이 통일인지, 나는 잘 모르겠다.
같은 민족이라도 나라가 다른 경우가 많다. 조선족은 같은 민족이지만 중국인이다. 주위에 미국 시민권자도 흔하다. 남과 북이 서로 쌍둥이 빌딩같이 공존하고 소통할 수 있는 통로를 마련해 사는 게 현실적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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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상익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