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문득 '나는 밥값을 하며 살고 있나?'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런데 밥값을 한다 싶었다가도 어느새 내 밥그릇이 또 커져 있어요. '아! 온전히 밥값을 하는 것은 불가능하구나!' 그래서 밥값 반이라도 하자고 마음먹었죠."
교과서에만 있는 경험해보지 못한 이야기로 농업에 대해 가르치는 게 아니라 현장에서 직접 겪어보고 체험하면서 농업, 농촌, 농민의 가치를 이야기하고 싶었다는 20년 차 연암대학교 농대 교수 채상헌 씨(59). 뜻한 바를 실현하기 위해 그는 1년 전 본격적으로 귀촌했다.
그의 화두는 쉬운 것 같으면서도 어려운 밥값. 귀촌 후 그는 요즘 사람들이 즐겨 찾는 사진이나 영상으로 자연의 아름다움과 소박한 시골살이의 재미를 담아 SNS에 공유하고 있다. 배를 채우는 농사도 중요하지만 가슴을 채우는 시골의 이야기로 사람들과 소통하는 것도 밥값이라고 생각했다.
강단에 서거나 귀농귀촌 전문가로 활동하면서 한때는 밥값을 다 하고 있다고 생각한 적도 있지만 지금은 생각이 바뀌었다. 밥그릇은 어느새 커져 밥값을 한다는 게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밥값 반만이라도 하자'고 마음먹었다. 막상 시골에 와서 사계절을 살아보니 "시골은 넓고 마당의 할 일은 끝도 없다"는 채상헌 씨. 리얼 포레스트를 선택한 그의 행복한 일상을 들여다본다.
"돈을 많이 들여서가 아니라 저비용으로 좀 더 편리한 쪽, 좀 더 보기 좋은 쪽으로 자꾸 궁리하게 되는 거죠. 제가 궁리라는 말을 좋아하거든요."
채상헌 씨의 텃밭은 보통 시골에서 볼 수 있는 텃밭과는 사뭇 다르다. 저마다 다른 특성을 가진 여러 가지 채소와 과일을 각각 다른 토양이 담긴 틀에 심었다. 이른바 쿠바 식 틀밭. 비가 와도 쓸려나가지 않고 바닥과 닿지 않고 떠 있어 병충해도 덜 생긴다.
잡초도 적게 나 깔끔하고 디자인도 이색적이다. 조금 더 편리한 텃밭에 대해 궁리하다 난방을 위해 폐목재를 싸게 들여오면서 쿠바 식 틀밭에서 착안해 채상헌 식 틀밭을 만들었다. 키친 가든으로도 손색이 없어 그는 귀촌을 주저했던 아내를 만족시켰다.
이론이 있어서가 아니라 비용을 절약하며 조금 더 편리한 쪽으로 조금 더 보기 좋은 쪽으로 궁리하다 보니 만들게 되었다.
아내가 좋아하는 장미 목수국 백합 등 예쁜 꽃나무들과 하트 모양으로 다듬어 잡초지만 화초가 된 토끼풀밭, 만질수록 은은한 향기를 내는 백리향 등이 자라고 있는 에덴정원. 이곳은 잠시 일손을 놓고 가만히 들여다보며 자연생태를 관찰할 수 있는 생태원이다.
항상 일이 눈에 밟혀 이것저것 가꾸다 보니 가랑비에 옷 젖듯 지출이 늘었다. 도시에서 살 때보다 경제적으로 궁핍해지고 육체적으로도 힘들어진 게 사실이다. 그런데도 그 어느 때보다 이루 말할 수 없이 풍성해진 느낌이라는 채상헌 씨. 그는 가슴을 채우는 시골 생활을 위해 궁리하고 또 궁리하고 있다.
"참새가 사는데 내가 왔지, 내가 사는데 참새가 온 게 아니잖아요. 그래서 함께 살기로 했어요."
100여 마리 참새가 수시로 날아드는 집. 이사를 오기 전부터 이 집을 터전으로 살았던 참새들이다. 참새들이 사는 지붕 틈을 막으라는 주변 사람들의 권유를 뒤로하고 채상헌 씨는 기꺼이 참새들과 동거하기로 마음을 먹고 참새들의 뒤치다꺼리를 자처한다.
장마 끝 둥지 보수 고사를 했는지 여기저기 참새들이 가져다 놓은 나뭇가지와 지푸라기로 집 안팎이 깨끗할 새가 없다면서도 그의 손길은 애정이 넘친다. 참새들의 거처를 깨끗이 뒷정리해주는 집사(?) 곁에서 아무렇지 않게 노니는 참새들의 풍경은 평화롭기만 하다.
사계절을 함께 지내면서 이젠 참새들과 정이 들어 지붕 틈을 막지는 못할 것 같다고 말하는 채상헌 씨. 어느 날 문득 들었던 생각 하나 '참새가 사는데 내가 왔지, 내가 사는데 참새가 온 건 아니잖아?' 그게 참새들과 어울리며 함께 살아가기로 한 이유였다.
"햇빛을 좋아하는 백리향에게 그늘을 드리운 살구나무지만 살구가 떨어질 때 다치지 말라고 백리향이 살포시 받아주는 걸 보면서 식물에서 하나 배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꼿꼿하게 서 있는 애벌레를 보며 '벌레인데도 일자로 반듯이 서 있네. 참 심지가 곧구나' 생각하고 청개구리를 보며 '내가 청개구리라 청개구리가 많은가?' 생각한다는 채상헌 씨. 귀촌 후 그는 대수롭지 않았던 자연에서 느끼고 깨닫는 게 많아졌다.
살구나무가 햇빛을 좋아하는 백리향에게 그늘을 드리웠음에도 떨어지는 살구를 상처 없이 살포시 받아주는 것을 보면서 그는 관용을 배웠다. 미워하기도 하고 시기질투도 해서 때론 해를 입히기도 하는 게 사람살이라면 변화무쌍하면서도 꾸준한 자연은 전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아가고 있다.
이렇게 시골 살이를 통해 자연에서 받은 감동과 성찰을 기록하고 사람들과 소통하는 농대 교수 채상헌 씨. 그는 오래 꿈꾸었던 '나 바라보기, 나답게 살기'의 시간을 그린 라이프 디자이너로 비로소 온전히 살아가는 중이다.
이민재 기자 ilyoon@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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