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전대보다 기탁금 3배 올라 경비 더하면 억대…원외·청년 50% 감액도 부담 “기탁금 문턱 낮춰야”
“기탁금도 부담스러워 솔직한 심정으로 올라가도 문제다. 후원금이 절실한 상황인데 대통령선거, 지방선거 등 큰 선거를 계속 치러 지지자 분들이 후원할 여력이 없을 거다. 결국엔 사비로 치러야 하는데, 문자 비용, 홍보물만 해도 몇 천은 우습다.”
더불어민주당 8·28 전당대회에 출마한 한 예비후보가 사석에서 전한 말이다. 민주당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7월 12일 전당대회 출마자에 대한 기탁금 액수를 확정했다. 당대표와 최고위원 후보는 각각 1500만 원, 500만 원이다. 본선에 올라가면 당대표 후보는 6500만 원, 최고위원 후보는 2500만 원을 추가로 내야 한다. 본선에 진출하는 후보들의 경우 기탁금만 각각 8000만 원, 3000만 원이 필요한 셈이다. 다만, 원외 39세 미만 청년과 장애인 경우 정해진 기탁금의 절반만 내면 된다.
이렇게 모인 기탁금은 전당대회 장소 섭외, 여론조사, 대회 인건비 등으로 쓰인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서 전자투표 기기를 빌려오고 투표사무원을 투입하는 등 대관료와 인건비가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입후보자들은 승패와 상관없이 당에 낸 돈을 돌려받지 못한다.
이번 전당대회는 전보다 기탁금 액수가 3배가량 증액된 것으로 파악됐다. 2020년 민주당 전당대회의 경우 당대표, 최고위원 후보의 예비경선 기탁금은 500만 원이었다. 여론조사 비용이 늘어나면서 기탁금을 올렸다는 게 당의 설명이다. 신현영 민주당 대변인은 7월 12일 “예비경선에서 여론조사가 추가됐다”며 “표본 수를 충분히 하기 위해 4000명을 대상으로 하기에 경선 소요 비용이 증가했다”고 전했다.
민주당 관계자에 따르면 이번 전당대회는 당에서 17억 원을, 전당대회 입후보자들이 7억 원을 부담하기로 했다. 대통령 선거나 국회의원 선거 등과 달리 전당대회 기탁금은 돌려받지 못한다는 점을 고려했을 때 후보자들로선 부담이 될 수밖에 없는 금액. 다만 전국 순회를 몇 차례씩 열어야 하고, 공보물 제작 등 전당대회를 치르는 비용을 당에서 최대한 부담했다는 게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하지만 기탁금 외에도 감당해야 할 경비가 적지 않은 후보들로서는 선거 자체가 버거운 상황이다. 최고위원에 출마한 장경태 의원은 일요신문에 “문자, 전국 순회 경비, 숙박 유세단 인건비 등 다 사비로 치러야 한다”며 “홍보 문자 같은 경우는 한 번만 돌려도 2000만~3000만 원가량 든다. 올해 모인 후원금이 많지 않은 데다, 당에 후원해주시는 분들이 한정돼 있다. 이 분들도 대선, 지방선거 등 큰 선거를 거치다 보니 후원이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실제 선거 운동의 기본으로 꼽히는 문자만 해도 한 차례 보내는 데 수천만 원이 나간다고 한다. 건당 단문은 13~18원, 사진이 들어간 장문은 30~40원이다. 2022년 선거권을 갖는 민주당 권리당원 수는 123만 명이다. 합산해 보면 한 건만 보내도 대략 2000만~5000만 원이 들어간다. 이동학 당대표 예비후보는 “기탁금을 내기에도 부족한 상황이기 때문에 문자는 상상조차 못 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나마 원내 후보들 상황은 좀 낫다. 국회의원 후원계좌로 후원을 받을 수 있는 데다, 보좌진 등 인력이 있어 선거 운동이 수월하다. 원내 후보들이 모을 수 있는 후원금 총액은 4억 5000만 원(국회의원 후원회 계좌 3억+ 전당대회 전용 후원회 계좌 1억 5000만 원)이다. ‘1강’ 후보인 이재명 의원은 전당대회 계좌를 연 지 2시간 만에 1억 5000만 원의 후원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인지도가 떨어지는 원외 인사의 경우에는 1억 5000만 원 한도의 전당대회 전용 후원 계좌를 갖는데, 이마저도 녹록하지 않은 모습이다. 김지수 최고위원 예비후보는 통화에서 “경선에 올라가면 1250만 원을 내야 하는데 이도 쉽지 않다”며 “선거 사무실은 꿈도 못 꾸고, 페이스북 등 SNS로만 선거 활동을 하고 있다. 국회의원들은 보좌진도 있고 지역사무실도 있으니 훨씬 더 유리한 편”이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후보들 사이에서는 기탁금 문턱을 낮춰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권지웅 최고위원 예비후보는 통화에서 “감사하게도 절반 감액이 됐지만, 홍보물, 지역 순회 비용, 식대 등 비용이 꽤 많이 든다. 본선에 올라가면 돈이 최소 5000만 원 이상 필요하다고 하더라”며 내부 상황을 전했다.
그러면서 그는 “기탁금 문턱이 굉장히 높고, 선거 비용이 높아 엄두를 못 내는 측면들이 있다. 원외에서 도전한 경우가 잘 없는데, 안정적인 수입이 없는 상태로 출마하는 것은 이례적이다. 선거 공영제를 운영하는 다른 나라들도 꽤 있는 상황에서, 기탁금 문턱을 좀 많이 낮출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기탁금이 높은 상황에도 전당대회는 정치인들에게 뿌리치기 어려운 기회임에 분명하다. 정치인으로서의 ‘체급’을 높일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기 때문이다. 당대표·최고위원 후보자들은 예비 경선을 통과할 경우 전국을 돌며 본인의 입지를 다질 수 있다.
민주당 관계자는 “이번 전당대회는 이재명 의원이 주인공이 될 가능성이 높다. 2024년까지는 이재명의 민주당이라고 보면 된다. 그걸 다 알면서도 억대 돈을 들여 선거에 나가는 이유가 다 있다. 선거 자체가 돈과 세력 싸움인데, 체급만 올라가면 이후에 후원이 어렵겠나. 체급을 올릴 수 있는 기회를 정치인이 마다할 이유가 없다”고 전했다.
설상미 기자 sangmi@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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