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케스트라가 본격적인 연주를 시작하기 직전, 연주자들이 각자 자신의 악기를 점검하는 시간이 있다. 지극히 짧은 시간이지만, 여러 가지 악기 소리가 뒤범벅되어 그야말로 혼돈의 극치를 보여준다.
이때 오케스트라 단원들은 자신의 악기 소리만을 듣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한다고 한다. 남의 소리를 듣지 않고 오로지 자신의 소리에만 집중하는 기묘한 순간이다. 청중은 곧바로 이어지는 훌륭한 화음을 창출하기 위한 진통의 시간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소음과도 같은 불협화음을 기꺼이 참아낸다.
남의 소리를 듣지 않고 자신의 목소리만 높이는 이러한 혼돈의 상황을 우리는 사회 속에서 종종 경험한다. 독선으로 무장된 주장이 판치는 세상, 정치 집단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이기도 하다.
소통이 불가능한 사회 모습을 아름다운 이미지로 극복하려는 노력을 보여주는 작가가 정관호다. 그는 서로 다른 생각으로 인해 대립과 반목하는 우리 현실에 대한 반성적 회화를 추구한다.
“소통이 불가능한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는 것 같아요. 서로가 자신들의 얘기만 옳다고 주장만 앞세웁니다. 남의 말을 들으려고 하지 않지요. 자신들의 목소리만 높이니까 남의 말을 들을 수가 없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지요. 대화가 안 되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의 모습에서 귀머거리라는 생각을 갖게 됩니다.”
이런 답답한 현실을 비판하기는 쉽다. 화합이 어려운 상황을 조화롭게 만드는 지혜가 필요한 세상이다. 그러나 예술이 솔루션을 제시하지는 않는다. 예술이 추구하는 아름다움으로 깨우침을 전달할 수 있다면 의미 있는 일이 아닐까. 이것이 정관호 회화의 출발점이다.
그의 화면은 우선 아름답다. 다채로운 색깔로 수놓은 바닷속을 보는 느낌이다. 산호초가 숲을 이루고 물고기들이 헤엄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꼼꼼하게 뜯어보면 모순된 풍경임을 알 수 있다.
산호초와 물미역 숲을 하나로 감싸는 것은 오래된 나무다. 바닷속 풍경에 지상의 고목을 결합한 셈이다. 두 가지 상충된 이미지가 거슬리지 않는 이유는 색채의 조화와 구성 덕분이다. 회화적 요소로 어울리지 않는 사물을 조화롭게 표현한 것이다.
“모순된 이미지로 우리 사회의 이념 대립과 갈등을 얘기하고 싶었고, 그 위를 오가는 물고기로 두 가지 상반된 세계를 연결하려는 생각을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새 시대를 여는 요즈음 정관호 회화가 추구하는 의미가 예사롭지 않다.
비즈한국 아트에디터인 전준엽은 개인전 33회를 비롯해 국내외에서 400여 회의 전시회를 열었다. <학원>, <일요신문>, <문화일보> 기자와 성곡미술관 학예실장을 역임했다. <화가의 숨은 그림 읽기> 등 저서 4권을 출간했다. |
전준엽 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