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탁원에 ‘내용증명’ 보내는 등 우여곡절 끝 원주 전환…‘매도 금지’ 풀려야 회수 가능 “10년 기다릴 각오”
러시아 가스회사 가스프롬에 투자한 김강모 씨 얘기다. 김 씨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경제 제재 이후 국내 투자자로서는 최초로 러시아 계좌 원주 전환에 성공한 케이스로 꼽힌다.
가스프롬은 전 세계 상장된 가장 큰 천연가스 회사이자 러시아 천연가스 생산량의 90% 이상을 산출해낸다. 유럽은 가스프롬 천연가스 의존도가 25%를 넘는다. 몇몇 국가는 의존도가 100%인 국가도 있다.
김강모 씨는 2월 28일, 3월 1일 영국과 독일에 상장된 가스프롬 DR(주식예탁증서)을 중심으로 투자했고 러시아 관련주 ETF(상장지수펀드)인 RSX에도 투자금 일부를 넣었다. 이 가운데 영국 상장 가스프롬 DR을 러시아 계좌에 원주로 옮긴 바 있다. 김 씨의 가스프롬 주식은 여러 제재 탓에 현재 매도는 어렵지만 매도 가능하다고 가정하면 원금 대비 평가액이 6월에는 약 4배까지 올랐다가 하락해 현재는 약 2.5배 수준이다.
우크라이나 사태 악화로 러시아 관련 기업의 주가가 폭락하자 한국 개미(개인투자자)들은 2월 말, 3월 초 약 2주일 동안 러시아 ETF만 700억 원 이상 순매수했다. 저가 매수 기회로 본 것이다. 러시아 대표 가스 기업인 가스프롬 등 개별 기업 매수까지 계산하면 개인투자자 투자 금액은 훨씬 커질 것으로 보인다. 러시아 투자에 나선 이들을 두고 고위험 자산에도 뛰어드는 개인투자자라는 뜻에서 ‘불개미’라고 부른 바 있다.
불개미 김강모 씨가 가스프롬에 관심 두게 된 계기는 천연가스 때문이었다. 김 씨는 “친환경이 대세로 여겨지는데 석탄은 대기 오염이 많고, 아직 태양광이나 풍력은 효율이 잘 나오지 않았다. 당분간은 대기오염이 거의 없어 친환경에 가까운 가스가 인기가 많을 것으로 보고 가스프롬을 주목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위기 직전 런던에 상장된 가스프롬 DR(OGZD)은 8달러 정도에 거래되고 있었다. 전쟁이 터지기 전 분위기가 심상치 않자 가격이 하락하기 시작했고 2월 24일 전쟁이 터지자 4달러까지 폭락했다. 결국 러시아 경제 제재를 위해 해외에 거래된 러시아 주식이 상장 폐지된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김 씨를 포함한 러시아 불개미들은 이 기간 러시아 주식을 사들였다. 특히 약 6억 원 이상 투자한 김 씨는 초기 가스프롬이 3~4달러까지 떨어졌을 때 자금을 투입했고 1달러 중반까지 떨어졌을 때 추가 자금을 넣었다.
당시 투자에 나선 김강모 씨는 PER(주가수익비율)를 결정적 매수 기회로 봤다고 얘기한다. 김 씨는 “가스프롬은 4달러 밑으로 떨어졌을 때 PER가 2 이하로 떨어졌다. 가스프롬이 2년에 벌어들이는 이익만으로 시가총액 전체를 살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서 더 떨어져서 2달러까지 내려가면서 PER가 1 이하로 떨어졌다. 1년에 벌어들이는 이익만으로 기업을 다 살 수 있다는 것인데 다시 없을 매수 시점으로 봤다”고 말했다.
한국 투자자는 대부분 가스프롬 주가가 1달러 중반대일 때까지만 살 수 있었다. 당시 러시아 주식 투자자들에 따르면 3월 2일 런던거래소는 제재로 인해서 인지 매도 주문은 넣을 수 있지만 매수 주문을 넣을 수 없었다. 가스프롬도 장중 휴지조각 가격까지 내려갔다가 종가 0.58달러에 마감하는 걸 지켜만 봐야 했다. 이후 가스프롬 등 러시아 ETF를 포함한 주식은 거래정지가 됐다.
비록 거래정지가 됐음에도 가스프롬 투자자들은 큰 걱정을 하지 않았다. 심지어 상장 폐지까지 예상한 사람도 많았다. 비록 상장 폐지된다고 하더라도 DR은 계약이기 때문에 러시아 원주로 전환하면 될 문제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특히 당시 가스프롬이 발표한 시가배당률은 20%에 달했는데 가치가 폭락하면서 최저가에 매수가 체결됐다면 시가배당률(배당기준일 주가 대비 배당금의 비율)이 100%를 넘어가는 경우도 있었다.
당시 매수 주문이 안 들어갔지만 3월 2일 최저점인 0.5달러에 가스프롬 DR을 샀다고 가정해보면, 가스프롬 DR은 러시아 원주(본국에서 거래되는 주식) 2주를 받을 수 있는 계약이다. 가스프롬이 발표한 배당은 약 0.9달러 정도에 달했다. 배당만 1.8달러를 받을 수 있어 이 배당 한 번으로도 3배 가까운 이익을 얻을 수 있었다.
매수 주문이 들어간 마지막 거래 금액인 1달러 후반에 샀다고 하면, DR은 원주 2주를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원주 가격 기준으로 0.9달러가량에 산 것이 된다. 배당 한 번만 받아도 투자금 이상을 회수할 수도 있다. 러시아에서 거래되는 가스프롬은 배당 소식에 폭등하면서 원주 기준 가격이 5달러를 넘기기도 했다.
그럼에도 김강모 씨는 “당시 생각은 나이브(순진)했다. 그런데도 돌아가면 다시 똑같은 투자 선택을 할 것 같다”고 말했다. 김 씨가 나이브했다고 표현하는 이유는 DR 교환 절차가 엄청나게 까다로웠기 때문이다. 먼저 상장 폐지된 상황에서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빨리 끝나기만을 기다렸다.
더 큰 문제는 6월 초 가스프롬 DR을 운용하는 BNY 멜론이 8월 3일까지 원주 전환하지 않으면 현금청산하겠다는 발표를 하면서다. 이때 BNY 멜론은 현금청산 가격은 정해지지 않았다고 공지했다. 만약 BNY 멜론이 현금청산할 때 원주 가격 기준이 아닌, 마지막 종가 기준으로 한다면 큰 손해를 볼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6월 7일 김 씨는 다급하게 가스프롬 DR을 원주 전환하기 위해 매수할 때 이용한 NH투자증권에 문의했다. 이때 NH투자증권은 러시아 주식은 예탁결제원에 러시아 계좌가 없어 원주 전환을 할 수 없다고 했다. 자본시장법상 개인의 해외주식 투자는 예탁원을 통해서만 가능한데 예탁원에 러시아 계좌가 없었기 때문이다. 김 씨는 예탁원과 NH투자증권 측에 ‘러시아 계좌를 늦게 만들어 배당을 못 받거나 원주 전환하지 못해 손실을 보면 손해를 청구하겠다’는 내용증명을 보냈다.
김 씨 내용증명 때문인지 6월 말 예탁원에 씨티러시아를 통한 계좌가 열리면서 원주 전환할 수 있는 최소한의 준비가 됐다. 7월 21일 NH투자증권은 BNY 멜론에 DR을 원주 전환 요청하겠다고 했다. NH투자증권도 가능성을 반신반의했지만 결국 요청이 성공해 약간의 연결 수수료가 더해졌지만 DR을 러시아 원주로 전환하는 데 성공했다.
다만 이런 과정을 겪으면서 몇 가지 변수가 있었다. 천연가스 가격이 폭등하면서 가스프롬이 엄청난 이익을 거두게 됐다. 전쟁과 별개로 수익성이 오히려 더 좋아진 것이다. 다만 가스프롬은 6월 30일 예정된 배당을 취소했다. 자세한 사유는 알 수 없으나 상장 폐지된 DR 보유자에게 배당을 주기 어려웠기 때문이라는 얘기도 나왔다. 배당을 취소하면서 약 5달러(300루블)이던 주가는 약 3.2달러까지 떨어졌다. 그럼에도 저점에서 산 투자자는 평가액이 원금 대비 약 3배 이상을 기록하고 있다.
DR 원주 전환은 유례를 찾기 어려운 일이라 그런지 증권사들도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였다. 가스프롬 DR은 원주 2주로 계약돼 있는데 7월 25일 예탁원이 미래에셋증권, 삼성증권 등에 1 대 2를 2 대 1로 잘못 안내해 0.5주로 전환된다고 안내된 것이다. 안내를 본 투자자들이 패닉에 빠졌는데 이틀 지나 ‘잘못된 안내’라고 정정해주는 사건도 있었다.
DR을 원주 전환했다고 안심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서방 국가에서 러시아를 강력하게 제재하고 있는 데다 러시아도 이에 대응해 외국인의 주식 매도를 금지했기 때문이다. 언제 팔 수 있을지, 언제 돈으로 회수할 수 있을지 불투명하다. 김강모 씨는 “10년을 기다릴 각오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DR을 원주 전환하는 게 이익인지도 알 수 없다. 만약 DR 현금청산 기준 가격이 러시아 원주 가격이라면 오래 기다리지 않고도 이익을 거둘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번 투자를 두고 일각에서는 도덕적 비난을 하기도 한다. 전쟁을 ‘돈 버는 기회로 삼은 것 아니냐’는 얘기다. 이에 대해 김 씨는 자기 생각을 다음과 같이 정리해서 얘기했다.
“우크라이나 지지한다고 하면서 페이스북에 프로필을 우크라이나 국기로 바꾸면 평화로운 사람이 될 수 있다. 나도 우크라이나 어느 동네에 에어비앤비(공유 숙박 서비스)를 통해 며칠 숙박한다고 돈만 결제하고 안 가기도 했다. 러시아 주식을 샀지만, 우크라이나를 돕는 마음도 있다. 우크라이나가 안됐다는 생각도 크지만, 투자자로서 투자의 기회가 생겼는데 그런 이념만으로 투자를 안 할 수 없다. 도덕적인 사람이라면 비난만 하지 말고 투자 기회를 노려 수익을 낸 다음 그 돈을 우크라이나에 기부하면 된다.”
러시아의 대표적인 주식인 가스프롬으로 달려간 불개미들의 투자가 현재까지는 절반의 성공으로 보인다. 물론 이외에도 다양한 러시아 DR 등이 있었고 ETF가 있어 성공 여부는 개별 주식 환경에 따를 것으로 보인다. 특히 ETF의 경우 아직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이 나오지 않은 경우도 있다. 전문가들은 러시아 투자처럼 극단적 변동성이 나오는 구간에 대한 투자는 위험하다고 조언한다. 현재까지는 절반의 성공이지만 영원히 외국인 매도를 풀지 않을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김태현 기자 toyo@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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