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택근무 시켜놓고 ‘유급휴가’ 고용지원금 챙긴 회사, ‘근무시간 제멋대로’ 지시 무시한 직원…소송·구제신청 노사문제화
#부정수급·기밀유출…재택근무 관련 소송 증가
정부가 7월 27일 재택근무를 활성화하고 유증상자에 대한 휴가를 적극 권고하는 등의 내용을 담은 ‘일상 방역 생활화 추진방안’을 발표했다. 사회적 거리두기 등 일상 규제를 따로 하지 않되 공직사회가 비대면 회의와 재택근무 등을 활성화함으로써 자율 방역을 독려하겠다는 것이다. 또, 고용노동부는 재택근무가 안착하도록 중소·중견기업에 유연근무제 간접노무비와 재택근무에 필요한 인프라 구축비용 등을 지속적으로 지원한다는 방침이다.
이처럼 정부가 재택근무 활성화에 앞장서는 모습을 보이자 기업들도 멈췄던 재택근무를 다시 시작했다. 삼성전자는 최근 간담회를 포함 회식, 대면회의, 교육, 행사 등을 자제해 달라는 내용이 담긴 방역 지침을 사내에 공지했고, LG그룹은 7월 21일부터 8월 31일까지 조직 별로 30% 재택근무제 운영에 들어갔다. 네이버와 카카오 등은 이미 출근과 재택근무를 병행하는 하이브리드 근무 체제를 도입했다.
코로나19 팬데믹(Pandemic·대유행) 이후 새로운 근무 형태로 자리 잡은 재택근무의 효과에 대해서는 아직 경영자와 근로자 간 의견이 분분하다. 업무 생산성이 떨어졌다는 설문조사 결과가 있는가 하면 만족도 증가로 효율성이 올랐다는 연구 보고서도 나왔다.
흥미로운 점은 재택근무가 확산되면서 법원에도 이와 관련한 소송이 눈에 띄게 늘었다는 점이다. 회사의 경우 재택근무제를 악용해 정부지원금을 부정수급하거나, 직원일 경우 재택근무를 하면서 회사의 지시를 위반하거나 사내 기밀을 유출해 경영에 피해를 입힌 사례가 다수다. 재택근무가 활성화되지 않았던 코로나19 이전에는 제기되지 않았던 문제들이다.
지난해 9월 28일 의정부지방법원은 보조금관리에관한법률 위반 혐의로 기소된 경기도의 한 회사 대표 A 씨에게 징역 8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A 씨는 2020년 3월, 전 직원에게 재택근무를 지시하고 실제로 업무를 수행하게 하였음에도 직원 21명을 유급휴직한 것처럼 속여 중부지방고용노동청으로부터 7200만여 원의 고용유지지원금을 교부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피해금액이 억 단위인 사례도 있다. 6월 30일 대구에서는 유통 회사를 운영하던 B 씨가 2020년 9월부터 7개월간 직원 20여 명을 계속 근로시키고도 유급휴직한 것처럼 허위로 고용유지지원금을 신청해 2억 4000만여 원을 부정수급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고용유지지원금은 사업주가 근로자에게 제공하는 휴업·휴직수당에 대해 정부가 지원하는 보조금이다. 경영이 어렵더라도 인원 감축 대신 고용유지를 장려하기 위한 제도다. 코로나19 확산으로 국가보조금 심사 기준이 완화되고 신청자가 몰리는 점을 악용한 것이다.
#“재택근무 프로그램 설치 왜 안해?” 노-사 갈등도
재택근무로 촉발된 직원과 회사의 갈등이 소송으로 번지는 사례도 심심치 않게 있다. 외국계 보험회사의 국내 법인인 C 사는 2020년 3월 코로나19 확산에 대한 대처 방안으로 재택근무 실시를 결정하고, 재택근무 대상 직원들에게 노트북을 제공하면서 전산 업무에 필요한 프로그램 설치를 지시했다. 근무시간은 오전 9시~오후 6시로 일괄 조정됐다. 그런데 재택근무 대상이었던 직원 D 씨는 임의로 오전 8시~오후 5시까지 일하면서도 해당 프로그램을 설치하지 않았다. 이에 부서장이 화상회의를 요청하자 “근무시간이 지났다”며 이를 거절했다.
D 씨도 사정이 있었다. 입사 당시 한 부서의 업무를 총괄하는 책임자로 근무했으나 이후 팀장, 팀원으로 강등되면서 부당전보구제신청 등으로 회사와 갈등을 겪었다. 이 과정에서 감봉과 정직 등의 징계를 받으면서 동료 직원들로부터 사내 정보를 원만히 전달받지 못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D 씨는 부서장의 회의 요청을 거절하면서 이메일을 통해 “무려 7년이 되도록 모든 커뮤니케이션에서 제외됐는데 갑자기 할 일이 있나”라며 “늘 그렇듯이 배제된 것으로 알고 있었다. 노트북 제공할 때 프로그램을 접속해야 한다고 알려주지 않았다”고 답변했다.
이에 C 사는 징계위원회를 열고 ‘근무시간 위반 및 업무지시 불이행’으로 D 씨에게 감봉 1개월의 징계를 내렸다. 수차례 근로 시간과 프로그램 설치를 공지했음에도 이행하지 않았고 근로시간 내 관리자의 회의 요청도 무시하는 등 업무 개선 지시를 못하게 했다는 이유다. D 씨는 회사의 감봉 징계가 부당하다고 반발했다.
결론적으로 법원은 D 씨의 손을 들어줬다. 서울행정법원은 D 씨가 재택근무 중 회의에 참석하지 않는 등 업무 지시를 불이행한 점과 그로 인해 회사가 징계를 한 것은 징계 사유에 해당한다고 봤다. 근로시간 위반에 대해서도 C 사가 4회 이상 조정된 시간을 공지하였으나 이를 몰랐다는 것은 D 씨의 중대한 과실이라고도 판단했다.
다만 징계의 무게가 과하다고 봤다. 평소 다른 직원과 소통이 원활하지 못했던 D 씨가 고의로 업무를 거부한 것이 아닐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법원은 코로나19 팬데믹이라는 사정으로 이전에 없던 재택근무를 실시하게 되면서 사내 재택근무 관련 지침이 정착하는 과정에 있었던 점, 다른 직원들에게는 D 씨와 같은 징계를 곧바로 내리지 않았다는 점에서 해당 징계는 균형을 잃었다고 판단했다.
이에 대해 한 노동 전문 변호사는 “법원은 어떤 징계가 정당한지 판단할 때 근로자의 비위 행위로 회사가 입은 손해와 기업의 질서 유지 어려움 등 여러 가지 사정을 종합해 면밀히 본다. 이 사건의 경우, 직원이 회사의 지시를 불이행한 것은 맞지만 재택근무 도입 초기라는 점과 비위 행위로 인한 회사의 실질적 피해가 적었다고 판단한 것 같다”면서도 “무엇보다 (법원이) 재택근무가 새로운 근무 형태로 정착하는 시기인 만큼 지침을 위반하더라도 곧바로 징계를 내리기보다는 경고 등의 처분이 적절하다고 판단한 것 같다. 앞으로 관련 판례가 더 나오면 징계 수위와 기준도 명확해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최희주 기자 hjoo@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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