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국 반대 집단행동 주도 경찰대 출신 압박 나서…경찰·민주당 “여론 호도, 갈라치기” 비판
“무시 받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역대 정권 어느 경찰이 이런 식으로 항명을 했느냐.”
7월 26일 만난 대통령실 관계자는 경찰을 향해 강한 어조로 불만을 터트렸다. 그는 “이렇게 생각하기 싫지만 윤석열 대통령 지지율이 낮기 때문에 경찰의 기강이 바로 서지 않는 것 같다. 여기서 밀리면 전 기관, 부처에 영향을 미친다. 경찰국 신설은 말할 것도 없고, 전국 서장 회의 등 집단행동 과정에서 부적절한 부분이 있다면 반드시 책임을 묻겠다”고 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7월 26일 도어스테핑에서 “정부가 헌법과 법에 따라 추진하는 정책과 조직개편안에 대해 집단적으로 반발한다는 것이 중대한 국가의 기강 문란이 될 수 있다”며 경찰을 직격했다.
대통령실의 이런 기류는 집권당인 국민의힘에서도 감지된다. 권성동 원내대표 겸 당대표 직무대행은 7월 26일 “류삼영 총경이 주도한 서장 회의는 국가공무원법이 금지하고 있는 집단행동이다. 이들은 경찰 지도부의 해산명령에도 불복종했다”며 “군과 마찬가지로 경찰은 총을 쥐고 있는 공권력이다. 만약 군대가 제도 개혁에 반발해 위수지역을 벗어나 집단행동을 한다면 용납할 국민이 어디 있겠느냐”며 “군의 항명과 경찰의 항명은 같은 것이다. 같은 무게로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국민의힘 한 초선 의원은 일요신문에 “이상민 장관의 ‘쿠데타’ 발언이 여권의 심경을 가장 잘 드러낸 것으로 본다. 그만큼 경찰의 행태에 대해 분노하는 이들이 많다. 경찰 통제권을 청와대에서 행안부로 넘긴다는 것인데, 왜 이렇게 과민반응하고 펄쩍 뛰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그는 “경찰국 신설안을 마련할 때 경찰 실무진들 의견도 청취했다. 그런데 이렇게까지 반대가 심하진 않았다. 경찰이 이렇게 나올 줄 예상 못했다. 소수에 불과한 경찰대 출신들이 여론을 호도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여권 일각에선 경찰 반발 확산의 기폭제가 된 전국 서장 회의 배후에 민주당이 있는 것은 아니냐는 얘기도 심심찮게 나온다. 앞서의 초선 의원은 “경찰 일부 세력과 민주당이 사전에 논의를 했거나 최소한 공감대를 나눴을 것이란 의심을 지우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한 재선 의원도 “경찰의 목적이 순수해 보이진 않는다. 어떤 정치적 의도가 담겨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면서 “이는 정부로서 절대 묵과하기 어려운 사안”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정부가 경찰대 개혁 카드를 꺼낸 것도 이런 배경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이상민 장관은 7월 26일 업무보고를 통해 “경찰제도발전위원회를 8월 중 설치하고, 경찰대 개혁 등을 논의하겠다”고 했다. 그러자 윤 대통령은 “경찰 입직 경로에 따라 공정한 승진과 보직 배치가 이뤄질 수 있도록 하라. 순경 입직자가 전체 경찰의 96.3%인데, 경무관 이상에선 순경 출신이 2.3%에 불과하다. 이런 인사 불공정을 해소하라”고 지시했다. 사실상 경찰대를 염두에 둔 것으로 풀이된다.
업무보고 전날인 7월 25일 이상민 장관은 전국 서장 회의를 두고 군대 내 사조직이었던 하나회와 비교하기도 했다. 이 장관은 “특정 출신들이 주도적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하나회에 준한다. 경찰을 개혁한다고 하니까 본인들의 지위에 위기감을 느껴서 조직적으로 반발하는 것”이라고 했다. 이 장관이 언급한 특정 출신은 경찰대를 지칭한다. 이 장관은 같은 날 언론 브리핑에서도 “언론에 등장하시는 분들은 다 경찰대 출신들이더라. 특정 출신들이 집단행동을 하는 것처럼 보이는 건 대단히 적절치 않다”고 했다.
6월 기준 전국 경찰 수는 13만 2421명이다. 이 중 경찰대 출신은 3249명. 비율로 따지면 2.5%가량에 불과하다. 하지만 고위직으로 올라가면 얘기가 달라진다. ‘경찰의 꽃’으로 불리는 총경 632명 중에서 381명(60.3%), 경무관 80명 중 59명(73.8%)이 경찰대 출신이다. 윤희근 경찰청장 후보자는 경찰대 7기다. 전국 서장 회의를 주도했다가 대기발령된 류삼영 총경(4기)도 경찰대 출신이다. 윤 대통령의 문제 인식은 여기서 비롯된다.
정부는 고위직에서 비경찰대 출신 비율을 최대한 끌어올리는 데 초점을 맞춘다는 계획이다. 당장 8월 중 단행될 총경 승진 인사에서 비경찰대 출신들의 약진 가능성이 점쳐진다. 또한 경찰대 졸업생이 경위로 임관하는 것도 손보기로 했다. “출발선부터 불공정하다”는 게 여권 관계자들의 생각이다. 진급심사기준을 고쳐 순경 등 비경찰대 출신들의 승진을 용이하게 하는 방안도 마련한다.
장기적으론 경찰대 폐지도 적극 검토한다는 방침이다. 경찰대를 경찰대학원 등으로 바꿔 신입생을 뽑는 대신, 기존 경찰들을 교육하는 기관으로 운영한다는 게 골자다. 윤 대통령도 경찰대 폐지에 대해 공감대를 나타낸 것으로 전해졌다. 윤 대통령 핵심 측근으로 통하는 국민의힘 의원은 “법을 개정해야 하는 등의 문제가 있지만, 경찰대 폐지는 이미 여야가 공감했던 사안이고 국민들도 찬성하고 있어 어렵지 않을 것으로 본다”면서 “당정대 관계자들이 이미 한 차례 경찰대 폐지를 위한 구체적인 절차 등을 논의했다”고 귀띔했다.
정부의 이런 움직임은 우선 경찰대 출신들을 압박하기 위한 차원이다. 또한 대다수 경찰들이 경찰대 출신들의 승진 독식에 대해 불만이 높다는 것도 영향을 미쳤다. 이는 ‘소수의 경찰대 출신이 경찰국 신설을 저지하기 위해 집단행동을 선동하고 있다’는 여권의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국민의힘은 경찰대 폐지를 포함한 개혁안에 대한 여론조사도 실시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놓고 민주당은 여권이 경찰을 ‘갈라치기’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경찰대 출신(1기) 황운하 민주당 의원은 7월 28일 YTN라디오 ‘뉴스킹 박지훈입니다’에 출연해 “이상민 장관이 왜 경찰대 이야기를 꺼낸 의도가 굉장히 불순해 보인다”며 “경찰조직 내 경찰대 출신과 비경찰대 출신 간의 갈등 양상을 교묘히 이용해 경찰 조직을 갈라치기하려는 공작 냄새가 난다”고 했다.
경찰 내부에서도 쓴소리가 나온다. 경찰국 신설과 경찰대 개혁과는 별개의 문제라는 이유에서다. 비경찰대 출신의 한 총경은 “여론을 호도하고 있는 것은 정부다. 쿠데타나 하나회 등과 같은 자극적인 표현은 대단히 부적절하다. 경찰대 출신 여부를 떠나 경찰국 신설 자체에 대해서 많은 경찰들이 반대하고 있는 것은 엄연한 사실”이라고 했다.
경찰대 출신 한 경감은 “지금 정부 대응엔 ‘감히 경찰이…’라는 분위기가 깔려 있는 것 같다. 검사들이 ‘검수완박’ 반대하며 집단 성명서 낼 때 지금의 여권 실세들은 뭐라고 했느냐”면서 “경찰대가 부작용도 있지만 순기능도 많다. 경찰 수준을 한 단계 높인 것도 분명하다. 그런데 폐지까지 논의되는 것은 경찰을 폄하하는 기류가 반영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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