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당 운전수 권성동 잇단 구설 펑크 위기, 대통령실 존재감 미미…한동훈이 이끄는 정부 바퀴 그나마 위안
#펑크 수준의 여당 바퀴
요즘 국민의힘은 자고 나면 뭔가 터져있다는 소리가 나올 정도로 시끄럽다. 바퀴가 굴러가기는커녕 국정을 이끌어줘야 할 여당 바퀴에 펑크가 나 있는 것이다. 윤핵관 투톱인 권성동 당대표 직무대행 겸 원내대표와 장제원 의원 간 갈등 국면이 가까스로 봉합되고 며칠 지나지도 않은 7월 26일, 권성동 대행의 이른바 ‘문자유출 사태’가 터졌다.
권 대행 휴대전화 문자메시지 화면이 국회 본회의장에서 사진기자 카메라에 적나라하게 노출됐는데 발신자는 ‘대통령 윤석열’이었다. 윤 대통령은 문자 메시지를 통해 “우리 당도 잘하네요. 계속 이렇게 해야. 내부 총질이나 하던 당대표가 바뀌니 달라졌습니다”라고 권 대행을 치하했다. 당원권 정지 6개월 징계를 받은 이준석 대표를 겨냥해 ‘내부 총질이나 하던 당대표’라고 지목한 내용 때문에 여의도 정가는 발칵 뒤집혔다.
이 대표를 겨냥한 내용도 큰 파장을 일으켰지만 현직 대통령의 문자 메시지가 원문 그대로 고스란히 공개된 것 또한 사례를 찾아보기 힘든 일이다. 당내에서는 이날 “문자 유출사태는 물론, 툭하면 사고의 중심에 서왔던 사고뭉치 원톱 권성동 대행 체제로 계속 가다가는 당이 큰일 날 것”이라는 우려의 목소리가 봇물처럼 터져 나왔다. 실제로 권 대행은 원내대표 취임 후 검수완박 합의, 9급 공무원 발언 등으로 연이어 여론의 난타 태상이 돼왔다.
권 대행의 이날 행동은 지도부로서 무책임한 행동이라는 지적도 받았다. 송언석 국민의힘 원내수석부대표는 당 지도부 자격으로 지난 7월 20일 의원들의 텔레그램 대화방에 “본회의장에서 휴대전화 사용은 사진기자들의 표적이 될 수 있다”는 취지의 글을 올린 바 있다. 그런데 당의 리더인 권 대행이 이를 어긴 것이다.
권 대행은 7월 27일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사적 문자 내용이 저의 부주의로 유출·공개돼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드린 점에 대해 송구하게 생각한다”며 허리를 90도로 숙여 사과했다. 7월 21일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여권 내 내홍 등과 관련해 사과한 지 6일 만이다. 권 대행은 앞서 7월 20일에도 대통령실 채용과 관련한 자신의 ‘9급 공무원’ 발언에 대해 공식 사과한 바 있다.
국민의힘 한 초선 의원은 “권 대행이 문자 사태로 또 사과를 했다. 취임한 지 몇 달 되지도 않는 사람이 도대체 사과를 몇 번 하는 거냐. 공개된 문자 내용 중에 강기훈이라는 청와대 행정관도 등장했는데 이 사람 또한 야당의 표적 공격 빌미가 됐다”고 꼬집었다. ‘쓴소리맨’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7월 27일 국민일보와의 전화 인터뷰에서 국민의힘을 향해 “위기해결 능력이 없다. 무슨 놈의 집권당이 이렇느냐”고 강력 비판했다.
권 대행이 문자 유출 사태에 대해 사과를 하면서 직접 진화에 나섰지만 이번 사태의 파장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전망이다. 당장 ‘내부 총질이나 하던 사람’으로 지목된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의 반격이 사실상 시작되면서 당 내부 갈등은 다시 고조되기 시작했다.
이 대표는 7월 27일 페이스북을 통해 “앞에서는 양의 머리를 걸어놓고 뒤에서는 정상배들에게서 개고기 받아와서 판다”고 쏘아붙였다. ‘겉은 번지르르하나 속은 변변치 않은 것’을 뜻하는 사자성어 ‘양두구육(羊頭狗肉)’을 소환한 것으로, 윤 대통령과 윤핵관들에게 발끈한 표시로 받아들여진다.
글을 올린 날 울릉도에 머문 이 대표는 “그 섬(여의도)에서는 카메라 사라지면 눈 동그랗게 뜨고 윽박지르고, 카메라 들어오면 반달 눈웃음으로 악수하러 오고”라면서 이같이 말했다. 이 대표는 그러면서 “이 섬(울릉도)은 모든 것이 보이는 대로 솔직해서 좋다”고 했다. 윤 대통령과 권 대행이 자신과 관련한 문자 메시지를 주고받은 것이 언론에 공개되자, 여의도 정치권을 ‘그 섬’, 울릉도를 ‘이 섬’이라고 표현하며 불만을 가감 없이 드러낸 것으로 정치권은 해석했다.
20·30 젊은층에서 두꺼운 팬덤 지지층을 갖고 있는 이 대표는 이번 문자 사태로 확전 명분을 확실히 얻었다는 판단을 내린 것으로 분석된다. 향후 국민의힘 최대 지지기반인 대구·경북(TK)을 돌며 자신의 지지세를 다진 뒤 공세적 입장으로 전환할 것이 유력하다. TK 지역은 이 대표 부모의 고향이기도 하다.
이런 가운데 윤 대통령은 권성동 원톱 체제가 리더십 부재로 인해 크게 흔들리고 있지만 일단 지금은 대안이 없다는 판단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윤 대통령은 7월 28일 울산에서 열린 정조대왕함 진수식 참석을 위해 이동하는 도중 권 대행과 장시간 대화를 나눈 것으로 알려졌다.
윤 대통령은 특히 기내 대화중에 이른바 ‘문자유출 사태’와 관련, 권 대행에게 “며칠 고생했다”는 취지로 언급한 것으로 전해졌다. 당내 비판 여론에도 불구, “권성동 외에는 대안이 없다”는 생각을 윤 대통령과 당내 주류세력이 갖고 있는 것으로 분석되는 대목이다.
#불안한 대통령실 바퀴
“존재감이 없다”는 말은 윤석열 정부 대통령실 뒤를 항상 따라다니고 있다. 윤 대통령 지지율을 가장 많이 까먹은 인사 부실 논란이 그렇게 많았는데도 대통령실은 도대체 어떤 보좌 기능을 해왔는지에 대한 비판도 꼬리를 문다.
대통령실 인선 자체가 구조적으로 대통령을 제대로 보좌하기 어렵다는 하소연도 대통령실 안팎에서는 내놓는다. 대통령실 내에 현 정부 출범 지분권을 갖고 있는 ‘파워맨’이 없다 보니 대통령이 귀를 확 열 만한 사람이 없고, 직언이 먹히는 구조도 안 되는 것으로 정치권에서는 보고 있다. 대통령실 주변에서는 수석급 참모 가운데 최상목 경제수석과 외교안보 분야의 조타수 역할을 하고 있는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 정도가 목소리를 내는 수준이지만 이들도 자신의 책임 분야 외 정무적 판단에는 개입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대통령실 기류가 다소 바뀌는 양상을 보이고 있기는 하다. 그동안의 ‘조용한 행보’에서 탈피하려는 노력이 보이고 있는 것이다. 김대기 비서실장이 7월 24일 최영범 홍보수석비서관 등을 대동하고 용산 대통령 청사에서 기자들과 직접 소통에 나선 것은 이러한 방증이다. 윤석열 출범 후 김 실장이 기자들 앞에 모습을 드러낸 것은 처음이었다. ‘실명 인용’을 전제로 대통령실 고위관계자의 백그라운드 브리핑을 진행한 것도 이례적이었다.
하지만 최근 대통령실의 변화가 새로운 국정 동력으로의 전이로 이어지고 있는지에 대한 의문은 여전히 크다. 청와대 근무 경험이 있는 더불어민주당의 한 당직자는 “임종석·조국·박수현·김의겸 등 문재인 정부 청와대 참모진들은 직접 언론을 상대하면서 호재에 대한 홍보, 악재에 대한 방어막을 쳤다”며 “그런데 윤석열 정부 대통령실은 참모 역할이 너무 없다”고 말했다.
#그나마 버티는 정부 바퀴
여당과 대통령실, 두 바퀴가 엉키고 있지만 나머지 정부 바퀴는 그런대로 돌아가고 있는 점이 윤석열 정부에 그나마 위안이다. 제1야당 민주당의 공세가 거세지만 한동훈 법무부 장관,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투톱이 돼 공격을 막아내고 있는 것이다.
7월 26일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첫 대정부 질문에서 윤 대통령의 복심인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첫 질문자로 나선 박범계 의원의 공격을 능수능란하게 막아냈다. 문재인 정부 법무부 장관 출신인 박 의원은 이날 국회 정치·외교·안보·통일분야 대정부질문에서 “왜 법무부 장관이 대법관, 헌법재판관, 국무총리, 대통령비서실장, 수석들까지 검증해야 합니까” “국무위원 중 한 사람에 불과한데 왕중왕 1인 지배 시대, 그것을 한동훈 장관이 지금 하는 것”이라고 맹렬히 비난했다.
한 장관은 박 의원의 말에 대해 전반적으로 부인하면서 “의원께서 장관으로 있을 때 검찰 인사를 완전히 패싱하시고…”라고 받아치며 역공을 취하기도 했다. 박 의원은 어이가 없다는 듯 곧바로 “택도 없는 소리”라고 응수했지만 장관을 제압할 만한 펀치를 날리지는 못했다.
박 의원이 “틀렸다. 거짓말”이라고 호통치면, 한 장관이 “전혀 사실이 아니다”라고 또박또박 반박하는 장면은 반복됐다. 법무부 장관까지 지낸 민주당 중진 국회의원을 상대로 조금도 주눅들지 않는 모습을 한 장관이 보이자 일부 국민의힘 의원들은 큰 소리로 웃으며 손뼉을 치기도 했다. 박범계 의원은 7월 25일 아침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나가 “한동훈 장관에게 윤 정부의 법치 농단에 대해 따지겠다”고 예고하면서 출사표까지 던졌지만 여론의 반응은 ‘한동훈의 완승’이라는 평가였다.
두 사람의 공방을 담은 17분짜리 유튜브 동영상은 며칠 만에 조회 수가 수백만 회를 훌쩍 넘는 등 큰 화제가 되기도 했고 이 영상에 달린 댓글 대다수는 한 장관에 우호적이었다.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는 7월 26일 CBS라디오 ‘한판승부’에 나와 “제가 볼 때는 박 의원의 참패인 거 같다. 말을 할 때 너무 흥분을 하더라”라며 “(한 장관은) 차분하게 답변을 했다”고 평했다.
이상민 행안부 장관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그는 최근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행안부 산하 경찰국 신설에 대한 경찰 집단 반발 사태와 관련해 민주당 의원들로부터 집중 공격을 받았다. 이 장관의 ‘쿠데타 발언’이 주요 표적이었다. 하지만 이 장관은 사과 요구에 “(사과할 생각이) 전혀 없다”고 받아쳤고 “회의 주체가 경찰이 아닌 군이라고 생각해보라. 국가와 정부가 위태로워질 수 있기 때문에 쿠데타에 비유한 것”이라고 굽히지 않았다.
최경철 매일신문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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