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님은 흥행한 영화만큼이나 흥행에 실패한 영화도 많으신데 실패한 영화를 통해서 어떤 교훈을 얻느냐”는 질문이었다.
필자는 지난 30여 년간 11편의 영화 제작에 참여했다. 정확히 4편이 흥행에 실패했고, 6편이 투자원금을 회수하고도 많은 이익을 얻었다.
‘광해, 왕이 된 남자’, ‘신과함께-죄와벌’, ‘신과함께-인과연’은 1000만을 넘는 대박흥행을 이루었다. 이 밖에도 ‘미녀는 괴로워’가 큰 성과를 거뒀다. 기획에 참여한 ‘국가대표’와 시나리오를 직접 쓴 ‘돈을 갖고 튀어라’도 손해를 보지 않았다.
그러나 프로듀서로 참여한 ‘싸이렌’, 직접 제작한 ‘마지막 늑대’, ‘마린보이’, ‘대립군’은 큰 손실을 봤다. 이제 곧 개봉을 앞둔 ‘자백’은 아직 결과를 알 수 없다.
“실패를 통해서 무슨 교훈과 깨달음을 얻느냐”는 질문에 나는 “실패한 영화를 통해서 스스로 반성하거나 다음 영화를 제작함에 있어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다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잘 알고는 있으나 가능하면 실패한 영화를 다시 떠올리거나 복기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고 답했다. 질문자는 몹시 당황해했다. 그리고 다시 질문했다.
“아니 보통은 실패한 영화를 통해서 자기를 객관화하고 그런 가운데 문제를 발견하고 그걸 개선하는 게 일반적인 일 아닙니까?”
난 그분에게 “물론 질문하신 분의 의도를 정확히 이해하고 있고, 답변이 매우 이상하다는 것도 알지만 제 생각에는 사람들은 자신이 행한 어떤 일이 결과가 안 좋고 최종적으로 실패가 확정되면 무엇이 문제인가를 거의 안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미 문제가 무엇인지를 인식한 상태에서, 거기서 다시 교훈을 얻는다고 실패를 복기하고 반성하고 자책하는 것이 결국은 본인을 계속해서 괴롭히는 일이라고 생각하기에 전 실패한 영화는 다시 떠올리거나 복기해서 저를 괴롭히는 일을 안 한다는 취지로 답변한 것”이라고 부연했다.
또 다른 분은 “대표님은 1000만 영화를 세 편이나 제작하셨는데 관객의 마음을 읽고 관객이 좋아하는 걸 어떻게 판단하느냐”고 질문했다.
그분에게 “제가 관객의 마음을 읽을 수 있고 관객이 무엇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면 제가 만든 영화의 반이 실패했겠느냐”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저는 관객이 무엇을 좋아할 것이라고 미리 예단하거나 혹은 이런 것을 좋아할 것이라고 판단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이번 질문자도 당황하면서 다시 질문했다.
“그러면 대표님은 관객의 마음을 얻고자 무슨 노력을 하십니까.”
난 “불특정다수인 관객을 알고자 하는 노력은 오래전에 접었다”면서 이렇게 답했다.
“대한민국의 관객이 5000만이 넘고 세계로 치면 80억 명의 인구가 있는데 저는 사람들마다 다 기호가 다르고 취향이 다르고 좋아하는 것도 다 다를 거라고 생각하기에 제가 관객들이 무엇을 좋아하는가를 알아내려고 노력하지 않습니다. 다만 저는 제가 좀 더 착해지고 제가 좀 더 순수해지고 제가 좀 더 올바르기 위해 노력합니다. 영화계의 속언 중에 ‘영화는 만드는 사람처럼 나온다’는 말이 있습니다. 제가 착해지고 올바르고 순수해지면 관객들은 그런 사람들이 만든 결과물을 반드시 좋아할 것이라고 믿습니다.”
물론 실패란 것이 흥행만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흥행에 실패했어도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작품일 수 있고 흥행에 성공했다고 해서 꼭 좋은 작품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대중을 상대로 일을 하는 사람들은 우선 자기 자신을 사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너무 빤한 이야기 같지만 자기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다른 사람의 사랑을 받기 어렵다. 그래서 혹 이 글을 읽는 분들은 너무 반성하고, 자책하고, 실패를 복기하고 그래서 자신을 미워하고 괴롭히지 않았으면 좋겠다. 실패의 원인은 수만 가지겠지만 본인은 그것을 복기하지 않아도 충분히 알 수 있으며 실패하는 순간 이미 충분히 그 대가를 치렀기에 더 자신을 괴롭히는 일을 하는 게 결코 도움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요즘 행복한 뉴스가 없다. 불황이 다가오고 금리가 오르고 인플레이션이 지속될 거라는 무서운 뉴스만 가득하다. 날은 또 너무나 덥다.
얼마 전 화분에 ‘호야꽃’이 피었다. 4~5년 전 꽃시장에서 사온 화분이었다. 주변 사람들이 피기 힘든 꽃이라고 말하던데 난 이 꽃을 보고는 나 자신에게 “앞으로 상서로운 일이 벌어질 징조”라고 말했다.
어제는 술을 마시고 지하철을 타고 귀가했다. 첫 번째 지하철도 플랫폼에 도착한 지 1분 안에 와줬고, 환승역에서도 바로 지하철이 도착을 했다. 지하철이 이렇게 잘 맞춰 오지 않았다면 내 방광은 터졌을지도 모른다. 이건 무엇인가 신이 보살피고 있는 징조라고 나 자신을 위로했다.
실패를 복기하며 자책하고 반성하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별거 아닌 것이라 해도, 사소한 일이라고 해도 일상에서 벌어지는 일들이지만 그것에 의미를 부여해서 자신에게 위로의 말을 던지는 것도 중요하지 않을까.
※외부필자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원동연 영화제작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