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9년 금융투자협회 창립기념식에 참석한 김승유 하나금융지주 회장. 작은 사진은 하나금융이 5년 만에 인수에 성공한 외환은행 본점. 금감원의 편입 심사를 남겨 두고 있다. 우태윤 기자 wdosa@ilyo.co.kr |
지난해 11월 중순, 금융권에서는 충격적인 일이 터졌다. 하나금융이 외환은행을 인수하기로 했다고 발표한 것. 당초 하나금융은 우리금융과 합병이 유력시돼 왔다. 김승유 하나금융 회장 역시 우리금융의 민영화와 합병에 더 관심이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김 회장 스스로 우리금융과 합병을 언급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금융계에서는 전부 그렇게 알고 있었고 하나금융 내부에서도 실무진을 가동해가며 우리금융과 합병하는 데 강한 의욕을 보였다.
그런 하나금융이 느닷없이 외환은행을 인수하기 위해 론스타와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고 발표한 것이다. 하나금융의 발표에 금융계를 비롯해 각계각층의 많은 사람이 놀란 것도 당연했다. 하나금융이 비록 우리금융과 합병에 의욕적으로 임했다고는 하지만 과정이 순조롭지는 않았다. 무엇보다 우리금융과 갈등이 심상치 않았다. 우리금융 입장에서는 주도권 싸움에서 덩치가 작은 하나금융에 밀리기 싫었을 터였다.
우리금융의 민영화와 하나-우리금융의 합병 문제가 한창 뜨겁던 지난해 10월 이종휘 당시 우리은행장과 김승유 회장 사이에 벌인 설전이 대표적인 예다. 김 회장의 유명한 어록인 “소문난 연애치고 결혼에 성공하는 것 못봤다”는 말도 여기서 나왔다. 이 행장과 논쟁에서 김 회장은 “합병하면 구조조정이 불가피하다”고도 말한 바 있다. 이 전 행장은 김승유 회장의 용퇴까지 거론한 바 있다.
우리금융과 갈등 외에 일각에서는 더 큰 걸림돌을 제기했다. 김승유 회장과 이명박 대통령이 ‘절친’라는 점이 우리금융과 하나금융이 합병하는 데 가장 악영향을 끼쳤을 것이라는 얘기다. 김승유 회장과 이명박 대통령은 고려대 경영학과 61학번 동기동창이다.
김승유 회장은 모교인 고려대 동창회 활동을 누구보다 왕성하게 해온 인물이다. 특히 2006~2009년에는 고려대 경영대 교우회장을 지낸 바 있는데 이때 이명박 대통령이 당선되면서 김 회장이 큰 역할을 한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낳았다.
▲ 김승유 회장은 이명박 대통령과도 각별한 인연을 자랑한다. |
이처럼 김승유 회장과 이명박 대통령의 관계가 각별해 이명박 정부 초기에는 김승유 회장이 주요 경제수장 중 한 자리를 차지할 것이라는 예상도 많았다. 이 같은 이유 때문에 하나금융과 우리금융이 합병한다면 특혜 시비가 불거질 가능성이 농후했다.
우려가 불거지자 하나금융 내부에서도 우리금융과 합병에 대해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그럼에도 2006년 외환은행과 LG카드 인수전에서 연이어 고배를 마신 김 회장의 의지는 확고했다고 한다. 승승장구하던 차에 잇단 M&A에 실패하면서 추락한 이미지를 만회하기 위해서라도, 금융권 ‘빅4’ 구도에서 낙오되지 않기 위해서도 M&A는 절실했다.
그런 김 회장 앞에는 우리금융뿐만 아니라 좀 더 ‘가벼운’ 외환은행이 있었다. 결국 김 회장은 우리금융을 포기하고 외환은행 인수로 급선회했다. 발표는 ‘깜짝쇼’였지만 김 회장과 하나금융은 외환은행을 인수하려는 움직임을 오래 전부터 해온 것으로 밝혀졌다. 우리금융보다 비중이 크지는 않았지만. 김 회장은 자신이 했던 말처럼 ‘소문나지 않는 연애’를 해온 셈이다.
하나금융의 외환은행 인수는 결코 수월하지 않았다. 지난해 11월 하나금융이 론스타와 MOU를 맺기 전까지 외환은행은 호주뉴질랜드은행(ANZ)으로 매각될 것이 유력했다. 하나금융이 파고들 때쯤 이미 마무리 단계였으며 ‘도장 찍는 일’만 남은 상태였다. 그러나 론스타와 ANZ의 최종 가격 협상이 지지부진해지자 김 회장이 이 틈을 파고든 것이다. 김 회장은 지난해 10월 싱가포르에 있던 존 그레이켄 론스타 회장을 직접 찾아가 MOU를 맺는 데 성공했다. 금융권에서는 ‘김 회장의 승부사 기질이 또 한 번 발휘된 순간’이라고 평가했다.
1943년 8월 19일 충북 청주 출생인 김 회장은 경기고와 고려대를 졸업 후 한일은행에 입행, 금융인으로 첫발을 내디뎠으나 2년 만에 그만두고 1968년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학창시절 김승유 회장의 꿈은 금융인이 아니라 학자였다고 한다. 미국 유학길에 오른 것도 학자의 꿈을 키우기 위해서였다.
김 회장은 미국 남가주대(USC)에서 경영학 석사학위를 취득한 후 귀국했다. 그러나 학자의 길을 계속 가지 못하고 1971년 하나은행의 전신인 한국투자금융의 창립멤버가 됐다. 그러면서도 학자의 꿈에 대한 아쉬움이 절절했는지, 김 회장은 한국투자금융에서 일하면서 고려대 경영대학원 강사로 강의를 병행했다. 2002년부터 고려대 경영대 겸임교수, 2003년 이화여대 경영대 겸임교수 등을 지냈다. ‘통합 하나은행장’에 취임해 은행을 이끌어가기도 벅찰 때에 겸임교수까지 한 것이다.
김 회장은 경기고, 고려대 경영학과, 남가주대 등을 거치면서 화려한 인맥을 형성했다. 김 회장 스스로 고려대 경영대 교우회장이나 남가주대 한국총동문회장 등을 수행하면서 자연스레 넓디넓은 인맥이 이뤄졌다. 고 설원량 대한전선 회장, 현승훈 화승그룹 회장, 김원길 전 보건복지부 장관 등이 김 회장의 경기고 동기다. 고려대 인맥은 앞서 말한 바와 같이 화려하다. 남가주대 인맥도 내로라하는 인물들이다.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정몽원 만도 회장, 정창영 전 연세대 총장 등이 있다.
▲ 미소금융재단 이사장으로서 현대차미소금융재단 현판식에 참석한 모습. |
2003년 SK네트웍스(옛 SK글로벌)의 대규모 분식회계 사건 때 김 회장은 하나은행장으로서 SK그룹을 위기에서 구해줬고 같은 해 말 소버린 사태를 겪으며 최태원 회장의 경영권이 흔들릴 때도 김 회장은 하나은행장으로서 SK(주)의 지분을 매입, 백기사를 자청했다. 지금도 하나금융은 SK텔레콤과 협력, ‘하나SK카드’ 사업을 함께 하고 있다.
석사학위를 받은 김 회장이 귀국 후 처음 몸담은 한국투자금융은 주로 만기가 짧은 금융상품을 취급하는 단기금융 전문회사, 즉 ‘단자회사’였다. 이를 기반으로 지금의 하나금융지주로 성장시켰으니 김승유 회장에 대한 금융권의 시선이 특별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김 회장은 1991년 윤병철 전 하나은행장과 함께 한국투자금융을 하나은행으로 전환시키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1997년 하나은행장에 취임했다. 이때부터 김 회장의 전성기가 본격적으로 펼쳐지기 시작했다.
김 회장은 자산 8조 원대인 별 볼일 없던 하나은행을 200조 원이 넘는, 누구도 무시하지 못할 은행으로 키워냈다. 성장의 원동력은 M&A였다. 김 회장은 외환위기로 온 나라가 어려운 지경에 빠져 있던 1998년 충청은행을 인수했다. 1999년에는 보람은행, 2002년에는 서울은행, 2005년에는 대한투자증권을 잇따라 인수했다.
잇단 M&A로 김 회장은 금융계에서 ‘M&A의 귀재’, ‘승부사’ 등의 별칭을 얻었다. 재계 관계자는 “M&A와 관련해 기업 쪽에 강덕수 회장이 있다면 금융 쪽에는 김승유 회장이 있다는 말을 종종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김 회장이 성공만 한 것은 아니다. 연이은 M&A 실패로 위상이 위태로웠던 적도 있었다. 2006년 외환은행과 LG카드를 인수하는 데 잇따라 실패한 것. 2006년에도 외환은행이 매물로 나왔지만 김승유 회장은 국민은행에 패했다. 당시 인수전에서 하나금융은 국민은행에 주당 100원이라는 근소한 차이로 석패했다.
실패 후 열린 정기주주총회에서 김 회장은 “패장으로서 무슨 할 말이 있겠느냐. 모든 면에서 부족했던 것 같다”며 실패에 대한 책임을 물은 주주들에게 고개를 숙였다. 이어 열린 LG카드 인수전에서도 패하면서 ‘금융인생’의 큰 위기를 맞았다. 그러나 절치부심, 와신상담의 세월을 보낸 김 회장은 마침내 외환은행을 손에 넣는 데 성공했다. 외환은행 인수로 하나금융은 신한금융을 제치고 우리금융, KB금융과 함께 ‘빅3’ 구도를 형성하게 됐다.
론스타와 최종 매매계약을 맺기까지 우여곡절도 많았다. 지난해 MOU를 맺는 과정도 극적이었을 뿐더러 론스타의 ‘먹튀 논란’에 함께 시달려야 했다. 2006년 국민은행이 외환은행 인수전에서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되고서도 최종 인수에 실패한 까닭도 먹튀 논란이 크게 작용했다.
MOU 이후 글로벌 경기 침체를 겪으며 외환은행의 주가가 끝없이 하락하는 상황에서 외환카드 주가조작 사건에 대한 대법원의 유죄 취지 파기 환송이 일어났다. 론스타의 외환은행 대주주 자격 상실, 금융당국의 론스타의 외환은행 지분 강제 매각 명령 등 외환은행을 두고 수많은 일이 발생했다. 하나금융은 외환은행 인수 가격을 놓고 론스타와 수차례 재협상을 벌인 결과 주당 1만 1900원, 총 3조 9156억 원에 론스타의 외환은행 지분을 인수키로 했다.
이를 두고 금융권에서는 ‘집념의 승리’라고 평가하고 있다. 국내 금융 역사상 3개 이상 은행을 M&A한 사람은 김승유 회장의 유일하다는 점을 들어 ‘대한민국 금융권 M&A의 산 역사’라고 말하는 이도 있다.
▲ 외환은행 직원들의 하나금융 합병 반대 집회. 연합뉴스 |
게다가 구조조정을 예감하고 있는 외환은행 노조와 원만히 해결점을 찾아야 할 숙제도 안고 있다. “외환은행 인수 후 ‘투 뱅크 체제’로 갈 것”이라고 밝힌 김 회장은 “고용안정을 위해 모든 것을 껴안겠다”고 했지만 우리금융과 합병 얘기가 오갈 때 이미 구조조정을 언급한 바 있다. 외환은행 노조와 금융산업노조 등도 ‘금융노동자의 대량해고’를 우려하고 있다. 외환은행 노조는 “하나금융의 인수 시도를 무산시킬 때까지 끝까지 투쟁할 것”이라며 강경하게 나오고 있다.
특혜 시비가 우려돼 우리금융을 포기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외환은행 인수에서도 특혜 시비가 불거질 여지는 다분하다. 정부와 금융당국이 이명박 대통령의 절친인 김승유 회장에게 특혜를 주었다는 의혹이 곳곳에서 제기될 것이 뻔하다. 벌써부터 하나금융의 외환은행 인수 승인 여부와 관련해 잡음이 일어나고 있는 실정이다. 김석동 금융위원장이 “인수 심사가 오래 걸릴 듯하다”는 뉘앙스를 내비치자 김승유 회장이 “금융당국의 선처를 바란다”고 말하기도 했다.
설사 인수 승인을 받아낸다 해도 정치권에서 계속 물고 늘어질 일도 배제할 수 없다. 지난 10월 7일 고승덕 한나라당 의원은 국정감사에서 “하나금융의 외환은행 인수가 김승유 회장의 연명을 위한 의도가 숨어 있는 것 아니냐”며 “계약조건과 지연보상금에 대해 국민들이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있게 철저하게 경위를 따져야 한다”고 지적한 바 있다.
게다가 정치적 격동기인 내년 총선과 대선 정국에서 어떤 비수가 날아올지 모른다. 1965년 한일은행 입행으로 시작된 김승유 회장의 45년 금융인생의 성패가 달린 외환은행 인수 문제는 아직 끝나지 않은 셈이다.
임형도 기자 hdli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