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어김없이 반복되는 부끄러운 역사가 있다. 임기 말 대통령의 레임덕 현상이다. 대통령 임기 말이면 측근이나 친인척들의 비리사건이 터진다. 거기에 정치적 실패가 얹히고 차기권력을 좇는 철새정치인들의 배반 행렬이 이어진다. 야당들이 그런 기회를 놓칠 리 없다. 오히려 여당이 한 술 더 뜨기도 한다.
여당에선 당이 살려면 대통령과 거리를 두어야 한다며 대통령의 탈당을 요구한다. 흥미로운 것은 그런 주장을 하는 정치인일수록 대통령의 힘이 셀 때 측근행세를 하던 사람이 많다는 것이다. 전형적인 감탄고토(甘呑苦吐)요, 염량(炎凉)세태다. 전두환 전 대통령 이후 노무현 전 대통령까지 모든 대통령이 자신의 소속 당에서 탈당 또는 당직사퇴의 형식으로 축출당했다.
측근들의 비리는 역대 대통령 중에 누가 덜하다 할 것 없이 허다했다. 친인척 비리에선 약간의 차이가 있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재임 중 비리혐의로 외아들을 감옥으로 보낸 최초의 대통령이었다. 대통령 자신이 투옥되는 것과 같은 충격과 아픔이었을 것이라고 했다. 헌데 김대중 전 대통령은 같은 혐의로 두 아들들을 감옥으로 보냈다. 역사에서 아무런 교훈을 못 얻은 표본적인 사건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 시절엔 형님이 감옥에 갔다.
이명박 대통령도 어김없이 그런 방향으로 가고 있다. 측근들의 비리가 역대 어느 대통령 시절보다 많이 적발됐고, 친인척 비리는 영부인 쪽의 비리가 특히 두드러지는 모습이다. 물론 형님의 보좌관비리가 드러나기 시작했으므로 그것이 어디까지 번질지 예측불허다. 앞으로 1년 넘게 남은 임기 사이에 얼마나 많은 비리가 새로 터져 나올지도 알 수 없다.
한·미 FTA국회처리 과정에서 이미 집권당 내에서 대통령에 대한 탈당 요구가 나오더니 서울시장 보궐선거 패배에다 중앙선관위 디도스 공격이라는 초대형 비리까지 겹쳐 패닉상태에 빠진 한나라당은 당의 간판을 내려야 할 상황에 몰렸다. 이 대통령은 열린우리당 해체로 갈 곳이 없었던 노무현 대통령의 전철을 밟을 가능성이 커졌다.
1조 달러 돌파로 세계 9위의 무역대국을 자랑하는 한국이다. 왜 어느 후진국에서조차 볼 수 없는 이런 부끄러운 대통령의 모습이 21세기로 접어든지 10년도 더 된 이 시점에서도 되풀이되는 것일까?
권력은 크기와 관계없이 휘두르고 싶은 게 인지상정이다. 국가의 예산권과 정부의 인사권을 가진 대통령의 권한은 무소불위의 권력이다. 그만큼 두렵게 행사돼야 함에도 권력의 크기와 달콤함에 도취돼 자의적으로 행사됐다는 반증이다.
현 정부 출범 때 불거졌던 ‘고소영’ ‘강부자’ 파문은 결코 전화위복이 되지 못했다. 레임덕은 시스템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명예와 봉사의 자리여야 할 공직을 꿩도 먹고 알도 먹는 자리로 아는 사람을 골라내는 시스템이다. 최선의 시스템은 깨어있는 유권자다. 내년 대선에선 물러날 때의 모습을 끝까지 잊지 않을 대통령을 뽑자.
한남대 교수 임종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