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부가 무리수를 두며 내년 10월까지 14조 원대 무기 계약 추진을 서두르고 있다. 무기 거래 시장은 커미션만 1~3%, 수천억 원대에 달하는 거대한 로비 전쟁터다. |
문제는 내년 10월까지 이처럼 대규모 계약을 체결하는 것이 현실상 무리라는 지적이 쏟아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강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야권에서는 이번 무기계약이 다음 정권에 엄청난 부담을 줄 것이 자명함에도 정부가 임기 내 마무리 지으려는 것에 대해 짙은 의혹의 시선을 보내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퇴임 직전까지 14조 원대의 막대한 무기도입 계약을 서둘러 추진하는 배경을 추적해 봤다.
정부가 내년까지 계약을 마무리 지으려는 대형무기도입사업은 무려 13조7000억 원으로 사상 최대 규모로 평가되고 있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3차 차세대 전투기사업(8조 2905억 원), 아파치급 대형공격헬기(1조 8384억 원), KF-16전투기 성능개량(1조 8052억 원), 해상작전헬기(5538억 원), 고고도 무인정찰기(5002억 원), 장거리공대지유도탄(3880억 원), 다목적정밀유도확산탄(2577억 원) 등이다. 정부는 내년 1월에 제안서를 발송해 9월까지 시험평가와 업체별 협상을 벌인 뒤 10월까지 최종계약을 체결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이 사업 관련 국회 국방위원회(위원장 원유철)는 12월 초 “현실성이 결여된 무리한 추진”이라는 취지의 비공개보고서를 냈다. 보고서는 일정의 촉박함과 더불어 사업의 현실성과 필요성이 부족하다는 내용을 골자로 하고 있다. 우선 절충교역과 가격협상 등 복잡하고도 까다로운 일련의 과정들을 거치려면 내년 10월까지 계약을 체결하기가 현실적으로 어렵고 결국엔 원칙과 공정과는 거리가 멀게 일이 진행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일부 방위산업관계자들은 그간 절충교역과 기술이전 조건을 협의하는 데만도 최소 1~2년 이상의 기간이 소요됐음을 지적하고 있다.
정부가 추진 중인 무기계약과 관련해 정치권에서 제기하는 가장 큰 의혹은 왜 정권말기에 이처럼 무리한 무기도입을 서둘러 강행하려 하느냐에 있다. 민주당 안규백 의원실 관계자는 “세부사항을 일일이 협의하는 데만도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시험평가를 거치고 선정된 업체들과 협상까지 마치기엔 시간이 빠듯하다는 사실을 지적했음에도 밀어붙이기 식으로 나가니까 잡음이 생기고 의혹이 발생하는 거다. 무기계약을 굳이 현 정권에서 마무리 지을 필요가 없는데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 이대로라면 내년에는 단계적인 계약금 지급비용 550억 원 정도만 들지만 후년부터 정부는 매년 1조 원 이상 최소 7년 이상을 지출해야 한다. 차기 정권에 엄청난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라는 입장을 밝혔다.
또한 익명을 요구한 군 관계자는 “정부가 내년 10월 전 계약완료를 독려한다는 얘기는 이미 있었고 내부에서도 의아하다는 반응이 많았다. 도입예정 기종을 두고도 말이 많았다. 국방력 강화를 위해 차세대 무기구매 필요성은 꾸준히 제기돼 왔지만 정권 말기에 몰아서 추진하는 것은 상식적인 일은 아니다. 1조 원 이상의 기종결정을 한 적이 없는 현 정부가 임기 말에 14조 원에 달하는 무기거래를 결정하는 것은 뭔가 석연치 않다”라고 귀띔했다.
주목할 점은 엄청난 예산이 들어가는 무기계약을 임기 내 서두르는 이유와 관련해 커미션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는 점이다. 국회 주변에서는 “실무적인 측면을 무시한 채 정부가 무리하게 강행하는 무기도입 계약이 MB정부의 마지막 패착이 될 것”이라는 경고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번 사업이 무려 14조에 달한다는 점에서 얼마나 치열한 로비가 벌어질지는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부분이고, 그 과정에서 권력과 유착한 로비스트들의 출현도 예고되고 있기 때문이다.
앞서 안 의원실 관계자는 “무기구매와 관련된 업무는 방위사업청 내 방위사업추진위원회에서 담당하는데 어차피 군 고위관계자들이 개입한다는 점에서 권력과 무관하다고 볼 수 없다. 에이전시나 업체선정 과정에서 거물급 로비스트의 등장 및 윗선의 입김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미래경영연구소 황장수 소장 역시 “권영해, 린다 김, 조풍언, 김영완 등을 봐도 알 수 있듯이 역대 정권에서 무기거래에 관한 잡음이 끊이지 않았다. 방산업계에서는 14조 원의 무기 거래가 이뤄질 경우 커미션만 공식적으로 1~3%에 달해 수천억 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커미션의 상당액이 로비스트나 브로커를 거쳐 권력의 손아귀에 들어간 정황은 수없이 있어오지 않았나. 현 상황에서는 무기구매 브로커와 권력자 간의 뒷거래 혹은 밀약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으며 퇴임 후 엄청난 화근이 될 수 있다. 최악의 경우 또다시 정치권을 발칵 뒤집어놓을 대형게이트가 터질 수도 있다”는 견해를 밝혔다.
또한 정치권 일각에서는 내년 총선 후 여소야대가 될 것을 감안한 정부가 새 국회 구성 전에 무기사업의 굵직한 틀을 대부분 만들어놓기 위해 안간힘을 쓸 것이라는 추측도 나오고 있다. 계획된 내년 10월보다 더 앞당겨질 가능성도 있다는 얘기다.
신학용 의원실의 한 관계자는 이에 대해 “국방위 소속의 많은 의원들이 ‘임기 막판에 계약금만 슬쩍 걸어놓고 계약한다는 것은 모럴해저드고 누가 보더라도 이해할 수 없다’고 여러 번 얘기했다. 현재 한미 FTA 문제가 걸려있어 아직 예산안심사 예정이 나오지 않았다. FTA를 비롯해 디도스 사태, 정당들이 통합과 쇄신 등으로 정쟁 와중에 있는 형국 아닌가. 예산심의가 시간에 쫓겨 얼렁뚱땅 통과될 우려도 있다”고 전했다.
정부가 구입하려는 무기가 국내 현실에 적합한지도 논란의 여지가 있다. 고도무인 정찰기와 아파치 헬기 등 육군이 도입 추진 중인 대형헬기와 20인승 대형해경헬기가 한국 실정과 전투여건에 맞지 않는다는 지적과 함께 그 필요성에도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군 일각에서는 이미 한국 실정을 감안할 때 소형 무장헬기가 대 해상 침투작전에 유리하다는 의견도 나온 상태다.
하지만 이러한 일련의 의혹들에 대해 방위사업청 측은 매우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고 있다. 방위사업청의 한 관계자는 이에 대해 “차기 전투기, 대형공격헬기 및 해상작전헬기 사업은 그동안 재원 부족으로 순연됐던 사업으로, 현재 선행연구, 사업타당성조사, 구매계획 승인 등 사전준비를 마친 상태다. 따라서 내년 사업 추진에 전혀 무리가 없다”고 설명했다.
또 임기 말 서둘러 추진한다는 의혹에 대해서는 “차기전투기는 2007년, 대형공격헬기는 1990년, 해상작전헬기는 2006년부터 추진해온 것으로 임기 말 갑자기 진행된 사업이 아니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특히 “내년에 협상대상 업체를 선정할 계획인 것은 사실이지만 정해진 게 없다. 따라서 미국과의 관계를 감안해 계약이 진행될 것이라는 등의 항간에서 제기되는 일련의 의혹은 사실과 다르다”고 강조했다.
이명박 대통령이 수없이 외쳐대던 ‘공정사회’의 원칙이 14조 원대의 무기도입 사업에도 그대로 적용될지 주목된다.
이수향 기자 lsh7@ilyo.co.kr
우리가 ‘갑’인데…
현재 미국은 동맹국들에게 무기수입을 강요할 수밖에 없는 상황인데 우리나라 역시 미국의 압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처지다. 특히 1000만 달러 이상 대형무기의 80% 이상을 미국에서 들여온다는 점에서 우리나라는 미국 방산업체의 주요 고객이다. 일각에서는 정부의 대규모 무기사업 추진이 지난 10월 이 대통령이 미국 국빈방문 당시 ‘환대’를 받은 것에 대한 보답 및 관계강화를 위한 차원이라는 정치적인 분석도 내놓고 있다.
한 군사 전문가는 이에 대해 “대상기종으로 거론되는 F-35는 시제품을 생산해 시험비행 단계로 각종 결함에 노출돼 있다. 또 몸체는 완성됐지만 정작 현대 전투기에서 중요한 소프트웨어 프로그램이 완성되지 않은 깡통비행기라는 얘기도 있다. 미국은 내년 대선 전 F-35 일부를 해외에 전가하려 하고 있는데, 미국이 F-35를 한국에 판매하려고 하는 것은 정치적 요인이 크다. 또 미국 방산업체가 불경기인 상황에서 수입압박 가능성도 다분하다. 각종 결함이 드러나고 있는 전투기를 변칙계약으로 사들일 경우 정부는 큰 후폭풍을 감당해야 할 것”이라고 귀띔했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우리가 우방국인 미국과의 관계를 신경 쓰지 않을 수는 없지만 이제는 국가 위상이 많이 높아진 만큼 무기도입 사업도 정치적인 관계보다 경제적인 관점에서 바라볼 때가 됐다”라고 말했다. [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