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순애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7월 29일 업무보고를 통해 현행 만 6세인 초등학교 취학 연령을 2025년부터 4년간 단계적으로 만 5세로 낮추는 내용을 윤석열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취지는 가정 여건 등으로 인해 발생하는 교육 격차를 국가가 조기에 책임지고 해소하겠다는 것이다.
박 장관은 “영유아와 초등학교 시기가 (성인기에 비해) 교육에 투자했을 때 효과가 16배 더 나온다는 연구결과가 있다”며 “(취학연령 하향은) 사회적 약자도 빨리 공교육으로 들어와서 공부할 수 있도록 국가가 책임지겠다는 의지의 표명”이라고 설명했다.
교육부는 일단 2024년까지 방안을 확정해 2025년부터 입학 시기를 당기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2019년생을 한꺼번에 입학시킬 경우 학습 공간과 교사 수급에 차질이 생길 수 있으므로 2025년부터 취학 연령을 3개월씩 앞당겨 4년에 걸쳐 단계적으로 추진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구체적으로 2025년 초등학교 입학생은 2018년 1월~2019년 3월생, 2026년 입학생은 2019년 4월~2020년 6월생, 2027년 입학생은 2020년 7월~2021년 9월생, 2028년 입학생은 2021년 10월~2022년 12월생으로 구분했다. 이렇게 되면 최대 15개월 차이가 나는 학생들이 한 학년으로 묶이게 된다.
#“요즘 아이들 오히려 발달 더 느려”
문제는 이번 학제개편안이 윤 대통령 대선 후보 당시 공약이나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단계에서 발표한 국정과제에서 전혀 언급되지 않았던 사안이라는 점이다. 예상치 못한 불똥에 교육계와 학부모들은 “교육과정 전체를 흔드는 중대한 사안을 사전 협의도 없이 독단적으로 추진했다”며 강한 반발을 쏟아냈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전국사립유치원연합회 등 교육계에서는 현실성과 실효성 모두 고려하지 못한 제도라는 입장이다. 전국국공립유치원교사노조 관계자는 “만 5세 아동을 지도해보면 안다. 15~20분의 활동 시간이 지나면 집중력을 잃는 아이들이 대부분이다. 40분 동안 교실에 앉아 학습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측도 8월 1일 성명서를 통해 “학제개편안은 기본생활, 교우관계, 학습에서 만 5세 유아의 스트레스가 커지고 학부모들도 뒤처질 것을 우려해 조기 사교육 부담만 가중시킬 것이고 만 5세를 공교육에 편입시켜 교육격차를 해소하겠다는 취지와 달리 사교육 연령만 더 낮출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현재도 조기 입학이 가능하지만 선택하는 이가 없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조기 입학은 현재도 가능하다. 초·중등교육법 제13조 제2항에 따르면 모든 아동은 5세가 된 날이 속하는 해의 다음해 또는 7세가 된 날이 속하는 해의 다음해에 초등학교에 입학할 수 있다. 다만, 한국교육개발원의 통계에 따르면 2021년 초등학교 조기 입학 아동은 537명으로 전체 초등학교 입학 인원인 42만 8405명의 0.125% 수준으로 그 수가 매우 적다.
2018년생 이하의 자녀를 둔 학부모들은 갑작스런 교육부 발표에 황당함을 감추지 못하는 모습이다. 2019년생과 2016년생 자녀를 둔 서울 마포구의 이 아무개 씨(36)는 “큰아들이 7세인데 아직도 이부자리에서 소변 실수를 한다. 학교를 보낼 수 있겠느냐”며 “요즘 아이들의 발달 속도가 빨라졌다고 하는데 그렇지도 않다. 오히려 코로나19 여파로 언어 능력과 사교성이 부족한 아이들이 더 많다. 단순히 ‘요즘 아이들 똑똑해졌으니 일찍 입학해도 된다’는 식의 접근은 너무 탁상공론이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이 나이대 아이들은 1~2개월 차이만 나도 성장 격차가 크다. 15개월이면 신체나 인지능력 면에서 차이가 많을 것이다. 이런 중대한 문제를 아무런 논의 없이 갑자기 시행한다고 하니 황당할 따름이다. 요즘 엄마들 사이에서는 ‘1년 일찍 보냈다가 뒤처지느니 입학유예라도 해서 원래 나이에 보내자’는 말도 나온다”고 말했다.
맞벌이 부부인 박 아무개 씨(33)는 “많은 워킹맘들이 자녀의 초등학교 입학 시기에 맞춰 퇴사를 고민한다. 학교를 일찍 가게 되면 퇴사 시기도 1년 앞당겨지지 않을까”라며 “정부는 돌봄공백이 생기지 않도록 학교에서 오후 8시까지 아이를 봐주겠다고 하는데, 맞벌이하는 입장에서는 아이를 오랜 시간 맡아주는 것보다 부모가 자녀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정책을 만들어주는 게 더 고맙다”고 말했다.
#1년 일찍 졸업…그 후엔?
정부는 취학 연령 하향을 통해 고등학교 졸업을 1년 앞당겨 청년층의 사회 진출 시기를 조정하겠다는 방침이다. 입직 연령을 낮춰 노동인구나 생산가능 인구를 늘리면 출생률과 고령화 문제도 부차적으로 완화되지 않겠냐는 기대다.
문제는 학제개편안 대상인 학생 당사자들이 겪을 혼란이다. 특히 단계적 시범기간에 포함되는 연령대(2018년 1월~2022년 12월생)는 동급생의 범위가 넓어지면서 인구수도 늘어나고 동급생 사이에도 최대 15개월 차이가 나게 되는데, 고등학교를 졸업해도 대입·취업 등에서 더 거센 입시경쟁과 취업경쟁을 겪게 된다.
사회에 나와서는 이른바 ‘꼬인 족보’의 당사자가 될 수도 있다. 빠른 년생으로 조기 입학을 한 조 아무개 씨(29)는 “한국 사회에서 나이는 생각보다 생애 전반에 큰 영향을 미친다. 학교를 일찍 들어가 고등학교까지 1992년생처럼 살았고 친구들 모두 1992년생이지만 실제 내 나이는 한 살 어리다보니 대학과 군대, 회사에서 늘 ‘X족보를 만든다’고 핀잔을 듣곤 했다”며 “그런데 학제개편안이 시행되면 유치원을 같이 다녔던 친구가 어느 날 갑자기 형이나 동생이 되는 거다. 심지어 생일이 빠른 것도 아니다. 이들이 사회에 나오면 어떻게 될까. 생각만 해도 혼란스럽다”고 말했다.
한편, 대학가 인근의 한 자영업자는 “고등학교를 1년 일찍 졸업하면 대학교 1학년이 여전히 법적 미성년자라는 것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새 학기와 학교 축제 시즌이면 대학가는 그야말로 음주가무로 난리다. 대부분 단체 손님인데 일개 음식점 사장이 겉모습만 보고 대학교 1학년과 2학년을 어떻게 구분하겠느냐. 매번 일일이 주민등록증을 검사할 수도 없다. 이로 인한 과태료는 오롯이 업주가 진다. 이런 식이면 법적 미성년자 연령도 바꿔야 한다고 본다”고 주장했다.
#왜 만 6세인가
외국 어린이들도 우리나라와 비슷한 시기에 학교를 간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국제교육통계보고서를 보면 2019년 기준 38개 회원국 가운데 27개 국가가 초등학교 입학 연령을 만 6세로 정해두고 있다. 스웨덴·에스토니아·핀란드 등 7개국이 만 7세가 되면 아이들을 학교에 보냈고 영국·아일랜드·호주·뉴질랜드 등 4개국만이 만 5세를 첫 취학 연령으로 규정하고 있다. 38개 국가 가운데 34개 곳이 최소 만 6세가 되어야 학교를 보내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하필 만 5세가 아닌 만 6세일까. 이와 관련해서는 이미 해외에서 경제, 사회, 교육 등 다양한 분야의 연구가 진행돼왔다. 1999년 미국의 수잔 메이어와 데이비드 너트슨은 저서를 통해 만 6세의 초등학교 진학이 경제적으로 가장 적절하다는 결과를 발표했다. 2005년에는 독일의 학자 마이클 퍼티크와 요헨 클루베가 ‘만 6세 취학 연령의 교육 효과 연구’를 통해 만 6세 아동 중에서도 생일이 늦은 유아의 교육 성취가 더 높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은 바 있다.
한편, 만 5세 입학 제도를 취하고 있는 영국에서도 ‘만 4세와 만 5세의 초등 입학에 대한 적절성 연구(Sharp, 2005)’ 등을 진행했는데 만 4세와 만 5세의 조기입학이 초등 및 중학교 학업 성취도에 긍정적인 효과를 보이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면서 유아교육에 적합한 놀이 및 발달 중심의 교육과정을 통해 상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영국은 2000년 교육개혁을 통해 유아학교와 초등학교 저학년 단계를 연계하는 유아교육 학제를 구축해 적용하고 있다.
한편, 학제 개편안에 대한 여론의 반발이 거세지자 정부는 황급히 “공론화 과정을 거치겠다”며 숨고르기에 나섰다. 안상훈 대통령실 사회수석은 8월 2일 언론 브리핑에서 “모든 개혁이 마찬가지겠지만 교육개혁도 대통령과 내각이 마음대로 할 수 없는 부분이 크다”며 “교육부가 신속히 공론화를 추진하고 종국적으로 국회에서 초당적 논의가 가능하도록 촉진자 역할을 해 달라는 것이 윤 대통령 지시 사항”이라고 밝혔다. 이는 7월 교육부 업무보고 당시 ‘초등 입학 연령을 1년 앞당기는 방안을 신속 강구하라’는 윤 대통령의 지시에서 매우 완화된 입장이다.
그러면서도 “취학 연령 하향은 영미권 중심의 다수 선진국에서 시행하고 있는 것으로 여러 장점이 있는 개혁방안인 것은 사실”이라며 옳은 정책 방향이라고 강조하는 등 개혁 의지를 내비치기도 했다.
역대 정부도 시도했지만 “근거부족” 물러나
초등학교 입학 연령을 당기자는 논의는 역대 정부에서도 논의돼 왔지만 번번이 무산돼 왔다. 초등학교 의무교육 취학 연령이 만 6세로 정착된 것은 교육법(현 교육기본법)이 처음 만들어졌던 1949년이다. 지금의 초등학교 6년, 중학교 3년, 고등학교 3년, 대학교 4년의 학제는 1951년부터 유지돼 왔다. 1987년에는 대통령 자문기구인 교육개혁심의회를 통해 입학연령 단축 논의가 제기됐는데 일률적으로 연령을 앞당기는 것이 아니라 조기 입학 제도를 허용하고 우수한 학생에 한해 월반제를 도입하는 것이었다.
50년 이상 이어진 학제를 개편하자는 논의가 처음 등장한 건 노무현 정부 때인 2007년으로 청년의 사회진출 연령을 2년 낮추고 퇴직연령을 5년 늦춰 생애근로기간을 만회하겠다는 것이 정부의 의도였다. 이를 위해 교육인적자원부와 교육혁신위원회는 의견수겸을 위한 6차례의 학제개편 토론회를 개최하기도 했으나 경제사회적 비용과 사회적 혼란이 예고된다는 이유로 무산된 바 있다.
당시 김용익 대통령비서실 사회정책수석비서관이 SNS(소셜미디어)를 통해 밝힌 일화에 따르면 노 전 대통령에게 ‘입학 연령을 당기면 1학년부터 12학년까지 들어가는 경제사회적 비용이 2조~3조 원이고 시설, 교사, 교육과정 등에서의 대변화가 예상된다’고 보고하니 노 전 대통령은 곧바로 ‘(정책을) 덮어라’라고 했다고 한다.
이명박 정부도 2009년 대통령 직속 미래기획위원회를 통해 ‘제1차 저출산 대책회의’를 열고 만 5세의 초등학교 입학 청사진을 그렸다. 취학 연령을 낮추면 학령 전 교육을 위해 자녀에게 들이는 양육비가 줄고, 청년들을 조기에 사회 진출시켜 종국에는 출생률을 높일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이에 권미균 계명대 유아교육과 교수는 “취학 연령을 낮춤으로써 유아 시기의 사교육비를 줄일 수 있다고 하지만 우리 사회의 극심한 경쟁을 고려하면 이는 그리 믿음이 가지 않는 말”이라며 “제도가 시행되면 발달이 충분하지 않은 유아들까지 초등 교육에 대비하기 위한 경쟁이 확대돼 결국 사교육비 지출 시기를 앞당기는 결과를 초래할 뿐”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2015년 박근혜 정부의 보건복지부도 저출생·고령화 문제의 대책으로 학제개편안 카드를 꺼내 들었지만 교육부로 넘어가지 못 했다.
이처럼 역대 정부의 취학 연령 하향 시도가 번번이 낙방했던 데에는 이유가 있다. 근거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학제개편안 추진의 주요 근거는 대개 아동 발달 속도가 점점 빨라지고 있다는 것이었는데 과연 그 수준이 만 5세가 초등교육을 소화할 수 있는 정도인지는 명확히 입증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한 수조 원 규모에 이르는 사회경제적 비용과 비교해 보았을 때 출생률 상승 등의 효과는 미미할 것이라는 연구기관의 의견이 있었던 이유도 있다.
최희주 기자 hjo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