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11년 만에 55명 근로자 지위 인정…다른 하청 직원들도 소송 참여 문의 폭증
대법원은 7월 28일 포스코 사내하청업체 소속 노동자 59명이 낸 근로자 지위 확인 소송 2건에 대해 정년이 지난 4명을 제외하고 원고 승소인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 59명 중 정년이 지난 4명은 소송의 이익이 없다는 이유로 소를 각하했다. 이번에 판결난 소송은 2011년 5월에 접수된 1차 집단소송과 2016년 10월 접수된 2차 집단소송이다. 1차에 15명, 2차에 44명의 사내하청업체 노동자들이 소송을 제기했다. 이들은 포스코에서 크레인을 이용해 코일 및 롤 운반, 정비지원 등 각종 업무를 수행해왔다. 포스코가 운영하는 제철소에 파견돼 2년 넘게 같은 일을 하고 있으니 파견법상 포스코의 정직원으로 인정해달라는 것이 노동자들의 주장이었다.
1심 재판부는 사내하청 노동자들이 포스코의 지휘·명령을 받아 근무했다고 볼 수 없어 불법파견으로 보지 않았다. 하지만 2심에서 포스코가 노동자들에게 업무를 지시해 불법파견이 맞다고 판결하면서 결과가 뒤집혔다. 마지막 대법원 판결도 원고 승소인 원심을 확정하면서 포스코 사내하청 노동자들은 소송을 제기한 지 11년 만에 포스코 정직원으로 인정받을 수 있었다. 포스코는 대법 판결에 따라 55명의 하청 노동자들을 직고용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현재 전국금속노동조합(금속노조) 소속 총 808명의 광양제철소·포항제철소 사내하청 노동자들은 포스코를 상대로 7차까지 집단소송을 진행 중이다.
이번 승소를 통해 소송을 제기하지 않은 광양제철소·포항제철소의 사내하청 노동자들도 근로자 지위 확인 소송 참여에 대한 문의와 관심이 많아지고 있다. 손상용 금속노조 전략조직부장은 “대법원 판결이 나온 후에 사내하청 직원들이 본인들도 소송을 할 수 있는지 등에 대해 문의를 많이 하고 있다”며 “소송을 원하시는 분들은 개별적으로 진행하는 것보다 소송 과정에서 노조가 함께하는 것이 수월하기 때문에 노조 가입과 소송을 같이 진행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소송과 관련해 문의 오시는 분들에 대해서는 8월까지 참여 의사를 받고 9월에 8차 소송을 접수할 계획”이라며 “8월 이후에도 계속 소송 문의가 올 것 같은데 기다릴 수만은 없어서 8월까지 소송 의사를 밝히신 노조원에 대해서 먼저 8차 소송을 진행할 것”이라고 전했다.
구자겸 금속노조 포스코사내하청지회장은 소송 관련 문의가 많이 오고 있지만 최종적으로 얼마나 많은 노동자들이 소송에 참여할지는 모르겠다는 입장을 전했다. 구 지회장은 “나머지 하청 직원들도 소송과 관련해서 관심이 많고, 실제로 문의가 많이 들어오고 있다”면서도 “소송을 하면 회사에서 차별받거나 불이익을 받을 수도 있다는 두려움 때문에 쉽게 소송에 참여하려고 하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손상용 전략조직부장은 “소송을 할 때 당사자의 계약 서명이 있어야 하는데 상담만 하고 소송까지 결심하지 않은 사람도 있고, 문의만 주시는 분들도 있다”며 “그래서 소송에 참여하는 인원을 정확하게 말씀드리기 어렵다”고 전했다.
손상용 전략조직부장은 11년 끝에 소송에서 이겼음에도 또 소송을 준비해야 하는 것에 대해 안타까움을 표하기도 했다. 그는 “1, 2차 소송 이겼다고 해서 포스코가 나머지 모든 소송(3~7차) 당사자들을 직고용 하겠다고 밝히지는 않았다”며 “추가 소송을 하는 것은 노사 서로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들기 때문에 소송보다 이번 대법 판결을 기준으로 삼아 하청업체 직원들을 직고용해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손 전략조직부장은 10년이 넘는 시간이면 노사가 합의할 만도 하지만 소송이 진행되는 동안 포스코는 노조 측과 합의를 하거나 대화하려는 시도조차 없었다고 전했다. 손 전략조직부장은 “포스코 측에서 노조와 합의점을 찾으려는 노력은 전혀 없었다”며 “소송 진행하고 결과 나오면 검토하겠다는 입장을 전할 뿐이었다”고 말했다. 이어 “소송에 들어갔을 때도 포스코에서는 법적으로 계속 소송을 진행하겠다고 밝혔다”고 전했다. 포스코 관계자에게 소송이 진행되는 지난 11년 동안 노조 측과 대화나 교섭 등을 시도한 적이 있었는지 물었지만 “대법원의 판단이 내려진 만큼 그 취지에 따라 신속히 후속 조치를 이행하겠다”는 말만 반복했다.
대법원의 판결로 55명의 노동자들의 직고용이 결정되고, 다른 사내하청 직원들도 소송에 관심을 보이고 있지만 여전히 판결나지 않은 소송들이 남아 있다. 또 노조는 새로운 소송을 준비하고 있는 상황이다. 김성희 고려대 노동전문대학원 교수는 “포스코에 대한 불법 파견 판정은 포스코 대다수 사내하청업체 직원들에게 사실상 다 해당되는 내용”이라며 “포스코가 대법 판결을 포괄적으로 해석해 모든 하청업체 직원들을 직접 고용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번 사건을 맡았던 정기호 변호사(민주노총 법률원장)는 “제철업계에서 최초로 불법파견을 인정받았기 때문에 다른 제철기업에도 영향을 줄 수 있는 사례라고 생각한다”며 “MES(생산관리시스템)가 지시·명령에 해당된다고 명시적으로 밝힌 최초의 판결이기도 하다”고 전했다. 정 변호사는 “불법파견을 입증하려면 시스템이 잘못됐다는 증거를 찾아야 해 노동자 개인이 입증하기란 쉽지 않다”며 “집단적으로 증거 수집도 하고 사실관계도 밝혀내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민주 기자 lij9073@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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