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저리그에서도 드문 기록, 60홈런
홈런은 야구의 꽃이라고도 불린다. 단 한 개의 타구로 점수를 단번에 낼 수 있는 홈런은 관중석으로부터 가장 큰 환호를 부른다. 현대 야구에서 그 중요성은 더욱 강조된다.
MLB에서 60홈런은 상징적인 기록이다. 장타력을 자랑하는 수많은 거포들 사이에서도 특별함을 인정받을 수 있는 수치다. 120년에 가까운 역사를 자랑하는 MLB에서도 60개 이상 홈런을 기록한 선수는 단 5명에 불과하다. 역대 메이저리그 단일시즌 최다홈런 기록을 살펴보면 60홈런 이상 기록이 열 손가락을 채우지 못한다. 역대 9위 기록부터 59홈런으로 시작한다. 그만큼 60홈런은 ‘신화적인 기록’으로 취급된다.
역대 최초 50홈런이 등장한 때는 100년 가까이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MLB의 전설적 인물인 베이브 루스가 1927년 60홈런을 기록하며 역사의 첫 페이지를 장식했다. 그 이후 로저 메리스가 61홈런을 기록하기까지 34년이 걸렸다.
한동안 머릿속에서 잊혔던 60홈런 기록은 1990년대 말미에서 2000년대 초반까지 심심치 않게 등장했다. 마크 맥과이어와 새미 소사가 홈런 부문에서 라이벌 관계를 형성하며 나란히 60개 이상 홈런을 때려냈다. 이들의 경쟁이 본격화된 1998년, 먼저 신기록을 수립했던 맥과이어는 70홈런에도 도달했다. 소사는 66홈런을 기록했다.
둘 사이 '세기의 홈런 레이스'는 1999시즌에도 재현됐다. 맥과이어가 65개, 소사가 63개를 기록하며 또 다시 팬들을 흥분 시켰다. '코리안 특급' 박찬호의 등장으로 MLB에 대한 관심이 높은 시기였기에 국내에서도 홈런 경쟁에 뜨거운 반응이 나왔다.
이듬해부터는 홈런왕 경쟁에 배리 본즈가 가세했다. 2000시즌 소사에 홈런 1개가 모자라 2위에 올랐던 본즈는 2001시즌, 73개 홈런을 때려내며 역대 단일시즌 홈런 기록 1위에 현재까지도 이름을 올리고 있다.
하지만 '메이저리그 인기 자체를 끌어올렸다'고 평가받는 거포들의 경쟁은 현 시대에 평가 절하를 받고 있다. 이 시기가 홈런의 시대인 동시에 '약물의 시대'였던 것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1961년 이후 40여 년 만에 60홈런 이상을 기록했던 마크 맥과이어, 새미 소사, 배리 본즈까지 모두 금지 약물을 복용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은 단일 시즌 기록뿐만 아니라 역대 누적 홈런 기록에서도 MLB 역사를 통틀어 상위권에 이름을 올리고 있지만(본즈 1위, 소사 9위, 맥과이어 11위) 약물 복용이라는 '전과' 탓에 명예의 전당에는 입성하지 못했다.
#높아지는 재현 가능성
약물 복용 전력이 있는 이들을 제외하면 마지막 60홈런 이상 기록은 1961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약물의 시대를 인정한다 하더라도 20년이 넘은 기록이다. 저지의 남다른 홈런 페이스에 눈길이 쏠릴 수밖에 없다.
저지의 강점은 꾸준함으로 평가 받는다. 개막 이후 4월 20경기에서 6개의 홈런으로 예열을 했던 저지는 이어지는 5, 6, 7월 각각 12개, 11개 13개의 홈런을 쳐냈다. 이에 시즌이 끝날 시점에는 69개 내외의 홈런을 기대하고 있는 것이다.
시즌 중 부진을 겪더라도 빠져나오는 방법을 아는 선수가 애런 저지다. 그는 커리어 하이 시즌이었던 2017시즌, 7월과 8월 부진한 모습을 보였다. 특히 8월 타율은 0.185, 홈런은 단 3개였다. 하지만 9월 반등에 성공, 한 달간 15홈런을 기록하며 52홈런으로 시즌을 마무리했다. 마크 맥과이어를 뛰어 넘는 신인 한 시즌 최다홈런 기록(종전 49개)이었다. 이는 저지에게 '만장일치 신인왕'이라는 영광을 안겨주기도 했다.
그를 둘러싼 상황 또한 대기록 달성에 긍정적이다. 소속팀 양키스는 105경기를 치른 현재 70승 35패로 승률 0.667을 기록, 아메리칸리그 동부지구 우승이 유력하다. 지구 2위 토론토와 11게임 차, 메이저리그 전체를 통틀어서도 승률 2위의 기록이다. 포스트시즌 진출, 지구 우승에 여유가 있는 상황이기에 시즌 말미 기록 달성이 여의치 않은 상황이라고 하더라도 팀 차원에서 저지에게 배려를 해줄 수 있는 것이다.
양키스는 강팀인 동시에 스타 군단이기도 하다. 저지 홀로 팀을 이끌어야 하는 상황이 아니라는 의미다. 이번 시즌 MLB 홈런 순위에는 저지의 팀 동료 앤서니 리조가 6위(27홈런), 지안카를로 스탠튼이 공동 10위(24홈런)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팀 사정상 저지의 한방이 꼭 필요하다는 부담이 적고 그에게만 상대방의 견제가 몰릴 수도 없는 환경이다.
#60홈런으로 오타니 제치고 MVP 수상까지?
50홈런만으로도 박수가 쏟아지는 최근의 MLB 추세에서, 60홈런은 단숨에 모든 스포트라이트를 가져갈 수 있는 기록이다. 이에 저지가 60홈런을 달성한다면 아메리칸리그 MVP까지 수상할 수 있지 않겠냐는 전망들이 조심스레 나오고 있다.
저지는 만장일치 신인왕을 수상했던 2017시즌 MVP 후보로도 거론됐지만 수상에는 실패했던 바 있다. 당시 MVP 트로피를 차지했던 이는 호세 알투베(휴스턴 애스트로스)다. 경쟁자였던 저지는 아쉬움을 느끼는 기색 없이 축하를 건네며 신인왕 수상에 만족해하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2017시즌 MVP는 현재까지도 논란거리로 남아있다. 알투베의 소속팀 휴스턴이 MLB 전체를 뒤흔든 사인 훔치기 사건을 일으켰기 때문이다. 휴스턴의 사인 훔치기는 2017년에도 이뤄졌고 그해 아메리칸리그 서부지구 우승을 넘어 월드시리즈 우승까지 이뤄냈다. 알투베의 MVP를 만든 기록들 또한 부정한 방법을 통해 만들어졌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시즌 기록 또한 저지가 알투베와 비교해 앞서는 부분이 많았다. 타격 부문(알투베 0.346, 저지 0.284)을 제외하면 홈런, 타점, 출루율, 장타율 등 대부분의 지표에서 저지가 앞섰다. 그럼에도 시즌 내내 꾸준함을 보였던 알투베와 달리 저지는 7월과 8월 극도로 부진했다는 점에서 낙제점을 받은 것이다.
MVP 경쟁에서 한 차례 고배를 마신 저지는 이번 시즌만큼은 수상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유력 경쟁자로 거론되는 인물은 오타니 쇼헤이(LA 에인절스)다.
오타니는 지난 시즌 투수로 뛰며 9승 2패 평균자책점 3.18, 타자로는 46홈런을 기록하며 아메리칸리그 만장일치 MVP에 등극했다. 이번 시즌에는 타격 성적은 다소 하락했지만 투구에서 나아진 모습을 보이며 두 자릿수 승수와 두 자릿수 홈런 동시 달성을 눈앞에 두고 있다.
오타니에 비해 저지에게 낙관적인 분위기가 흐르고 있는 이유는 '신선함'이다. 투타 양면에서 뛰어난 모습을 보이는 오타니의 활약은 이미 지난해 한 차례 선보인 바 있다. 반면 저지가 60홈런을 달성한다면 약 20년 만의 대기록이 된다. 기록의 희귀성에서 저지가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있다. 다만 둘의 경쟁이 이뤄진다면 표심은 갈릴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와 같은 만장일치 MVP는 탄생하지 않을 전망이다.
팀 성적 또한 오타니보다 저지에게 유리한 지점이 될 수 있다. 양키스는 지구 우승 경쟁에서 앞서 나갔다. 오타니의 에인절스는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성적이다. 44승 59패 승률 0.427로 아메리칸리그 서부지구 5팀 중 4위를 기록 중이다. 지구 우승은 물론 와일드카드와도 멀어졌다.
▲역대 MLB 단일시즌 최다홈런 순위
순위 | 이름 | 시즌 | 홈런 |
1 | 배리 본즈 | 2001 | 73 |
2 | 마크 맥과이어 | 1998 | 70 |
3 | 새미 소사 | 1998 | 66 |
4 | 마크 맥과이어 | 1999 | 65 |
5 | 새미 소사 | 2001 | 64 |
6 | 새미 소사 | 1999 | 63 |
7 | 로저 메리스 | 1961 | 61 |
8 | 베이브 루스 | 1927 | 60 |
9 | 지안카를로 스탠튼 | 2017 | 59 |
9 | 베이브 루스 | 1921 | 59 |
?? | 애런 저지 | 2022 | 43 |
김상래 기자 scourge@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