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박근혜 정부 공안당국은 이들이 입국하기 전에 이들에게 남한 입국 사실을 언론에 공개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북한에 있는 여종업원들 가족의 신변안전을 고려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약속은 바로 깨졌다. 이들이 한국 땅을 밟자마자 통일부는 집단탈북 사실을 언론에 전광석화처럼 발표했다. 공교롭게 4·13 총선을 불과 일주일 목전에 둔 시점이었다. "총선에 영향을 미치려는 북풍 공작이 아니냐"는 의혹이 강하게 제기됐다.
그런데 지배인 허 씨는 한국에 온 지 3년 지난 2019년 3월 갑자기 미국 망명길에 올랐다. 함께 탈북 했던 여종업원 12명 가운데 한 명인 김 아무개 씨(개명·32)가 허 씨를 폭행 등 혐의로 고소한 사건에 대한 재판이 진행되고 있을 때였다. 미국에 체류하고 있는 허 씨는 지난 7월 일요신문과 전화통화에서 "문재인 정부 시절 신변에 위협을 느꼈기 때문에 망명할 수밖에 없었다"고 해명했다.
'망명가' 허 씨는 2020년 5월 미국 현지에서 일부 한국 언론매체에 윤미향 의원과 그의 남편 김삼석 수원시민신문 대표, 장경욱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 변호사 등이 "북한을 찬양했다"며 "여종업원 세 명에게 재월북을 회유했고 후원금 명목으로 2018년 10월부터 2019년 3월까지 매달 30만~50만 원씩 금품을 제공했다"면서 관련 사진 등을 제보했다. 일본군성노예제 문제해결을 위한 정의기억연대(정의연) 이사장 출신인 윤 의원은 당시 더불어민주당 소속 비례대표 당선인이었다. 현재는 무소속 의원이다.
허 씨의 제보를 토대로 한국 언론매체들은 '윤미향 부부, 위안부 쉼터서 탈북자 회유' '친북인사, 남(南)서 통일운동 함께 하면 수령님이 허 동무 사랑'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들과 민변, 집단 탈북 북한식당 여종업원 북송추진에 관여했다는 증거 나와' '윤미향 남편 김삼석 씨, 위안부쉼터 한 달 뒤 강원도 오두막서 류경식당 종업원들에게 2차 월북 회유' 등 제목으로 기사를 내보냈다.
이 같은 언론보도가 나오자 시민단체 활빈단과 자유대한호국단, 시민 한 명 등이 2020년 5월 서울중앙지검에 윤 의원 부부와 장 변호사 세 명을 국가보안법(국보법) 등 위반 혐의로 고발했다. 고발인들은 "윤 의원 등이 국보법 6조와 형법 31조를 위반했다"고 주장했다.
국보법 6조(잠입·탈출)에 따르면 국가의 존립·안전이나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를 위태롭게 한다는 점을 알면서 반국가단체의 지배하에 있는 지역으로부터 잠입하거나 그 지역으로 탈출한 자는 1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형법 31조(교사범)에 따르면 타인을 교사해 죄를 범하게 한 자는 죄를 실행한 자와 동일한 형으로 처벌한다. 또한 교사를 받은 자가 범죄 실행을 승낙하고 실행의 착수에 이르지 아니한 때에는 교사자와 피교사자를 음모 또는 예비에 준해 처벌한다. 이와 함께 교사를 받은 자가 범죄 실행을 승낙하지 아니한 때에도 교사자에 대해선 전항과 같다.
고발인들은 "윤 의원 부부 등이 허 씨와 여종업원들에게 재입북을 권유한 것은 잠입·탈출을 교사한 엄연한 불법 행위"라고 강조했다.
경찰은 2년 동안 고발인들과 참고인 등을 상대로 조사를 진행했다. 그리고 지난 6월엔 윤 의원을, 7월엔 윤 의원의 남편 김삼석 씨를 비공개로 소환해 처음 조사한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 수사 과정을 비교적 잘 알고 있는 시민단체 인사는 최근 "윤미향 의원과 김삼석 씨에 대한 경찰 조사는 6월과 7월에 각각 끝났다. 하지만 장경욱 변호사에 대한 조사는 아직 이뤄지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 사건과 관련해 미국에 체류하고 있는 허강일 씨는 지난해 경찰에 서면으로 참고인 진술조서를 제출한 바 있다. 일요신문은 허 씨를 통해 이 진술조서를 단독 입수했다. 참고인 진술조서는 A4용지로 210쪽 분량. 일요신문은 이 진술조서 내용 가운데 피고발인 윤 의원 부부와 장경욱 변호사 등과 관련된 부분만 일부 발췌했다.
허강일 씨는 경찰에 제출한 서면 진술조서에서 "민변엔 장경욱을 비롯해 북한에 우호적인 사람이 있다"며 "장경욱과 대화할 때 북한에 대해서 (제가) 부정적 소리만 하면 그는 다 거짓이라며 오히려 북한을 두둔하고 남한을 비방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그는(장 변호사는) '내가 대학생일 때 북한의 주체사상 등 많은 서적을 보았고 감명 받았다. 오히려 한국이 민주주의를 위해 투쟁하는 사람들을 잡아가고 때리고 죽였다'면서 '북에선 그렇게 하지 않는다'고 해서 제가 '그럼 왜 한국에만 유독 탈북자가 많이 오냐. 그렇게 북이 좋으면 당신이 가라'고 했더니 장경욱이 기분이 좋지 않아 하였다. 장경욱이 저보고 '(중국 류경식당) 종업원들과 부모들이 헤어져 있는다는 것이 말이 안 된다. 지배인(허강일)이 그래도 종업원들을 아낀다면 이렇게 하면 안 된다'고 하면서 '(한국 정부에서) 손해배상 받고 그 돈으로 북에 가서 잘 살면 되지 않느냐'고 말했다"고 진술했다. 허 씨는 장 변호사가 이 같은 발언을 했던 때와 장소를 구체적으로 적시하진 않았다.
허 씨에 따르면 장 변호사의 회유는 한 번에 그치지 않았다. 2018년 5월 장 변호사는 허 씨에게 전화해 "북한에 가족들이 기다리는데 종업원들이 북한으로 가야 되지 않느냐"며 "북한과 이메일로 우리 문제를 논의하고 있으며 북한에서 나한테 자꾸 문의가 온다"는 말도 했다고 한다.
허 씨는 "장 변호사가 탈북 여종업원 3명에게 2018년 11월 17일 서울 마포구 연남동 정의기억연대 마포쉼터에서도 재월북을 회유했다"고 진술했다. 허 씨에 따르면 장 변호사는 "어머니들이 기다리는데 겁먹지 말고 집으로 가야 하지 않겠느냐"고 하면서 "나 같으면 엄마가 보고파서라도 가겠다"고 말했다.
허 씨는 "윤미향 의원은 당시 '위안부 할머니들을 만나 보라'며 '너희들처럼 평양 출신도 있다. 할머니들 만나면 어머니 생각이 날 것이다'고 말했다"고 경찰에 진술했다. 진술조서에 따르면 '민변 소속된 또 다른 변호사'는 "지배인(허강일)이 종업원들과 다시 북으로 돌아가면 지배인은 현재 직책보다 더 높이 승진할 것이다. 북에서 연락이 왔는데 처벌을 안 할 테니 그 말을 지배인에게 전달해달라고 했다"며 허 씨를 회유했다.
허 씨 조서에 따르면 윤미향 의원은 "예전에 평양에 여러 번 가보니 북이 좋더라. 한국보다 치안도 좋고 사람들이 친절했다"며 "북에 다시 가보고 싶다"고 말했다. 윤 의원은 "후원금을 더 많이 받으려면 위안부 할머니들과 같이 광화문 수요집회에 나가자. 수요집회에 가서 데모하면 후원금이 많이 들어온다"고도 했다.
윤 의원은 또 2018년 11월 서울 마포구 연남동에 있는 한 갈비식당에서 허 씨와 탈북 여종업원에게 "어머니가 기다리는데 북한으로 가지 않겠느냐. 돌아가면 조국에서 다 용서해준다고 한다"고 말했다.
허 씨는 탈북 여종업원들과 정의연을 방문한 이유에 대해 "후원금을 받기 위해서였다"고 밝혔다. 장경욱 변호사는 허 씨에게 "(여종업원들이) 정의연에서 후원을 받는데 사람의 도리로서 만나야 되지 않느냐"고 말했다.
허 씨에 따르면 윤 의원의 남편 김삼석 씨는 2018년 12월 경기도 안성시 금광면에 있는 정의연 안성쉼터에서 허 씨와 탈북 여종업원 세 명에게 "보수정권 때문에 억울한 옥살이를 했다. 박근혜 정부가 동무들을 총선에 이용했다"며 북한 김일성의 노래 '수령님을 따라 천만리 당을 따라 천만리' 혁명가요와 북한 애국가를 불렀다. 김 씨는 "북이 좋은데 남쪽에 왜 왔는지 이해가 안 된다"며 "어머니들이 너희를 기다리는데 자식 된 도리로서 이러면 안 된다"고 타이르기도 했다.
김삼석 씨와 허 씨, 여종업원 세 명 등은 2018년 12월 22일 강원도 삼척시 도계읍 오두막집에 함께 간 적이 있다. 허 씨에 따르면 당시 김 씨가 북한 노래 '심장에 남는 사람'을 불렀다. 허 씨는 이 노래에 대해 "한국 분들이 해외 북한식당에 오면 자주 부르는 노래인데 북한에선 장군님을 심장에 새기라는 혁명가요로 불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허 씨는 "이 노래를 부른 후 김삼석이 갑자기 장군님이라고 말하면서 '북한 노래들은 심금을 울린다, 북에 있는 장군님만 한 위인이 없다고 말했다"고 주장했다. 또 김 씨는 "한국 애국가가 북한 애국가를 모방했다"며 "사상이나 정신력은 북이 남을 앞선다"고 말했다.
허 씨는 당시 여종업원들이 "북한을 찬양하는 거 보니까 무섭다. 집에 빨리 가자"고 했고 자신도 그 자리에 있기가 무서워 다음 날(12월 23일) 새벽 2시에 차량에 종업원들을 태워 서울로 돌아왔다고 경찰에 진술했다.
일요신문은 이 같은 허강일 씨의 경찰 진술조서 내용과 경찰 소환조사 등에 대해 윤 의원 부부의 입장을 듣고자 휴대전화, 국회의원실, 수원시민신문 등을 통해 지난 3일부터 여러 차례 연락을 시도했다. 하지만 5일 오전까지 아무런 답변도 받지 못했다.
장경욱 변호사는 지난 4일 일요신문과 통화에서 "과거 민변 입장문과 언론 인터뷰 등을 통해 입장을 밝혔다"고만 말했다. 경찰 조사를 받았는지 여부에 대해선 답하지 않았다.
민변은 2020년 5월 22일 조선일보 기사 '윤미향 부부, 위안부 쉼터서 탈북자 월북 회유'에 대한 입장문에서 "안성쉼터에 민변 소속 변호사들이 동행한 사실이 전혀 없고, 재월북을 권유하거나 강요한 사실도 없다"고 밝혔다. 또 "사건발생 직후부터 진상을 밝히고자 활동해온 민변 변호사들이, 당사자들의 의사와 무관하게 재월북을 권유하거나 강요할 이유는 없다"고 강조했다.
북한식당 지배인 허강일은?
북한식당 지배인이었던 허강일 씨(41)는 평양에서 태어나 평양외국어대학 중국어학과를 2003년 8월 졸업한 엘리트다. 정보당국에 따르면 그는 북한 외화벌이 기관인 중앙당 39호실 은하무역총회사에서 의류임가공 책임자로 일하다 2013년 8월 조선백설총무역회사 소속으로 중국 지린성(吉林省) 옌지(延吉)에 있는 북한식당 '진달래식당' 지배인(사실상 사장)으로 파견됐다. 2015년 10월부턴 중국 저장성(浙江省) 닝보(寧波)에 있는 '류경식당'에서 지배인으로 일했다. 류경식당 지배인으로 일하면서 우리나라 국가정보원의 정보원으로 암약하기도 했다. 하지만 북한 국가보위부에 발각될 뻔한 절체절명 위기가 닥쳤다.
이에 2016년 4월 5일 오후 3시경 여종업원 14명과 함께 택시 5대에 나눠 타고 류경식당을 떠나 중국 상하이공항으로 이동, 4월 6일 새벽 1시 비행기를 타고 말레이시아 주재 한국대사관으로 갔다. 이동 중 여종업원 두 명은 북한 당국에 체포돼 북한으로 압송됐다. 류경식당 여종업원 12명과 지배인 허강일 씨는 2016년 4월 7일 인천공항으로 입국했다. 허강일 씨는 "여종업원들 모두 자진해서 한국으로 왔으며 국정원 조사에서도 자진해서 탈북했다고 진술서를 썼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류경식당 여종업원 12명 가운데 한 명인 김 아무개 씨(개명·32)가 2018년 10월 허 씨를 폭행·감금·상해 등의 혐의로 고소했다. 폭행과 감금 혐의는 중국에서, 상해 혐의는 한국에서 각각 벌어진 일이다. 허 씨는 여섯 번이나 재판부 기피 신청을 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모두 기각했다.
허 씨는 일요신문과 전화통화에서 "믿을 수 없는 문재인 정부 법원이 편파적으로 재판을 진행했다. 대한민국에서 재판 받는 게 아니라 북한 최고재판소에서 재판받는 느낌이었다"며 "북한에서도 감옥에 안 갔는데 왜 한국에서 감옥엘 가야 하느냐. 한국 정부를 위해 (중국에서 국정원) 스파이로 2년 일했는데 신분이 노출돼 한국에 왔다. 문재인 정부가 훈장은 못 줄망정 나를 범죄자로 몰아갔다"고 강한 불만을 표출했다.
허 씨는 "나를 고소한 김 씨는 일하기 싫어하고 거짓말을 잘했으며 동료들과 자주 싸움을 해 왕따 당했다"고 주장했다. 일요신문은 이에 대한 김 씨의 견해를 듣고자 전화를 걸었으나 "기자하고 말할 일이 없다"며 전화를 끊었다.
검찰은 2018년 11월 허 씨를 기소해 재판에 넘겼다. 재판이 진행되던 2019년 3월 허 씨는 미국 정부에 망명 신청해 그해 9월 허가를 받았다. 허 씨는 "신변안전 문제로 미국에 정치적 망명을 한 것"이라며 "고의로 재판에 출석하지 않거나 수사기관에 협조하지 않으려고 미국에 온 것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그는 현재 미국 시카고에 체류하며 유튜브 방송 '북한을 바꾸다(Change North Korea)'를 진행하고 있다. 구독자는 5만 6000여 명.
2년 6개월간 재판 끝에 법원은 지난해 6월 허 씨에게 징역 1년 실형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우리 헌법 제3조에서 대한민국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으므로 북한 지역도 대한민국 영토가 되고 북한주민 역시 대한민국 국민에 해당한다"며 "형법 제3조에 따라 북한이탈주민인 피고인(허 씨)에게도 외국인 중국에서의 범행에 관해 대한민국 법원에 재판권이 있다"고 판시했다. 허 씨가 미국에 망명한 상황에서 진행된 재판 결과였다.
허 씨는 현재 미국에 체류하고 있다. 때문에 그의 형 시효는 정지된 상태다. 만약 그가 한국에 들어온다면 우선 징역살이부터 해야 하는 처지다.
김지영 기자 young@ilyo.co.kr
남경식 기자 ngs@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