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나 유럽 정당들에서 비대위를 구성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 이유는 이렇게 정리될 수 있다. 미국 정당은 원내 정당 시스템이다. 원내 정당 시스템이란, 의원들 개개인의 자율성과 독립성을 최대한 보장하는 체제다. 의원들의 자율성을 최대한 보장하기 때문에 중앙당의 역할이 매우 제한적이다. 중앙당의 역할이 미미하면 비대위로 갈 이유도 없다.
유럽의 경우, 대부분 국가들의 정당 체제는 정책 정당 체제다. 이런 경우 당론도 존재하고 중앙당의 역할도 상당히 중요하다. 그런데도 유럽에서 비대위가 등장하지 않는 이유는 내각제라는 권력구조 때문이다. 즉 내각제 아래서는 특정 권력 집단이 여론의 외면을 받게 되면 당내에서 다시 당대표를 선출하거나 선거를 다시 해서 새로운 내각을 꾸리게 된다. 비대위로까지 가는 경우가 거의 없다. 한마디로 내각제는 여론에 대한 반응성이 대통령제보다 뛰어나기 때문에 굳이 비대위를 출범시킬 이유가 없다는 말이다.
그런데 우리는 다르다. 우리는 미국과 같은 대통령제 국가이면서도 정당 체제는 유럽식 정책 정당에 가깝다. 상황이 이러니 외국의 사례에서 찾기 힘든 비대위 체제가 자주 등장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비대위가 등장하는 시기는 당내 주류가 바뀌거나 새로운 주류가 형성될 때, 혹은 지지율이 바닥을 쳐 쇄신한다는 모습을 보여줄 필요성이 대두될 때라고 할 수 있다.
이번 경우를 보면 거대 양당의 비대위는 주류 변화 혹은 새로운 주류의 등장과 관련이 깊다. 우선 더불어민주당을 보면 문재인 정권 이전부터 당내 주류였던 ‘친문’이, 문재인 전 대통령의 퇴장을 계기로 구심점을 잃어 결집력을 상실했다. 이에 따라 당내 영향력이 감소했고, 이를 계기로 주류 교체가 일어날 수 있는 상황에서 비대위가 등장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국민의힘의 경우도 비슷하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 이후, 국민의힘에는 이렇다 할 주류가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윤석열 대통령이 대선 승리를 계기로 ‘친윤’이라는 이름의 새로운 주류가 형성되기 시작했다. 현재 비대위는 바로 이런 상황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정의당의 경우는 다르다. 정의당은 지지율이 바닥을 치고 있다. 그 이유는 선명한 이념을 표방하는 정당이 과거 ‘여당의 2중대’라는 소리를 들었을 정도로 권력 친화적이었다는 사실과 무관하지 않다. 한마디로 전략과 전술 모두에서 실패해 대대적인 수술이 필요한 시점에서 등장한 비대위라고 할 수 있다.
비대위 등장 원인은 비대위 성격을 결정짓는다. 예를 들어 쇄신이 필요한 정의당과 같은 경우는 비대위가 혁신적 성격을 띠어야 한다. 그래야만 근본적으로 당의 노선과 전략을 수정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국민의힘이나 민주당의 비대위는 상황 관리의 성격을 가질 수밖에 없다. 주류의 교체 혹은 신주류의 등장 시기는 어수선할 수밖에 없고, 이런 어수선함을 관리하는 일이 비대위의 가장 중요한 임무가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 비대위의 성격과 등장 원인이 이렇듯 다를지라도 공통점은 있다. 비대위란 임시적 체제라는 점이다. 즉 비대위는 안정적인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안정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과도기적 존재라는 것이다. 비대위가 과도기적 존재라고 하더라도, 비대위의 안정성에는 차이가 있다.
비대위 존속 기간과 존재 목적의 예측 가능성에 따라 비대위의 안정성이 결정된다고 할 수 있다. 그런 차원에서 보자면 민주당의 비대위는 다른 정당의 비대위에 비해 예측 가능성이 가장 높다. 이제 얼마 남지 않은 전당대회에서 새로운 지도체제가 등장하면 사라지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국민의힘이나 정의당의 비대위는 언제까지 지속될지 알 수 없다. 그만큼 불안하다는 것이다. 불안이 지속되면 정권에게 불리한 상황이 될 수밖에 없음을 여당은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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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율 명지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