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에 따르면 국민의힘 상임전국위 3분의 2가 비상상황에 대한 유권해석에 찬성했다. 위원 54명 가운데 40명이 참석했고, 29명이 비상상황 해석에 찬성했다는 것이다. 윤석열 정부의 지지율 하락과 권성동 원내대표의 텔레그램 메시지 유출 파동, 최고위원의 줄사퇴 등으로 당 안팎의 위기 의식이 담긴 것으로 풀이된다. 당 내홍을 수습해야 한다는 지도부와 친윤계의 주장에 힘을 실어준 셈이다.
이를 위해 권성동 원내대표는 비대위 체제 전환을 독려하기도 했다. 권 원내대표는 상임전국위 모두발언에서 “의원총회에서 99.9% 찬성으로 현재 상황을 비상상황으로 이미 의결한 바 있다. 최고위에서도 4명 찬성으로 의총과 똑같은 결론을 내려 상임전국위 소집을 요청한 것”이라며 “의총과 최고위 의결 내용을 참작해 지혜와 혜안, 집단지성을 모아주길 부탁한다”고 전했다.
이날 결정으로 당은 오는 9일 전국위에서 권 원내대표에게 비대위원장 임명 권한을 주는 내용의 당헌 개정에 착수한다. 당대표 직무대행직을 유지하고 있는 권 원내대표가 비대위원장 임명이 가능하도록 규정을 바꾸는 것이 골자다. 현재 당헌 96조에 따르면 당대표와 권한대행만 비대위원장을 임명할 수 있다. 임명 권한에 ‘당 대표 직무대행’이 추가되면, 이를 근거로 권 원내대표가 새 비대위원장을 임명해, 비대위 전환을 완료한다는 계획이다.
비대위가 출범하면 이 대표는 당대표 복귀가 불가능해진다. 당초 비대위 출범에 부정적이었던 서병수 전국위원장은 비대위 찬성 입장으로 선회하며 “당헌·당규상 비대위가 구성되면 최고위, 지도부가 해산한다는 조항이 있다. 이것은 당대표 ‘사고’ 유무와 상관이 없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앞서 당내에서는 조기 전당대회를 전제로 한 2개월짜리 단기 비대위와 이 대표 복귀를 전제로 한 6개월 비대위 의견이 제기된 바 있다. 이 대표의 당대표 복귀는 내년 1월이다. 만약 비대위 활동 기간을 2개월로 한다면, 10월 초 전당대회가 열려 이 대표가 복귀할 수 없다.
장외 여론전을 벌이고 있는 이 대표는 최근 윤석열 대통령 등 친윤계 인사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내고 있다. 이 대표는 본인의 SNS(소셜미디어)에 ‘한심하다’ ‘바보들의 합창’ 등으로 날 선 어휘를 쓰면서 물러서지 않고 있는 상황. 비대위 전환 추진 움직임과 관련해선 “(원내대표와 최고위원이) 정작 사퇴하지 않았는데 ‘어쨌든’ 비상이라는 코미디를 목격할 것”이라고 직격하기도 했다. 상임전국위 회의 직후에는 “이제 사람들 일정 맞춰서 과반 소집해서 과반 의결하는 것도 귀찮은지 ARS(자동응답시스템) 전국위로 비대위를 출범시키려 한다”며 비대위 전환 방식에 반발했다.
다만 이대로 이 대표의 반발로 당 내홍이 계속된다면 그의 정치적 고립 상태는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최근 이 대표를 옹호해온 인사들이 돌아서는 모습이 포착되고 있다. 친이준석계 정미경 국민의힘 최고위원은 5일 YTN라디오 ‘뉴스킹 박지훈입니다’에 출연해 “이 대표는 대장이기에 대장의 길을 가기를 원한다”며 “그 정도 됐으면 우리 가족들이 틀린 길을 가더라도 혼란을 더 크게 만들 수는 없다. 이쯤에서 이 대표도 손을 놓을 때가 되지 않았느냐”고 충고했다.
설상미 기자 sangmi@ilyo.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