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진주에서 살인사건이 발생했다. 40대 남성 A 씨가 함께 살던 여성을 흉기로 찔러 살해한 것. 동거를 시작한 지 열흘만의 일이었다. SNS를 통해 만난 두 사람은 전입신고를 위해 함께 주민센터에 방문했을 정도로 사이가 좋았다고 한다.
하지만 6월 18일 밤 A 씨는 여성을 살해했고 약 한 시간 뒤 정장으로 옷을 갈아입고 112로 전화를 걸어 자수했다. 스스로 밝힌 범행동기는 황당했다. 여성이 사탄으로 보였고 자신을 죽이려 했다는 것.
범인 A 씨는 조현병 환자였다. 그의 이해하기 어려운 범행동기는 조현병 증상 중 하나인 망상이었다. 범행 2주 전부터 약물치료를 중단한 A 씨는 환청과 망상 증세가 심해지고 있었다. 치료를 중단한 사이 병식(현재 자신이 병에 걸려있다는 자각)은 사라졌고, A 와 지인들은 언제 발생할지 모르는 위험한 상황에 노출되었던 것이다.
A 씨와 비슷한 사건은 3년 전에도 있었다. 무려 22명의 사상자를 내 전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이른바 '안인득 사건'이다. 사건 발생 전 안인득의 형은 이상행동을 보이는 안인득을 입원시키기 위해 애썼지만 병식이 없는 안인득을 병원으로 데려가는 것은 불가능했다고 한다.
안인득과 A 씨의 비극을 막을 방법은 없었던 걸까. 2016년 정신건강복지법 개정으로 정신 질환자들의 '비자의 입원' 요건이 강화됐다. 강제 입원의 악용과 환자들의 인권 침해를 막기 위한 조치였다. 그러나 병원이 아닌 사회 속에서 환자를 도울 시스템이 충분히 준비되지 못한 상황에서 예기치 못한 부작용이 발생했다.
보호 입원 요건이 까다로워지며 치료가 필요한 급성기 환자의 입원도 어려워진 것이다. 최근 진주의 살인 사건과 안인득 사건도 그 사각지대에서 발생했다. 조현병 환자들이 급박한 상황에 처했을 때 112에 신고하면 경찰에 의한 응급입원 절차를 진행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절차 역시 현실에 적용하기에는 한계가 있는 상황이다.
한편 조현병을 앓고 있는 딸이 치료받을 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제보 전화를 받았다. 딸은 어머니조차 알아보지 못하고 정신과 치료는 완강히 거부하고 있었다. 집 마당에는 딸이 깨뜨린 날카로운 유리 조각들이 널려있다. 딸이 언제 난동을 부릴까 두려운 70대 노모는 방 안에서만 숨죽인 채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 상황. 딸을 병원으로 데려갈 방법은 없는 걸까.
조현병의 평생 유병률은 1%. 국가와 인종을 막론하고 100명 중 한 명꼴로 일생에 한 번은 발병할 수 있는 흔한 질병이다. 국내에도 약 50만 명의 조현병 환자가 있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현재 입원하거나 외래 진료를 받은 환자는 18만여 명에 불과하다. 보이지 않는 사각지대에서 방치되고 있는 조현병 환자가 더 있을 수도 있다는 뜻이다.
조현병은 치료만 잘 받으면 관리가 가능하고 정상적인 사회생활도 할 수 있다. 가두고 격리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기에 법 개정을 통해 강제 입원을 제한하고 있지만 정작 사회 속에서 이들을 치료하고 지원할 시스템은 부족하다. 조현병 환자들이 우리 사회 구성원으로 건강하고 안전하게 살아갈 방법은 무엇인지 알아본다.
이민재 기자 ilyoon@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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