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라서 씨수말 순위 1위가 ‘진정한 챔피언’이라고 단언하긴 어렵다. 액면은 1위지만, 내용은 그렇지 못한 경우가 종종 있다. 예를 들어 ‘머스킷맨’ 같은 경우 순위는 3위지만, 승률(20.8%)과 복승률(36.3%)에서 압도적 1위를 기록 중이다. 출전횟수당 평균상금(1861만 원)과 출전 두당 평균상금(6948만 원)에서도 1위 올드패션드(801만 원, 3268만 원)를 두 배 이상 앞서고 있다.
그런데도 1위에 오르지 못한 이유는 수적 열세 때문이다. 경주에 출전한 자마 숫자가 45두에 불과해 올드패션드(103두)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고, 출전횟수도 168 대 420으로 너무 적었다. 액면상 순위는 3위지만 내용은 누가 봐도 1위다.
이번 회에서는 현재 씨수말 순위 10위 내의 마필 중 1군마를 가장 많이 배출한 말은 어떤 말인지 톱5를 알아본다. ‘1군마’라는 것은 ‘성공한 경주마’를 뜻한다. 신마를 데뷔시킬 때 마주나 조교사의 로망은 1군까지 진출시키는 것이다. 그래야 상금도 많이 벌고, 대상경주 같은 큰 대회에 도전할 기회도 많아지기 때문이다. 단순히 자마들이 벌어들인 상금으로 씨수말 순위를 매기는 것보다는 좀 더 합리적인 접근방법이라고 본다.
#1위 메니피(57두)
1군마를 가장 많이 배출한 씨수말은 메니피다. 2019년 폐사되었음에도 아직까지 씨수말 순위 4위를 기록할 정도로 그야말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최고의 씨수말이다. 특히 2012년부터 2017년까지 무려 6년 연속 씨수말 챔피언에 오르며 ‘씨수말=메니피’라는 공식을 만들었을 정도다. 약 12년간 씨수말로 활약하며 562두가 경주마로 데뷔, 그 중에서 무려 10%가 넘는 57두가 1군까지 올라갔다. 또한 대상경주 우승마도 26두나 배출했고, 총 54개의 대상경주 트로피를 들어 올려 이 부문에서도 압도적 1위에 올랐다.
가장 뛰어난 활약을 펼친 대표 자마는 파워블레이드와 경부대로다. 파워블레이드는 3세마 시절 KRA마일, 코리안더비, 농림부장관배를 차례로 석권하며 삼관 경주를 평정한 당대 최고의 경주마였다. 경부대로는 2014년 대통령배와 그랑프리를 연이어 석권한 최초의 국산마로 한 시대를 풍미한 명마 중의 명마였다. 이 외에도 우승터치, 퀸즈블레이드, 광교비상, 스피디퍼스트 등 이름만 들어도 클래스를 느낄 수 있는 대형마들이 즐비하다. 전문가들은 “메니피 같은 씨수말은 당분간 나오기 어려울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그만큼 역사에 남을 만한 뛰어난 활약을 했다.
#2위 피스룰즈(19두)
두 번째로 1군마를 많이 배출한 씨수말은 피스룰즈다. 현재 씨수말 순위 10위를 기록 중이며, 2010년부터 12년간 씨수말로 활약하며 331두가 경주마로 데뷔, 그중에서 5.7%에 해당하는 19두가 1군에 진출했다. 대상경주 우승 마필은 3두에 불과해 1위 메니피와는 현격한 수준 차이를 드러냈다. 또한 2018년까지만 해도 씨수말 순위 5위 안에 들며 상위권을 유지했으나, 최근 들어 뚜렷한 하향세를 보이며 간신히 10위를 유지하고 있다. 현재 22세라는 고령의 나이와 최근 분위기로 볼 때 곧 10위 밖으로 밀려날 가능성이 높다.
대표적인 자마는 부산일보배 우승마 석세스스토리와 경상남도지사배를 석권한 헤바를 꼽을 수 있다. 그러나 앞서 소개한 메니피 자마들과는 상당한 거리감이 있다. 두 마리 모두 뛰어난 말임에는 틀림없지만, 대형마로 분류하기는 어렵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3위 카우보이칼(12두)
3위는 12두를 진출시킨 카우보이칼이다. 올 8월 현재 씨수말 순위 2위에 오르며 뛰어난 활약을 펼치고 있는 주류 혈통이다. 2016년 12월 챌린저팜에서 개별 수입으로 국내에 들여와 2018년부터 자마들을 생산했다. 현재 대부분의 자마들이 3, 4세로 1군에 진출한 마필은 없다. 스팟플래터, 남산시대 2두가 가장 먼저 2군에 올라온 선두주자들이다. 이외에 3군과 4군에 상당히 많은 마필들이 포진하며 앞으로의 전망을 밝게 하고 있다. 1군에 진출한 자마 12두는 모두 외산마와 포입마로, 카우보이칼이 국내에 도입되기 전에 들여온 마필이다. 따라서 카우보이칼만큼은 예외로 보는 게 좋을 듯하다.
#4위 컬러즈플라잉(10두)
4위는 10두를 진출시킨 컬러즈플라잉이다. 2010년 개별 수입으로 국내에 들여와 약 11년간 씨수말로 활약하며 총 363두가 경주마로 데뷔, 그 중에서 2.8%인 10두가 1군에 진출했다. 초반에는 상당한 바람을 일으켰다. 돌아온현표가 브리더스컵에서 우승하며 컬러즈플라잉에 대한 관심이 급증했고, 이어 라팔이 KRA컵 마일에서 우승하며 정점을 찍었다.
그러나 이후 이렇다 할 대형마를 배출하지 못했다. 터치플라잉, 배다리보배, 영롱을 최근에는 디터미네이션과 흥행질주를 1군에 올렸지만 역시 대형마와는 거리가 멀었다. 매년 씨수말 순위에서 꾸준하게 10위권 내에 들긴 했지만, 특출난 대형마를 배출하지 못한 것이 특징이자 단점으로 지적된다.
#5위 올드패션드(8두)
5위는 현재 씨수말 순위에서 1위를 달리고 있는 올드패션드로 8두를 1군에 진출시켰다. 앞서 소개한 카우보이칼과 마찬가지로 2016년 2월 챌린저팜에서 개별 수입으로 국내에 도입, 2017년부터 자마들을 생산했다. 포입마와 외산마를 포함해 지금까지 203두가 경주마로 데뷔, 그 중에서 4%에 해당하는 8두가 1군에 올라갔다.
가장 좋은 활약을 펼친 대표 자마는 캡틴양키(수)다. 현재 레이팅 80으로 1점이 부족해 2군에 속해있지만, 사실상 올드패션드 ‘최고의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4월 KRA컵 마일 우승, 5월 코리안더비 3위, 6월 농림부장관배를 우승하며 최우수 국내산 3세마에 선정되었다. 체격 조건이 매우 좋은 데다 유연한 주행 자세와 큰 폐활량을 타고났다는 점에서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는 마필이다.
태풍의 씨수말 '머스킷맨' 자마들 수준 장난 아니네
씨수말 중에서 순위에 들지는 못했지만 눈에 띄는 마필은 단연 머스킷맨이다. 1군에 진출한 자마가 4두에 불과해 톱5에 오르지 못했지만 내용은 엄청나다. 메니피 다음으로 실질적인 2위로 봐도 무방할 정도다. 2016년 라온목장에서 개별 수입으로 도입된 후 2017년부터 자마들을 생산했는데, 자마들의 수준이 소위 장난이 아니다. 대표마는 위너스맨과 라온퍼스트로 대한민국 최고 수준으로 보면 틀림없다.
위너스맨은 최근 세 번의 스테이어 시리즈에서 파죽의 3연승을 거두며 장거리 최강자로 등극했다. 라온퍼스트는 직전 경주에서 어이없는 늦발주로 무너지긴 했지만, 최근 네 번의 암말 대상경주를 모조리 석권하며 암말 계에서는 적수가 없음을 입증했다. 이 외에도 라온탑맨, 라온더스퍼트, 라온핑크, 하늘울림 등 상당히 많은 기대주들이 대거 포진하고 있어 앞으로의 전망도 매우 밝다.
1군에 진출한 자마가 4두밖에 안 되는 이유는 올드패션드나 카우보이칼처럼 이전에 도입된 포입마나 외산마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 또한 씨수말로 활약한 기간이 매우 짧기 때문이기도 하다. 앞서 소개한 대로 내용 면에서는 단연 1등이다. 승률, 복승률, 상금 모든 면에서 씨수말 순위 1위 올드패션드를 크게 앞서고 있다는 점에서 앞으로 머스킷맨의 자마들은 지속적인 관심이 필요해 보인다. 머스킷맨에 관해서는 다음 기회에 집중적으로 분석해볼 예정이다.
참고로 씨수말 엑톤파크는 31두의 1군마를 배출하며 메니피에 이어 2위를 기록했으나, 현재 씨수말 순위 19위로 10위권 밖에 있어 순위에서 제외했다. 아직은 공식적으로 은퇴하지 않았지만, 최근에 데뷔한 자마 수가 급감했고, 우승마가 한 두도 없어 사실상 씨수말 생활은 종료된 것으로 판단된다.
이병주 경마전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