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습 없이 법 만들면 규제 일변도 돼 시장 붕괴…폰지사기? 탈중앙화 토큰 이코노미는 미래의 한 방향”
윤종수 법무법인 광장 변호사이자 사단법인 C.O.D.E(코드) 이사장의 말이다. 윤종수 변호사는 가상자산, 테크놀러지에 대한 이해가 높다고 정평이 났다. 그는 1993년부터 판사로 재직하면서 2005년부터 비영리단체 크리에이티브커먼즈코리아(CCKorea) 대표로 활동한 바 있다. 크리에이티브커먼즈는 저작권이 더 손쉽게 공유되고 이를 바탕으로 새로운 창작 활동이 이뤄질 수 있도록 노력하는 단체다.
사단법인 코드를 출범시킨 윤종수 변호사는 가상자산 시장에 관심이 높다. ‘유승준 변호사’로도 알려져 있지만 ‘본업’은 따로 있다. 윤 변호사는 IT, 테크놀러지에 대한 관심과 소송 경험을 바탕으로 가상자산 시장 자문과 소송을 대리하기도 했고, 국회에서 출범한 가상자산 업권법 입법 TF(태스크포스) 위원을 맡고 있기도 하다. 최근 국회에서는 루나 사태 이후 멈춰 있던 가상자산 시장 업권법 제정에 속도를 내고 있다. 윤 변호사에게 국내 가상자산 관련 입법 상황과 발전 방향에 대한 의견을 물어봤다. 다음은 일문일답.
―가상자산 시장 관심은 어떻게 생겼나.
“2013년 기술 관련 스터디 모임을 하면서 국내 최초 가상자산 거래소 코빗과 비트코인을 알게 됐다. 비트코인, 블록체인 등 가상자산이 새로운 흐름의 하나라고 생각해 관심을 두게 됐다. 2017년 각종 가상자산업계에 자문, 소송 등 법률적인 서비스가 필요한 일이 생기면서 변호사로서도 업무를 하게 됐다.”
―현재 가상자산 시장 규제와 법은 어떤 상황인가.
“사실상 법이 없었다. 블록체인이나 가상자산 관련 법안이 없어 방치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전통적인 형사법으로 규제할 수 있는 부분도 있지만 업권법이라는 게 없어 특수성이 고려되지 않았다. 현재 가상자산 관련법은 2021년 3월 시행된 특정금융정보보호법(특금법)이 유일하다. 특금법은 업권법으로서 존재하는 게 아니라 자금세탁 방지에 관한 법이다. 한국에서 독자적으로 만든 게 아니라 자금세탁방지국제기구(FATF)라는 조직이 가이드라인을 만들면 가입국이 그에 따라 법을 만들기로 했기 때문에 제정됐다. 가상자산 산업에 대한 체계적인 업권법이 아니라 자금세탁 방지법의 일부로 포섭된 것이다.”
―특금법 시행 이후 가상자산 업권법을 만들기 위한 TF 등은 국회 차원에서 논의돼 왔다. 윤 변호사도 세미나, 토론회 등에 다양하게 참여했는데 어떤 느낌을 받았나.
“법으로 만들고 공식화하면 관할당국, 규제당국이 생기고 감독 절차와 준수 사항 등이 생기고 이에 따른 제재 규정이 만들어진다. 그런데 이런 공식화를 규제당국이 반가워하지 않는 분위기다. 책임 소재 문제가 있기 때문에 은행을 통한 간접 규제나 외환 거래를 막는 등 비공식적 규제를 더 선호했지만, 최근 루나 사태가 터지면서 상황이 달라져 입법에 속도를 높이고 있다. 그런데 이런 큰 사고가 터졌을 때 법을 만들면 강력한 규제의 칼을 꺼내는 쪽으로 법제화될 가능성이 높다. 규제당국의 공부가 많이 안 돼 있고, 해외에서도 법을 급하게 만들지 않는다. 세계적으로도 가상자산 업권법을 만든 곳이 없다. 조금씩 법제화 영역을 넓히는 중이다. 가상자산 시장은 계속 변화하고 있고 금융계에서도 낯선 시스템이다. 블록체인은 일종의 인터넷 사업이다. 규제의 틀 안에서 자라난 사업이 아니다. 기존 금융 규제처럼 하면 가상자산 역동성이 떨어져 국내 가상자산 산업 자체가 망가질 수도 있다.”
―블록체인 허브로 싱가포르가 꼽힌다. 미국도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글로벌 움직임은 어떤가.
“스위스, 싱가포르, 미국 등 금융 강국이 블록체인, 가상자산 시장에서도 빠르게 움직였다. 싱가포르는 기존 자본시장법을 적용해 빠르게 가상자산을 열어주면서 우리나라 기업을 포함해 수많은 블록체인 기업들이 이주하게 됐다. 미국의 경우 공무원이 공식 석상이나 세미나 자리에서 개인 의견이라는 전제 하에 자신의 의견을 표명한다. 이렇게 미국은 공무원이 적극적 소통 과정에서 필요한 부분은 가이드라인을 만든다. 이 가이드라인은 규제자와 피규제자가 정보를 교환하고 시장과 피드백을 주고받으며 수정해나간다. 그 과정이 끝나 ‘이제 됐다’ 싶으면 입법화한다. 우리나라는 그런 과정이 없다. 시장과 대화하는 과정이 없으니 발전할 기회도 없다. 사실 사업자들도 가이드라인이니 규제를 알고 최대한 맞추고 싶어 한다. 그런데 그 과정은 없고 비공식적으로 규제하다가 문제다 싶으면 형사적으로 강력하게 들어온다. 그런 과정이 국내 가상자산 기업을 국외로 떠나게 만든다.”
―국내에서도 블록체인 관련 기업을 육성하자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블록체인 관련 기업이 중요하다고 하지만, 또 블록체인과 코인 등 가상자산은 별개라고 한다. 그건 되게 우스운 건데 블록체인은 인프라이기 때문에 가상자산 없이 할 수 있는 건 인증 기록이나 극히 일부 데이터베이스 시스템밖에 없다. 사실 서버를 잘 만들면 책임지는 몇 사람이 관리하는 게 더 빠르다. 예외적으로 예를 들면 국제적 화물 운송 사업은 수많은 사업자와 여러 나라를 거치기 때문에 블록체인 위에 데이터베이스를 올리면 신뢰성을 갖게 된다. 그런데 이런 예외적 상황을 제외하면, 블록체인에서 가상자산을 빼면 유용한 케이스가 극히 줄어든다.”
―최근 루나 사태 등 가상자산 시장에서 여러 사건·사고가 터지면서 규제 목소리가 높은 분위기다.
“내버려 둘 순 없지만, 산업이나 혁신성을 저해할 수 있으니 조심스럽게 접근해야 한다는 의견이다. 꽉 짜인 금융 규제로 가면 혁신 여지가 남을 게 있나. 인터넷에서 혁신은 탈중앙화 때문이다. 누구나 인터넷 사이트를 만들 수 있고, 누구나 의견을 달거나 커뮤니티에 참여할 수 있고, 누구나 쇼핑몰을 만들어 비즈니스 할 수 있다. 누구나 비즈니스 할 수 있기 때문에 문제도 많다. 그렇다고 틀어 막는 방향으로만 가선 안 된다. 예를 들어 각자 블로그, 소셜미디어(SNS) 등을 통해 자유롭게 의견을 쓰는 시대에는 가짜뉴스 등 부작용도 클 수 있다. 이걸 막는 간단한 방식은 아무나 글을 못 쓰게 하는 거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부작용이 있더라도 아무나 쓰는 시대가 되면 파괴적 혁신이 일어나게 된다. 가짜뉴스 막기 위해 소셜미디어도 허가제를 한다고 하면 납득하겠나.”
―예를 든 소셜미디어와 달리 가상자산은 현재까지 큰 효용을 보여준 게 없다는 일각의 지적도 있다.
“비트코인으로부터 출발한 가상자산 시장의 가장 큰 이념인 탈중앙화는 아주 오래된 얘기다. 과거 P2P 네트워크로 불법 음악을 공유하던 소리바다 같은 게 일종의 탈중앙화 네트워크다. 아무도 서버를 만들지 않고 각자 연결해서 엮어 놓는 기술이 나오니 불법 복제 파일이나 공유하고 있었다. 그러자 중앙 통제형 거대 플랫폼 기업이 패권을 잡고 질서를 만들었다. 블록체인은 플랫폼 기업의 정반대 방향성이다. 아무도 책임지지 않아 문제가 있던 P2P를 한 단계 끌어올린 게 블록체인이다. 합의 알고리즘과 암호화 방식을 사용해 누가 책임지지 않아도 신뢰할 방법을 만들었다. 플랫폼 기업은 중앙에서 통제하고 유저가 참여하면 데이터도 플랫폼 기업이 갖게 된다. 그런 플랫폼 기업이 없어진 컴퓨터 시스템을 만들겠다는 게 블록체인이다. 일종의 P2P의 귀환이나 복수전인 셈이다. 이제 막 시작된 기술이기 때문에 당장 큰 효용을 느끼지 못할 수도 있다. 소셜미디어 서비스가 쏟아져 나왔는데 성공한 업체는 극소수다. 블록체인이 의미 없다고 벌써 단언하는 건 무리라는 생각이다.”
―가상자산 중 특히 코인은 폰지 사기 얘기도 많다.
“코인을 두고 흔히들 내재적 가치가 없다고 한다. 내재적 가치가 없다는 건 가치를 보장해주는 사람이 없다는 얘기다. 코인은 생태계를 활용하는 사람들의 수요로 가격을 유지한다. 블록체인 사업이 어려운 이유가 소셜미디어 사업이 어려운 이유와 같다고 보면 된다. 끝없이 사람이 들어와서 활동하고 다른 사람을 연결해줘야 한다. 여기서 폰지 사기라는 주장도 나온다. 하지만 사람이 많아져야 성공하는 비즈니스는 인터넷 비즈니스 대부분이 그렇다. 블록체인은 운영하는 주체도 없다. 대신 생태계에 기여한 기여자에게 토큰 이코노미를 통해 코인으로 보상을 준다. 생태계에 사람들이 몰려야 하니 각자 기여한 만큼 보상도 줘야 한다. 그 보상은 과하지도 적지도 않을 정도로 적절해야 한다. 이 과정이 매우 어렵지만, 중앙화된 플랫폼 시대와 별개로 진행되는 미래의 한 방향이라고 생각한다.”
―최근 법원에서 비트코인을 잘못 송금 받은 사람이 배임이나 횡령죄 모두 무죄를 받은 바 있다. 가상자산 시장에서는 불법을 처벌할 수 없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비트코인이 횡령이 안 된다는 건 죄가 안 된다는 게 아니다. 횡령죄라는 건 현금이나 물건을 대상으로 보관하고 있는 걸 빼돌렸을 때 해당하는 범죄다. 가상자산 들어왔는데 썼다고 횡령죄가 안 되는 이유는 재물이 아니기 때문이다. 처벌이 불가능한 거다. 예를 들어 게임 아이템을 가져갔다고 절도죄가 성립이 안 돼 정보통신망 침입죄 등을 적용하는 것과 비슷하다. 다른 죄로 처벌할 수 있는데 여러 이유로 해당 법으로는 처벌은 힘들다고 판단한 것이다.”
―현재 가상자산 시장 외에도 디지털, 정보기술 관련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특히 코드 이사장으로 활동하는데 코드는 어떤 일을 하는 단체인가.
“코드는 커먼즈, 개방, 다양성, 참여의 영어 앞 글자를 딴 말이다. 코드의 전신이기도 한 크리에이티브커먼즈는 인터넷 발전의 흐름을 주목한다. 유튜브, 블로그 등 인터넷 창작 활동이 활발해질수록 참고할 만한 사진, 음악, 영상 등을 모두 혼자 만들기 어려워진다. 이때 저작권 보호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창작자도 있다. 반면 저작권을 꼭 틀어 쥐고 있기보다는 내 이름을 거는 조건으로 영리 목적이 아니라면 수정 불가 조건 등을 걸고 2차 창작물을 만들어주길 원하는 창작자도 있다. 내 창작물을 활용한 2차 창작물이 흥행하면 자신의 이름도 알려질 수 있어 윈윈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저작권 공유 등을 통해 코드가 추구하는 가치는 뭔가.
“저작권을 풀 수 있는 건 오로지 저작권자만 가능하다. 크리에이티브커먼즈는 글, 사진, 동영상, 음악 등 각종 콘텐츠의 저작자들이 저작자 표시, 비영리적 사용, 수정 금지 등의 조건으로 저작권을 풀 수 있도록 유도한다. 다양한 콘텐츠 제작자들이 창작 활동을 할 때 다른 사람의 저작물을 이용해 더 풍성한 창작물 생태계를 만드는 선순환을 지향한다. 크리에이티브커먼즈코리아에서 출발해 이를 발전시켜 코드가 됐다. 저작권 문제뿐 아니라 공유와 개방의 가치, 다양성과 참여의 힘으로 열린 사회와 디지털 혁신을 만들어가고 싶다.”
―마지막으로 가상자산 시장 입법 관련해 고언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뭔가.
“대형 사고가 터졌을 때 졸속 입법을 하면 규제 일변도로 갈 수밖에 없다. 입법에 필요한 학습 시간이 필요하다. 최근 몇 년 사이 블록체인, 가상자산, 메타버스 등 새로운 개념이 급격하게 떠올랐다. 세상은 그리로 갈 수밖에 없다. 코로나19 사태 때 젊은 사람들은 화상 채팅 서비스 줌을 켜놓고 맥주 마시면서 놀았다. 메타버스 별 게 아니란 걸, 가까이 와 있다는 체험을 그때 한 거다. 몇 년 뒤에는 경제활동도 메타버스에서 할 수 있다. 어린애들에게 물어보면 이런 관점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다. 이런 상황을 모르고 공부도 안 된 상태에서 법을 만들면 시장 자체를 무너뜨리고 우리나라만 갈라파고스화(자신들의 표준만 고집해 세계시장에서 고립되는 현상)될 수 있다. 기존 금융 규제를 일률적으로 적용하지 않고 인터넷의 특성을 고려한 입법이 되길 희망한다.”
김태현 기자 toyo@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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