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임대인 명단 공개·교육 및 단속 등 방침 실효성 의문…“전세사기 처벌·피해자 구제 관련 법 개선 필요”
깡통전세는 전세가격이 매매가격의 80%가 넘는 주택을 말한다. 최근 집값 하락으로 깡통전세가 늘어나면서 전세사기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전세가율(매매가 대비 전세값 비율)이 높은 깡통전세가 경매로 넘어갔을 때 집주인이 세입자에게 돌려줄 전세보증금이 부족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깡통전세에 입주한 세입자가 계약이 만료돼 전세금을 돌려받으려 할 때 집주인들이 전세금을 떼먹는 사건이 발생하고 있다. 주택도시보증공사(HUG)에 따르면 전세보증금반환보증보험 사고 금액은 지난달에만 872억 원이다. 금액과 건수 모두 월간 기준 역대 최대‧최다였다. 전세보증금반환보증보험을 가입한 세입자는 집주인이 전세금을 돌려주지 않을 경우 HUG를 통해 보증금을 지급받을 수 있다. HUG는 세입자에게 대신 보증금을 지급해주고 나중에 구상권을 행사해 집주인에게 청구하는 식이다. HUG에서 실적집계가 시작된 2015년부터 매년 보증보험 사고액은 증가하고 있다. 2016년 34억 원에서 2017년 74억 원, 2018년 792억 원, 2019년 3442억 원, 2020년 4682억 원, 2021년 5790억으로 급증했다.
이처럼 전세보증금을 세입자에게 돌려주지 않는 사례가 매년 늘어나고 있어 정부에서는 깡통전세 문제와 전세사기를 예방하기 위한 대책을 마련했다. 국토교통부는 전세가율이 90%를 초과하거나 감정가 대비 낙찰가율이 전세가율보다 낮은 지역은 해당 지자체에 ‘주의 지역’으로 통보하고 특별 관리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위험매물을 관리하고 중개사 교육, 이상거래 점검 등도 실시한다. 전세사기 피해 예방을 위해 전세보증금 반환보증보험 가입 활성화, 임대인 관리강화 및 임차인 정보제공도 추진한다. 정부는 보증금을 상습적으로 돌려주지 않는 ‘나쁜 임대인’들의 명단 공개도 함께 진행할 예정이다. 사후 지원책으로는 사기 피해자가 전세자금을 긴급 대출할 수 있도록 HUG 사회공헌자금을 활용하는 방안 등을 논의하고 있다. 9월 중에는 오프라인 센터를 설치해 법률상담, 긴급 금융지원 서비스 상담 등을 지원할 방침이다.
정부에서 여러 대책을 발표했지만 실질적으로 임차인에게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먼저 나쁜 임대인들의 명단을 공개한다는 대책에 대해 이종인 여의도연구원 연구위원은 “의도를 가지고 접근하지 않는 이상 임대인들이 반복적으로 사기를 칠 가능성은 현실적으로 낮아 효과가 크지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나쁜 임대인은 여러 번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는 사고를 낸 임대인을 규정한다. 나쁜 임대인 정보를 안다고 해도 명단에 오르지 않은 임대인이 사고를 낼 수도 있고, 명의를 도용해 동일한 사기를 칠 수도 있어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또한 정부는 깡통전세 주의 지역을 설정해 지자체에 통보 및 점검‧단속을 하고, 공인중개사 교육과 이상 거래 점검을 실시한다고 했지만 이마저도 현실적은 대안은 아니다. 조원균 한국공인중개사협회 홍보과장은 “계약을 진행하고 집을 보여주는 사람들이 중개보조원인 경우가 꽤 많은데, 우리나라는 중개보조원 고용 수에 대한 법적인 제재가 없어서다”며 “이들에 대한 교육이나 단속이 제대로 이루어지고 있지 않아 임차인들이 전세사기에 노출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그는 “또한 관내 공인중개사가 많게는 3000명 적게는 800~1000명인데 정부부처의 관계자 몇 명이 이 많은 인원을 관리하는 것도 현실적으로 불가능해 보인다”고 전했다.
깡통전세 문제를 법적으로 처벌할 수 있는 대책이 없다는 것도 문제다. 전가영 서울시복지재단 변호사는 “세입자에게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는 집주인을 처벌하려면 사기죄가 성립돼야 하는데 사기죄는 기망의사 여부가 중요하다”며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했다는 사정만으로 집주인이 임차인을 속여서 보증금을 편취하려는 의사가 있었는지 입증하기 쉽지 않다”고 말했다. 전 변호사는 “수백 채의 전세사기 사고가 나는 경우에는 어느 정도 입증할 수 있겠지만 보증금 반환이 이뤄지지 않는 경우가 한두 건이라면 사기죄로 입증하기 어려운 경우가 더 많다”고 덧붙였다.
보증금을 돌려주지 않는 집주인에 대한 처벌이 어려운 탓에 피해를 당한 임차인들은 개인 스스로 전세사기와 싸워야 한다. 강서구 화곡동에서 전세사기를 당한 A 씨는 계약했던 집이 깡통전세라는 것을 알고 경찰청, 주택도시보증공사, 국토교통부 등에 문의 및 신고를 했지만 제도적으로 어떠한 도움도 받을 수 없었다. A 씨는 “전세사기에 대한 강력한 처벌과 피해자 구제가 시급하다”며 “신축 건물 허가 및 임대차 시장관리, 보증보험 가입절차 강화 등 철저한 전세사기예방시스템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전했다. 한국주택도시공사(LH)에서 전세보증금을 지원해주는 전세임대로 강서구 화곡동에 집을 계약했던 B 씨 또한 집주인이 LH에 전세금을 반환하지 않아 어려움을 겪었다. 그는 “LH를 끼고 한 계약인데도 안전한 매물이 아니었다”며 “LH와 집주인 사이에 보증금을 주고받는 식이라서 개인적으로 금전 손해를 보진 않았지만 계약이 끝나기도 전에 새롭게 집을 알아봐야 해서 힘들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전세사기는 예방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입을 모아 말했다. 특히 임대인의 체납 정보나 주택가격정보 등을 임차인들이 사전에 알고 있는 것이 중요하다. 전가영 변호사는 “임대인과 임차인의 정보 불균형을 해소할 수 있는 방향으로 제도나 법 개선이 필요하다”며 “현재 상황에서는 임대인들에게 체납 세금이 있는지 등을 임차인이 직접 확인할 수 없도록 돼 있다”고 말했다. 여경희 부동산114 수석연구원도 “집주인의 체납여부나 주택에 깡통 전세 위험이 있는지에 대한 오픈 데이터를 공개하는 것이 전세사기를 예방하는 하나의 방법이다”라고 전했다. 이종인 여의도연구원 연구위원은 “깡통전세로 인한 사기는 예방이 최선”이라며 “정부 당국에서 세입자들이 깡통전세로 인한 전세사기를 피할 수 있도록 교육과 홍보가 절실하다”고 말했다.
지난 10일 국회에서 열린 ‘보증금 먹튀 국회 토론회’에서도 깡통전세와 전세사기를 피하기 위한 대책들의 논의됐다. 최은영 한국도시연구소 소장은 “임차 가구가 보증금을 회수하지 못하는 피해를 예방하기 위해 보증금을 주택가격의 일정 수준 이하로만 받을 수 있도록 하는 등 세입자의 보증금 보호 강화를 위한 법률 개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미선 국토연구원 주거정책연구센터 센터장은 “임대인들이 보증금을 돌려줄 수 있다는 확약을 하거나 보증보험을 가입하는 등의 현실적인 대안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이민주 기자 lij9073@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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