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도를 안심하고 이용할 수 있는 것은 누군가 매일 안전관리를 하는 덕분이다. 하지만 현장은 위험으로 가득하다. 가령, 전동차에 전력을 공급하기 위해 설치한 가선의 높이는 약 4~5m. 더욱이 가선에 흐르는 전류는 전동차를 움직일 정도이니 엄청난 고압이다. 그런 가선을 사람의 손으로 복구하는 작업은 당연히 위험이 따를 수밖에 없다.
그래서 개발에 착수한 것이 다기능 철도 중장비다. JR서일본이 공개한 ‘인간형 중장비 로봇’은 마치 애니메이션 세계에서 튀어나온 듯하다. 부리부리한 눈, 관절을 구부려 부품을 정확히 집어내는 두 팔, 검은색 바탕에 선명한 오렌지색 선이 가미된 보디를 갖췄다. 조종자가 머리를 흔들면 로봇도 따라 흔들고, 조종자가 팔을 들면 로봇도 똑같이 움직인다. 게다가 수십kg이나 되는 파이프를 가볍게 들어 올릴 수 있으며, 정해진 곳에서 확실하게 작업한다.
일본 매체 ‘동양경제온라인’에 의하면 “인간형 중장비 로봇은 JR서일본과 로봇벤처기업 ‘인기일체(人機一体)’, 철도 신호기술회사인 ‘일본신호(日本信号)’ 등 3사가 협력해 개발했다”고 한다. 2024년 봄 실용화할 예정이며, 인력대체 및 가선 유지보수 작업 중 사고를 줄이려는 게 목적이다.
일반적으로 가선 작업은 높은 곳에서 일하는 사람 외에도 크레인 차량 조종사, 보조인력 등 적어도 3~4명이 필요하다. 하지만 로봇으로 대체하면 차량에 타서 로봇을 조종하는 사람, 육안으로 확인하는 스태프, 2명이면 충분하다. JR서일본의 하세가와 가즈아키 사장은 “로봇 도입 시 작업원 수를 약 30%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일본은 저출산 고령화로 일손부족이 심각한 사회문제로 떠올랐다. 이와 관련, 하세가와 사장은 “빠른 시일 내 대응하지 않으면 상황이 어려워지는 것은 필연적”이라면서 “가선 작업 외에도 열차 운행에 장애가 되는 나무 벌목 등 되도록 많은 작업에 로봇을 활용하고 싶다”고 밝혔다.
로봇을 조작하는 시스템은 의외로 간단하다. 조종자는 차량 운전석에 앉아 VR(가상현실) 헤드셋을 착용하고 로봇의 관점에서 세상을 본다. 좌우 레버로 로봇의 양팔을 각각 조작하는데, 조종자와 로봇의 움직임이 연동된다는 점이 흥미롭다.
예를 들어 로봇이 만진 물체의 무게를 조종자가 느낄 수 있으며, 물체가 무언가에 부딪혔을 땐 반동이 조종자에게 피드백 된다. 조작 방법이 직관적인 만큼 빠른 습득이 가능하다는 것도 장점이다. JR서일본 측에 따르면 “20~30분이면 조종기술을 습득할 수 있다”고 한다.
사람 손이 닿지 않는 고소(高所) 작업에 로봇을 활용하려는 시도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19년 호쿠리쿠전력은 가나자와대학과 공동 개발한 배전공사용 로봇 ‘어시스트 암’을 11대 도입한 바 있다. 작업용 리프트에 직접 설치하는 방식으로 일꾼을 보조하는 역할을 한다. 통상 2명이었던 인부를 1명으로 줄이는 효과를 낸다. 다만 외관은 인간형 로봇과는 거리가 멀었다.
고소 작업 로봇을 특별히 인간형으로 만든 이유가 있을까. ‘인기일체’의 사장인 가나오카 박사는 두 가지를 꼽았다. 먼저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는 외형이라는 것, 또 하나는 손발의 수나 머리 위치 등 사람과 형태가 가까울수록 조작하기 쉽기 때문이다. 요컨대 사람의 팔이 두 개이므로 로봇과 움직임을 연동하려면 로봇 팔 역시 두 개일 때가 조작이 쉽다. 반대로 사람이 여러 개의 팔을 가진 로봇을 조종하려면 복잡해진다.
가나오카 박사는 리츠메이칸대학에서 객원교수(로봇공학)도 겸하고 있다. 그에 따르면 “회사의 방향성이 정해진 것은 2011년 발생한 동일본 대지진이었다”고 한다. 당시 “쓰나미 피해지나 원전사고 복구 등 위험한 장소에 인력이 투입되는 걸 보고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는 것. 이후 가나오카 박사는 “인간이 신체적으로 위험한 일에 종사하지 않아도 되는 사회를 만들고 싶어 대체할 로봇을 만들게 됐다”고 전했다.
이번에 공개한 로봇은 머리와 양팔, 상반신뿐이지만, 이족보행 로봇도 개발 중이다. 가나오카 박사는 “여러 회사에서 이족보행 로봇을 개발하고 있으나, 인간이 로봇 다리의 감각을 느끼면서 움직임을 직접 조작하는 시스템은 거의 없다”며 “최종적으로는 완전한 인간형 로봇을 만들려는 구상도 한다”고 덧붙였다.
가령 건담처럼 사람이 들어가 조종하는 로봇이다. 몸을 기울이거나 다양한 동작을 하는 등 감각 일치가 필요한 경우 로봇에 올라타는 것이 유리하기 때문이다. 그는 “바이래터럴(양방향) 제어를 통해 힘의 피드백이 있으면 충분히 로봇과 일체화할 수 있다”는 설명을 더했다. SF 만화에서나 가능해 보였던 ‘탑승형 이족보행 로봇’이 조만간 현실화될지도 모를 일이다.
인간형 중장비 로봇 활용처는? 원전 쓰레기 처리도 기대
일본 매체 ‘동양경제온라인’은 “일손부족 시대인 만큼 ‘인간형 중장비 로봇’이 정식 출시되면 구매처는 많을 것 같다”고 내다봤다. 이와 관련, 일본신호의 쓰카모토 히데히코 사장은 “아직 상정하진 않았지만 적어도 철도회사 한 곳당 복수 대는 팔리지 않을까 한다”고 예상했다.
또한 다소 사양을 변경하면 고소 작업 외에도 활용이 가능하다. 쓰카모토 사장은 “무게 100kg의 부품도 거뜬히 들어 올릴 수 있다는 것이 실증시험에서 확인됐다”면서 “잠재력이 있기 때문에 판로 확대도 기대한다”고 덧붙였다. 이를테면 “인력으로는 어려운 ‘원자력발전시설의 쓰레기’ 처리 등에서도 활약이 기대된다”는 설명이다.
한편, JR서일본 측은 “인간형 로봇을 현장에 도입함에 따라 철로 보수작업 이미지도 바뀔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로봇 조종을 동경해 지원하는 사람이 나오지 않을까’하는 기대감이다.
강윤화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