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금난에도 고액 회원권 마케팅 진행으로 피해자 양산…법조인 “업무상 횡령·사기죄 성립 가능성”
더 황당한 사례도 있다. B 씨는 그리스 산토리니 현지에 가서야 에바종을 통해 예약한 리조트가 제대로 예약이 되지 않았다는 걸 알았다. 리조트 측은 B 씨에게 “에바종 대표가 호텔 숙박료를 해당 고객에게 받으라고 메일을 보냈다”며 B 씨에게 숙박료를 이중으로 요구했던 것이다.
‘에바종’은 국내외 호텔·리조트를 30~70% 할인된 가격으로 일정 기간 판매해 소비자들 사이에서 인기가 있던 예약 대행사다. 홍콩 금융권에서 일하던 프랑스인 에드몽 위그 제라르 드 퐁트네가 2012년 국내에 설립한 회사로, 회원가입을 해야 가격을 알 수 있는 프라이빗 회원제로 운영하고 해외 특급 호텔과 리조트에 집중하는 등 차별화를 꾀했다. 문제가 불거지기 전 에바종의 회원 수는 약 55만 명이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에바종’의 이른바 ‘먹튀’ 논란이 불거진 건 지난달부터였다. 호텔 예약을 대행으로 해준다며 수수료와 예약금을 고객에게 받고 실제로 호텔 측에는 돈을 전달하지 않거나, 예약을 진행하지 않는 사례가 대표적이다. 피해 금액은 1인당 최소 몇 십만 원에서 1000만 원 이상까지 다양하다. 전체 피해 규모는 현재 10억 원 상당으로 추정된다. ‘에바종 피해자 모임’이라는 온라인 오픈 채팅방에 모인 사람만 해도 11일 기준 308명에 달한다.
한국소비자원이 11일 발표한 자료를 보면 지난 2월부터 이달 5일까지 1372소비자상담센터에 접수된 (주)본보야지(에바종) 관련 상담은 총 40건이며, 특히 8월에는 5일간 15건이 접수됐다. 접수된 건의 90%는 계약해제·위약금(21건), 계약불이행(15건) 등 계약 관련 불만인 것으로 나타났다.
고액의 피해를 입은 사람들은 대부분 ‘호텔패스’ 상품이나 ‘5성급 호텔 피트니스 센터·레저 클럽 무제한 이용권’ 구매자다. 호텔패스는 1년에 1000만 원을 내면 주요 특급호텔을 2주마다 최대 2박씩 사용할 수 있는 상품이다. 피트니스센터·레저클럽 무제한 이용권은 5성급 호텔의 피트니스센터와 레저클럽을 사용할 수 있는 상품이다. 3개월권 구매 시 89만 원인데, 보증금 1000만 원을 내면 77만 원에 이용할 수 있어 고액의 피해자가 많이 발생했다. C 씨는 “피트니스 무제한 이용권 1년짜리를 끊어놓고 개인 사정상 시작도 못했는데 이런 사태가 발생해 황당하다”고 말했다.
에바종에서 비롯된 논란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에바종은 코로나19가 국내에서 발생하기 시작한 2020년부터 국내 호텔에 숙박료를 제때 지급하지 못해 이로 인해 법원의 채무불이행자 명부에 등재된 것으로 알려졌다. 에바종은 지난해 9월과 올해 1월 제주도 서귀포시에 위치한 호텔에 각각 6700만 원과 2200만 원 상당의 채무를 불이행해 서울지방법원에서 채무불이행자 판결을 받았다. 한 호텔 체인도 2020년 약 9000만 원의 미수금이 발생했으나 보증보험을 통해 대위변제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중소기업 현황 정보시스템에 따르면 에바종의 운영사인 (주)본보야지는 2015~2019년 자본총계가 마이너스로 자본잠식 상태였다. 영업이익 역시 5년 내내 적자를 기록했다.
코로나19가 확산되면서 여행을 포기한 고객들에게 현금 환불 대신 적립금인 ‘클럽머니’를 제공하고 호텔비 결제를 제한해 문제가 된 적도 있다. 예약 시 클립머니 이용가능 금액을 1만 원에서 2만 원 사이로 제한하고 나머지 금액은 현금으로 계산하도록 해 소비자들의 원성을 샀다. 지난해 6월 에바종은 클럽머니 환불을 거부하고 현금 환불을 요구한 이용자들과의 소송에서 1심 패소 후 항소한 일도 있다. 그러나 항소심 재판부 또한 원고 전부승소 취지의 화해권고결정을 내렸고 별도 이의신청이 없어 해당 결정이 확정됐다.
금번 ‘먹튀’ 논란 피해자들에게 에바종 관계자는 “현재 에바종이 자금 운영상 이슈로 정상운영이 어려운 상태다. 8월 현재 급증하는 취소 및 환불 문의 건으로 지금 당장 환불은 어려운 점 양해 부탁한다”고 말했다.
조기현 법무법인 대한중앙 변호사는 “예약 및 숙박대금 지급을 대행하기로 하고 돈을 받은 뒤 숙박대금을 지급하지 않았다면 업무상 횡령죄에도 해당할 수 있다”며 “특히 무제한 숙박권의 경우 이를 지급할 수익구조가 마련돼 있지 않아 숙박권 운영을 지속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광고를 하고 판매했다면 사기의 고의가 있다고 보아 사기죄가 성립될 수 있다”고 전했다.
조기현 변호사는 “예약이 된 것으로 알고 여행지에 도착했는데 (에바종의) 숙박대금 미납으로 예약이 취소돼 황급히 다른 비싼 숙박업소에 예약을 잡은 사례도 손해배상을 받을 여지가 있다”고 덧붙였다.
에바종은 지난 2일부터 전 직원 재택근무에 들어간 상태다. 에바종은 2일 공식 SNS에 “폐업을 위한 조치가 아니며 온라인상에서 더 많은 고객을 응대하고 사업을 운영해 나가기 위함”이라며 “투자 유치 및 인수 합병 등의 방안을 여러 관계자와 협의 중에 있으니 조금만 더 기다려 달라”고 공지했다.
서울 남대문경찰서는 현재 해당 사건 조사에 착수해 피해 규모 등을 확인하고 있다. 에바종 대표에 대해서는 지난 2일 출국금지 조처를 내린 것으로 전해졌다. 피해자들은 현재 집단 소송도 준비 중이다.
일련의 사건에 대해 입장을 듣고자 9일 일요신문i는 서울 중구의 에바종 사무실을 찾았으나 사무실은 텅텅 빈 상태였다. 9일 에바종 입주건물 관리자는 “지난 토요일(6일) 짐을 싸서 이사를 나갔다. 오늘 남대문경찰서에서 와서 사무실 사진도 찍고 조사하고 갔다”고 밝혔다.
한국소비자원 관계자는 “온라인 거래 시 사업자 정보, 거래조건 및 최근 구매 후기 등을 사전에 확인해야 한다”며 “특히 장기간이나 고액의 선불금 납부가 필요한 계약의 경우 사업자의 재무 상태를 확인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또 “계약 이행이 완료될 때까지 계약서, 입금증 등 증빙서류를 보관해 향후 분쟁 발생에 대비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정아 기자 ja.kim@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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