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갈등 후폭풍, 원자재발 물가 불안, 금리 상승…‘L자형’ 장기 침체 가능성 무게
지난 7월 19일 코스피는 5일 이동평균선이 20일선을 뚫고 올라가는 단기 골드크로스가 이뤄졌다. 하지만 강세장 전환 신호를 확인하려면 20일선이 60일선을 웃도는 중기 골드크로스가 필요하다. 다시 말해 2500선 안착이다. 지수가 오르려면 시가총액 상위 종목의 움직임이 중요하다. 2위 LG에너지솔루션과 4위 삼성바이오로직스 등의 주가 상승세는 뚜렷한데 1위 삼성전자와 3위 SK하이닉스는 오히려 하락세다.
미국 주도로 한국, 일본, 대만을 묶는 반도체 동맹 ‘칩4’를 만들었지만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는 호재가 아니라는 평가다. 원천기술을 가진 미국, 소재경쟁력이 탄탄한 일본, 파운드리에서 우위인 대만에 비해 한국 반도체 업체는 중국과의 껄끄러운 관계를 떠안게 됐다. 중국은 한국 반도체의 최대 수요국이다. 설상가상으로 금리 상승에 따른 경기 침체로 반도체 수요가 줄어들 것이라는 전망도 최근 나오고 있다.
7월 중순 이후 원화 강세 국면에서 이뤄진 외국인들의 한국 주식 매수세도 계속될 것으로 장담하기 어렵다. 원·달러 환율은 다시 1300원대에 자리를 굳히는 모양새다. 수요 위축 가능성에 한동안 주춤하던 국제 유가가 다시 반등하며 인플레이션 우려를 되살리고 있다. 러시아는 다시 유럽에 대한 에너지 공급 제한에 나섰고, 사우디아라비아 등 중동 산유국들은 미국의 증산 요구를 사실상 거절했다. 미국 내 셰일가스 업체들도 증산을 위한 투자보다는 가격 인상과 배당 확대에 열중하는 모습이다.
겨울을 앞두고 유럽과 아시아 국가들의 중동산 천연가스 구매 경쟁도 치열해질 전망이다. 수요는 둔화되는데 물가와 임금이 가파르게 오르며 기업 실적 전망도 어둡다. 인플레이션은 미국의 금리 상승을 유발해 달러 강세를 자극한다. 외국인들이 원화 자산을 매입하기 불리한 환경이다.
최근 미국에서 인플레이션 억제를 위한 법안이 상원에서 가결됐다. 물가 불안의 원인인 화석연료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미국 정부가 10년간 4300억 달러를 지원하는 내용이다. 전기자동차와 2차전지 수요를 크게 늘릴 것이란 기대로 자동차와 배터리 관련주가 상승세다. 하지만 이 역시 양날의 검이다.
미국 정부의 보조금은 세액공제 형태다. 전기차는 북미에서 생산돼야만 한다. 국내 완성차 업체가 미국에 새로운 전기차 공장을 지으려면 국내 노조의 동의가 필요하다. 또 미국에서 제조되는 배터리의 주요 부품(양극재·음극재·전해액·분리막) 비율이 50% 이상이어야 한다. 중국의 간접 수혜를 막기 위해서다. 한국 배터리 업체들은 핵심 소재인 양극재를 구성하는 전구체(니켈·코발트·망간 혼합물)와 양극활물질(전구체에 리튬을 결합한 것)의 95%를 중국에서 수입한다. 자칫 이번 법안이 약이 아닌 독이 될 수 있다.
국내 수급도 꼬이는 모습이다. 금리가 오르면서 자금이 예금과 채권으로 이동하고 있다. 지난 7월 은행 정기예금은 31조 7000억 원 증가했다. 역대 최대폭이다. 주요 은행의 정기예금 금리는 연 3% 중반이다. 개인은 7월 중 장외시장에서 채권을 3조 1000억 원어치 순매수했다. 국채는 연 3%, 회사채(AA-)는 연 4%대 수익이 가능하다. 증시 대기자금인 고객예탁금은 올 초 72조 원에서 최근 53조 원대로 줄었다.
전문가들은 ‘V자형’ 반등보다는 ‘L자형’ 장기 침체 가능성에 무게를 둔다. 금융위기나 코로나19 대유행 때처럼 경제가 어렵다고 정부나 중앙은행이 재정을 풀거나 금리를 낮춰 시장을 도울 수 있는 상황이 아니기 때문이다. 3분기 코스피가 반등해도 2600선을 넘기 어렵다는 ‘베어마켓 랠리(약세장 속 일시상승 장세)’ 전망이 우세하다. 그 이상으로 반등이 시도되더라도 차익매물이 나오며 지수를 짓누를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다.
최열희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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