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팡플레이 vs 이주영 감독 ‘편집권 침해’ 논란…거대 OTT 시장 ‘창작자 권리 어디까지’ 갑론을박
드라마의 극본을 쓰고 연출까지 맡은 감독이 투자사를 향해 공개적으로 ‘편집권 침해’를 주장하고 나섰다. 사전 협의 없이 일방적으로 이뤄진 방송본 편집으로 기획 의도와 완전히 달라진 내용이 시청자에게 전달됐다는 폭로다. 계약서 상 ‘을’의 입장인 드라마 감독이 투자사인 ‘갑’의 부당한 처우를 공개적으로 밝히는 일은 방송가에서 유례를 찾기 어렵다. 지상파와 케이블 채널을 넘어 넷플릭스와 디즈니플러스 등 온라인 동영상 스트리밍(OTT) 서비스까지 가세한 글로벌 콘텐츠 전쟁의 한 가운데서 창작자의 권리가 어디까지 존중받아야 하는지를 두고 갑론을박이 치열하다.
편집권 침해 논란의 중심에 선 작품은 쿠팡플레이가 6월 24일부터 공개한 6부작 드라마 ‘안나’다. 거짓말로 설계한 가짜 인생을 살아가는 주인공 안나의 이야기로, 배우 수지가 원톱 주연을 맡아 호평 받았다. 하지만 작품 전편이 공개되고 한 달여 뒤인 8월 2일 ‘안나’의 극본을 쓰고 연출을 맡은 이주영 감독은 돌연 “편집권을 침해당했다”고 주장하면서 새로운 국면이 시작됐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감독의 편집권을 둘러싼 크고 작은 갈등은 간혹 있었지만, 이번처럼 흥행한 작품이 감독이 뒤늦게 편집권을 문제 삼고 법적 대응까지 시사한 경우는 전례를 찾기 어렵다. 양측의 의견 대립은 해결 국면을 찾지 못해 파장은 확산되고 있다.
#편집권 침해 주장, 왜?
사실 이주영 감독과 쿠팡플레이의 갈등은 ‘안나’ 공개 시점부터 조심스럽게 흘러나왔다. 보통 드라마나 영화 제작발표회에는 주연 배우들과 감독이 함께 참석해 작품을 설명하고 취재진과 간담회를 진행하지만 ‘안나’는 달랐다. 수지, 김준환, 정은채 등 주연 배우는 참석했지만 이주영 감독은 나오지 않았다. 이후 드라마가 주목받으면서 취재진은 이 감독에게 인터뷰를 요청했지만 제작진은 “개인 사정” 등을 이유로 연결하지 않았다. 작품은 성공했는데 감독은 자취를 감춘 특이한 일이 벌어진 셈이다.
그 내막은 최근에야 드러났다. 이주영 감독은 “쿠팡플레이의 일방적인 편집으로 작품이 훼손되고 감독을 모독했다”면서 공개적인 사과와 대안 마련을 촉구했다. 감독의 설명에 따르면 이미 공개된 ‘안나’는 회당 45분에서 63분 사이의 6부작으로 완성됐지만, 처음 기획한 버전은 회당 45분에서 61분 분량의 8부작이었다고 한다. 쿠팡플레이가 8부작짜리 극본을 최종본으로 승인해 제작비를 투입했는데도 촬영이 끝나자 제3의 편집 감독을 기용해 일방적으로 6부작으로 편집해버렸다는 주장이다.
감독은 “단순히 분량만 줄어든 것이 아니라 서사, 촬영, 편집, 내러티브의 의도 등이 모두 크게 훼손됐다”며 “보지도 못한 편집본에 본인(감독)의 이름을 달고 나가는 것에 동의할 수 없어 크레딧의 ‘감독’과 ‘각본’에서 자신의 이름을 빼달라고 요구했으나 쿠팡플레이는 그조차 거절했다”고도 밝혔다. 이후 ‘안나’에 참여한 이의태 촬영감독 등 6명의 주요 스태프도 이주영 감독을 지지했다.
쿠팡플레이 입장에서 ‘안나’는 오랜만에 만난 효자 콘텐츠다. 6월 이용자 수가 전월 대비 60만 명이나 증가한 배경으로 손흥민의 영국 프리미어리그 토트넘 경기 중계와 더불어 ‘안나’의 인기가 꼽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돌연 창작자의 권리를 침해했다는 비난 여론에 휩싸인 쿠팡플레이는 “제작사의 동의를 얻고 최종적인 작품 편집은 계약에 명시된 권리에 의해 이뤄졌다”고 반박했다. 또한 이주영 감독 및 제작사를 통해 드라마 편집 방향에 우려를 전달했지만 협의가 이뤄지지 않았다고도 설명했다. 그러면서 당초 기획한 8부작을 일종의 확장판으로 8월 중 공개하겠다고 알렸지만 이주영 감독 측과의 이견을 좁히지 못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이번 논란이 창작자와 거대 플랫폼의 법적 싸움으로 이어질지 주목하고 있다. 이주영 감독 측은 ‘저작인격권 침해’에 대한 소송이 충분히 가능하다고 본다. 쿠팡플레이뿐 아니라 넷플릭스, 웨이브, 티빙, 디즈니플러스 등 거대 자본력을 갖춘 OTT 플랫폼으로 인해 영화와 드라마 산업이 활황기를 맞는 상황에서 ‘안나’와 쿠팡플레이 사이의 초유의 갈등이 시장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여부도 주목받는다.
#영화계에서 빈번한 편집권 갈등
‘안나’처럼 수면 위로 드러나지 않았지만 연예계에서는 편집권을 둘러싼 크고 작은 갈등은 벌어지고 있다. 특히 평균 100억 원을 훌쩍 넘는 막대한 자본이 투입하는 영화가 빈번한 만큼 최종 편집권에 대해서는 더욱 민감할 수밖에 없다. 대개는 투자배급사와 제작사, 감독이 원활하게 의견을 공유해 편집을 마무리하지만, 최종 편집권은 보통 제작비를 대는 투자배급사가 갖는다. 이견이 없을 땐 전혀 문제되지 않지만 간혹 감독과 제작사의 생각이 다르거나 투자배급사와 감독의 의견이 충돌할 때는 미묘한 갈등이 시작된다.
실제로 얼마 전 개봉한 한 영화의 경우 제작사, 감독 간의 작품 편집에 대한 의견이 엇갈려 개봉일이 몇 년 동안 미뤄지기도 했다. 감독이 만든 편집본이 지나치게 불친절해 제작사와 투자배급사의 우려를 샀기 때문이다. 결국 감독이 한발 물러나고, 제작사와 투자배급사가 의견을 맞춰 최종 편집한 버전으로 개봉해 관객으로부터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제작자가 영화감독일 경우 편집권에 강한 입김을 발휘한다. 제작자로도 성과를 내고 있는 한 영화감독은 자신이 기용하는 감독들의 연출작에 최종 편집권을 갖기로 유명하다. 물론 부당한 간섭은 아니다. 제작자로서 연출자와 협의 이후 편집권을 갖고 작품의 완성도를 높이는 방식을 취하는 만큼 잡음이 일기보다는 흥행 성과로 이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드물지만 몇몇 배우는 영화 편집에 직접 참여하기도 한다. 주연 배우가 영화 편집에 동참하는 것에 대해 영화계 내부에서는 의견은 분분하지만, 갈수록 영향력이 커지는 일부 배우가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것을 막을 방법은 없다. 배우의 입김이 편집에 작용한 영화들의 흥행 결과는 일관적이지 않다. 몇 년 전 한 중견 배우가 ‘편집실에서 살다시피 해’ 완성한 한 영화는 감독의 편집본보다 완성도가 높았고 실제로 만족스러운 흥행 성과까지 얻었다. 반면 얼마 전 개봉한 영화의 경우 주연 배우가 편집에 의견을 피력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정작 관객 평가는 냉소적이었다.
#방송에서도 편집 논란 ‘진행 중’
영화와 비교해 빈도는 적지만 방송에서도 편집 논란은 벌어진다. 2021년 설 연휴 방송한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가 대표적이다. SBS는 영화 등장하는 주인공의 동성애 장면을 인위적으로 편집해 ‘작품 훼손’ 논란을 야기했다. 동성 키스 장면을 편집해 성소수자로서 프레디 머큐리 삶을 조명한 영화 전체를 왜곡했다는 비판이다. 논란이 확산되자 SBS는 “지상파에서 15세 이상 시청가로 방송하는 설 특선 영화라는 점을 고려한 편집일 뿐 다른 의도는 없었다”고 해명했다.
스타 파워가 편집권 침해 논란을 불러온 사건도 있다. 2008년 서태지가 SBS 음악프로그램 ‘초콜릿’을 통해 컴백무대를 가지려고 했지만 “편집 참여”를 요구해 제작진의 반발을 샀다. 연출자의 고유 권한인 편집권까지 요구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반발이다. 논란 끝에 서태지의 출연은 무산됐다.
이호연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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