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면 드래프트 부활로 유망주에 관심…심준석·김서현 ‘광속구 자랑’ 윤영철 ‘왼손 중 최강’
올해는 특히 시속 150㎞대 강속구를 던지는 특급 투수 유망주들의 경쟁이 더 화제를 모으고 있다. 덕수고 3학년 심준석과 서울고 3학년 김서현이 쌍두마차다. 이들은 고교 1~2학년 때부터 KBO리그 구단들뿐 아니라 메이저리그(MLB) 구단들의 관심까지 한몸에 받으면서 유명해 졌다. 대통령배, 청룡기, 황금사자기, 신세계이마트배 등 올해 열린 고교야구 전국대회에서 심준석과 김서현이 마운드에 오를 때마다 웬만한 프로야구 선수들보다 더 많은 기사가 쏟아진 이유다.
#심준석 '신이 내린 재능'
심준석은 고교 야구에서 가장 빠른 공을 던지는 투수다. 고교 1학년이던 2020년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장기 세광고와의 결승전에서 시속 150㎞대 강속구로 6이닝 동안 삼진 12개를 잡아내면서 단숨에 전국적으로 이목을 끌었다. 심지어 해를 거듭할수록 구속이 더 빨라졌다. 최근 청룡기와 대통령배 대회에선 최고 시속 157㎞를 찍으면서 '광속구'의 명성을 재확인했다. 지난 3월엔 MLB 슈퍼 에이전트인 스콧 보라스와 대리인 계약도 했다. 프로에 첫발을 내딛기 전부터 '역대급' 화제성을 자랑하고 있다.
심준석이 KBO 신인드래프트에 나온다면, 1라운드 전체 1순위 지명은 기정사실로 여겨졌다. 지난 시즌 9위 KIA 타이거즈와 10위 한화 이글스의 간격이 좁혀지자 일부 야구팬들은 "9위를 할 바엔 차라리 꼴찌를 해서 신인드래프트 1순위 지명권을 얻는 게 낫다"는 주장을 펼쳤을 정도다. '심준석 리그'라는 신조어도 그때 생겼다. 그 과정에서 일부 극성 한화 팬들이 카를로스 수베로 한화 감독에게 소셜미디어(SNS)로 "심준석을 데려와야 하니, 경기에 져달라"는 메시지를 보내는 부작용도 생겼다. 참다 못한 수베로 감독이 공개적으로 "우리가 가야 할 길은 패배의 길이 아니다. 이기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게 우리 의무다. 팬들이 '져달라'는 메시지를 그만 보냈으면 좋겠다"고 일침을 놓기도 했다.
다만 지난해 말부터 팔꿈치 부상과 허리 통증에 시달리면서 제 기량을 발휘하지 못했다. 부상에서 복귀한 뒤에도 제구가 불안정해 애를 먹고 있다. 이 때문에 지난 7월 21일 확정된 세계청소년야구선수권대회 대표팀 최종 엔트리에서 제외되는 아픔을 겪어야 했다. 코로나19로 대회가 무산된 지난해 대표팀 최종 엔트리에는 2학년 투수 중 유일하게 심준석만 승선했는데, 정작 3학년 투수들이 주축을 이뤄 출격하는 올해 대회에는 심준석이 빠지게 된 것이다.
문제는 역시 제구였다. 부상 이후 불펜으로 주로 등판한 심준석은 대표팀 선발 회의 전까지 올해 전국대회에서 18과 3분의 2이닝 동안 사사구 28개를 내줬다.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 경기력향상위원회는 고심 끝에 결국 심준석을 엔트리에 포함하지 않기로 했다. 청소년 대표팀 사령탑인 최재호 강릉고 감독은 "심준석은 최근 컨디션과 성적이 좋지 않아 매 경기 반드시 승리해야 하는 단기전에서는 제구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판단했다"며 "좋은 재능을 지닌 투수지만, 이번 대회엔 함께하지 못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심준석은 이후에도 제구 불안 문제를 쉽게 해소하지 못했다. 명예 회복을 벼르고 나온 대통령배 대회 충암고와의 32강전에서도 3-2로 앞선 3회 말 1사 2루에 구원 등판했다가 아웃카운트 하나를 잡는 동안 사사구 4개를 허용하고 마운드를 내려갔다. 덕수고 정윤진 감독이 대회 전 "심준석이 최근 연습경기에서 (제구가) 많이 안정을 찾았다"며 기대했지만, 첫 등판에서 연속 볼넷으로 만루 위기를 만들고 연속 사구로 밀어내기 실점을 허용하는 아쉬움을 남겼다. 시속 157㎞에 달하는 강속구도 제구 난조 앞에선 무용지물이었다. 심준석은 경기 후 "컨디션은 많이 좋아졌지만, 제구가 안 되니까 좀 느슨해졌다. 실전에서 더 많이 던지면서 컨트롤을 잡아야 할 것 같다"고 스스로를 채찍질했다.
그럼에도 심준석을 향한 감탄과 기대의 시선은 여전하다. 범접하기 힘든 구속과 키 194㎝·체중 103㎏의 당당한 체격은 투수에게 하늘이 내린 자산이다. A 구단 스카우트는 "청소년대표팀은 당장 눈앞의 대회에서 잘 던질 수 있는 선수를 뽑아야 하니 심준석이 불안한 게 당연하다. 하지만 프로 구단이 지명할 때는 '이 선수가 입단한 뒤에 얼마나 성장할 수 있을까'를 생각하면서 미래를 더 중요하게 본다"며 "아무리 지금 고전하더라도 문제점을 개선할 여지가 남아 있다면, 심준석이 굉장한 발전 가능성을 가진 투수인 것만은 분명하다. 시속 157㎞를 던지는 투수를 포기할 수 있는 구단이 몇이나 되겠느냐"라고 반문했다.
#김서현, 나도 고교 넘버원
김서현은 '심준석 원톱' 체제로 굳어지는 듯했던 고교야구 최고 투수 경쟁에 지각변동을 일으킨 특급 유망주다. 사이드암보다 팔 각도를 더 올려서 던지는 스리쿼터 스로 유형으로, 심준석 못지 않게 빠른 공을 던진다. 올해 최고 구속이 시속 155.7㎞까지 나왔고, 직구 평균 구속도 꾸준히 시속 150㎞를 웃돌고 있다. 올해 안에 구속을 시속 157㎞까지 더 끌어올리는 걸 목표로 삼고 있다.
스플릿핑거패스트볼(스플리터), 투심패스트볼, 커브, 체인지업, 슬라이더 등 다양한 구종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점도 강점이다. 특히 커브와 스플리터를 섞어 삼진을 잡는 능력이 뛰어나다. 지난해 대통령배 대회가 충남 천안과 공주에서 열렸는데도 2학년이던 김서현을 보러 MLB 스카우트가 지방까지 찾아왔을 정도다.
MLB와 KBO리그라는 양 갈래길 앞에서 고민하는 심준석과 달리, 김서현은 일찌감치 "KBO리그에서 먼저 성공한 뒤 MLB에 도전하고 싶다"고 선언한 상태다. 같은 과정을 거쳐 MLB에 안착한 류현진의 성공 사례를 따르고 싶다는 의미다. KBO리그 대표 레전드 중 한 명인 고 최동원처럼 금테 안경을 쓰고 힘차게 공을 뿌리는 모습도 인상적이다. 실제로 최동원은 그의 롤 모델이다.
김서현은 중학교 때 키가 187㎝까지 자라고 직구 시속이 145㎞까지 나온 '될성 부른 떡잎'이었다. 고교 1학년 때는 부상으로 휴식하느라 심준석만큼 주목받지 못했지만, 본격적으로 경기에 나서기 시작한 2학년 이후로는 날이 갈수록 더 진가를 인정 받고 있다. 지난해까지는 주로 짧은 이닝을 소화했는데, 올해는 부쩍 투구 이닝을 늘려가면서 '에이스 자질'까지 증명했다. 오래 던지면서 투구 내용도 안정적이라 더 높은 점수를 받았다.
특히 대통령배 대회 물금고와의 32강전에선 압도적인 피칭으로 이날 야구장에 모인 수많은 국내·외 스카우트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0-2로 뒤진 4회 무사 1·2루에 구원 등판해 세 타자를 연속 삼진으로 돌려 세우고 불을 껐다. 이후 경기가 끝날 때까지 마운드를 책임지면서 6이닝 4피안타 3볼넷 11탈삼진 무실점을 기록해 박수를 받았다. 9회까지 시속 150㎞가 넘는 직구 스피드를 유지한 점도 눈에 띄었다.
B구단 스카우트는 "김서현은 구속이 빠르기도 하지만, 변화구 완성도가 높아 선발 투수로 적합하다"며 "완급조절도 잘하고, 특히 스플리터는 MLB급"이라고 치켜세웠다. 김서현이 쟁쟁한 라이벌들을 제치고 올해 청소년 대표팀 에이스로 낙점된 비결이다. 올해 신인드래프트에서 김서현이 전체 1순위 지명을 받더라도 이상할 게 없다.
#윤영철, 왼손 투수 최강자
충암고 윤영철은 심준석, 김서현과 함께 올해 고교야구 투수 '빅 3'로 꼽힌다. 셋 중 유일한 좌완이라 왼손 투수 중에서는 독보적인 1순위 유망주다. 구속은 최고 시속 145㎞로 둘에 한참 못 미치지만, 프로 입단 후 체계적인 웨이트 트레이닝을 거치면 구속이 더 올라갈 여지도 남아 있다.
윤영철은 충암중 시절부터 줄곧 팀의 에이스였다. 고교 진학 후에도 2학년이던 지난해부터 팀 마운드의 주축으로 활약했다. 지난해 충암고가 청룡기와 대통령배에서 전국대회 2관왕을 차지하는 데 가장 큰 공을 세운 투수이기도 하다. 신인드래프트 1라운드 지명은 의심의 여지가 없고, 몇 번째로 이름이 불리느냐가 관건이다.
윤영철의 가장 큰 장점은 디셉션(공을 숨기는 동작)으로 꼽힌다. 타자의 타이밍을 빼앗는 데 최적화돼 있다. 변화구 제구 능력이 수준급이라 볼넷도 거의 없다. 지난 청룡기 대회에선 삼진 23개를 잡는 동안 볼넷 1개를 내주면서 극강의 '볼삼비(볼넷 대비 삼진 비율)'를 기록했다. 윤영철은 "주자가 있을 때는 땅볼을 유도하려고 낮은 코스로 변화구를 던졌다. 또 주자가 없을 때는 삼진을 잡기 위해 직구 위주로 던졌다"고 설명했다.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 관계자는 "제구력과 경기운영능력은 고교 수준을 능가하고도 남는다"고 평가했다. 심준석과 김서현의 유명세에 미치지 못했던 그가 평균 시속 140㎞대 초반의 구속으로도 시속 150㎞ 강속구를 던지는 동기생들의 아성을 위협한 비결이다.
이뿐만 아니다. 윤영철은 최근 JTBC 야구 예능프로그램 '최강 야구'에 출연하면서 얼굴과 실력을 동시에 알렸다. 박용택, 이택근, 정근우, 서동욱 등 '최강 몬스터즈'에 소속된 프로야구 레전드 스타들을 상대로 연거푸 삼진을 잡아냈다. 2차전에서 1회부터 구원 등판해 7과 3분의 1이닝 동안 탈삼진 9개를 기록한 장면은 백미였다. 이 경기를 중계하던 정용검 캐스터는 "섣부르긴 하지만, 윤영철이 이대로 잘 성장한다면 우리는 지금 류현진(토론토 블루제이스)의 고교 시절을 다른 이름으로 보고 있는 것"이라고 감탄했다. 김선우 해설위원 역시 "배짱, 던지는 법, 여유까지 문제가 없다"고 박수를 보냈다.
윤영철은 "은퇴하셨다고 해도 워낙 프로에서 잘하신 분들 아닌가. 역시 직접 상대해 보니 어렵고 까다로웠다"며 "그분들과 맞붙고 오니 확실히 고등학교 선수들이 좀 더 편안하게 느껴진다"며 장난스럽게 웃어 보였다.
그의 유일한 아쉬움은 전국대회 우승 불발과 마지막 경기의 부진이다. 지난해 2관왕 충암고는 올해도 청룡기 결승에 올랐지만, 유신고에 패해 준우승했다. 마운드의 기둥인 윤영철이 준결승전에서 공 103개를 던져 결승전에는 등판하지 못했다.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가 유소년 선수 보호와 부상 방지를 위해 만든 '투구 수 제한 규정(91구 이상 던진 투수는 4일 휴식 의무)'을 지켜야 했기 때문이다. 곧 이어 열린 대통령배에서 재차 2연패에 도전하려 했지만, 충암고는 32강전에서 덕수고에 일격을 당해 조기 탈락했다. 윤영철이 이 경기에서 3점 홈런 포함 6실점으로 무너지면서 패배의 빌미를 줬다. 하필 올해 최악의 피칭이 중요한 길목에서 나온 거다.
윤영철은 김서현과 함께 세계청소년야구선수권에 출전하는 18세 이하 대표팀에 선발됐다. 청소년 국가대표 선수들은 대표팀 소집 기간과 겹치는 봉황대기 전국고교야구대회에 출전하지 못한다. 대통령배 덕수고전이 신인드래프트 전 윤영철의 전국대회 최종 쇼케이스였다. C구단 스카우트는 "윤영철은 이미 보여준 게 많은 투수다. 마지막 한 경기 결과는 크게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빅 3'가 전부는 아니다
경남고 에이스 신영우가 무서운 속도로 '빅 3'의 뒤를 바짝 따라붙고 있다. 신영우 역시 최고 시속 153㎞의 직구를 뿌린다. 커브, 슬라이더, 스플리터, 너클커브 등 다양한 변화구도 던진다. 강속구와 제구력을 겸비해 1라운드 상위 순번 한 자리를 예약하는 모양새다. 청소년 대표팀에서 김서현, 윤영철과 호흡을 맞추게 된다. 전광렬 경남고 감독은 "신영우는 지난해 초까지 제구력이 다소 불안했는데, 지난해 7월 이후 안정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며 "제구가 잡히면서 프로 구단들의 관심을 부쩍 많이 받기 시작했다"고 했다.
대구고 원투펀치 김정운과 이로운도 기대를 모으는 투수들이다. 김정운은 경주중 2학년 때까지 외야수였다가 투수 전향을 권유받은 뒤 사이드암 투수로 변신했다. 청소년 대표팀에 선발됐고, 프로행도 유력하다. 오른손 정통파 투수인 이로운은 팔꿈치 통증으로 지난해 11월 이후 한동안 마운드에 오르지 못했다. 하지만 지난 6월 청룡기 대회를 통해 마운드에 복귀하면서 다시 전국구 에이스급 투수로 우뚝 섰다. 대통령배에서 이로운의 투구를 본 D구단 스카우트는 "얼마 전까지 아팠던 선수가 맞나 싶다. 심지어 이 경기는 베스트가 아닌데도 무척 좋았다"고 감탄했다. 이외에 대전고 송영진, 유신고 박시원, 세광고 서현원, 라온고 박명근, 장충고 이진하 등도 눈여겨봐야 할 투수들이다.
배영은 중앙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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