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당 당헌 80조 개정 추진에 비명계 ‘이재명 구하기’ 비판…국민의힘 당헌 바꿔 비대위 띄우자 이준석 거센 반발
#민주당, 당헌 80조 개정 논란
지난 9일 경찰은 ‘법인카드 사적 유용 의혹’ 조사를 위해 이재명 의원의 아내 김혜경 씨에게 출석요구서를 보낸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이 사건에 공직선거법 위반도 포함돼 있어 공소시효(9월 9일) 전에 사건을 결론내고 검찰로 넘길 예정이다. 지난 3일 이 의원은 “대놓고 정치 개입”이라며 “민주당 전당대회에 맞춰 수사를 끝내겠다고 하는데 사실이 아니길 바란다”며 경찰을 겨눈 바 있다.
8·28 전당대회를 앞두고 당헌 80조 개정을 둘러싼 논란이 확산되고 있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 이해할 필요가 있다. 경찰 수사 대상이 될 가능성이 높은 이재명 의원을 보호하기 위해 친명계가 당헌을 바꾸려 한다는 비판이 나온다. 당헌 제80조(부패연루자에 대한 제재) 1항에는 사무총장은 뇌물과 불법 정치자금 수수 등 부정부패와 관련한 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각급 당직자의 직무를 기소와 동시에 정지하고 각급윤리심판원에 조사를 요청할 수 있다고 명시돼 있다.
비명계는 ‘이재명 방탄을 위한 것’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지난 9일 당권주자인 박용진 민주당 의원은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당헌 80조는) 문재인 대통령이 야당 당대표 시절 만든 것”이라며 “여당 됐을 때와 야당 됐을 때 도덕적 기준이 다르다는 내로남불 논란, 사당화 논란에 휩싸이지 않아야 한다”고 비판했다. 역시 당권주자인 강훈식 의원도 “당헌 개정을 추진하는 시기가 적절치 않다”고 지적했다. 지난 11일 조응천 민주당 의원은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서 당헌 개정 움직임을 두고 “나는 정말 좀 창피하다”고 말했다.
지난 11일 우상호 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은 “야당일 때, 특히 지금처럼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법무부 장관의 정치보복 상황을 고려해야 한다. 현재 친명·비명계 할 것 없이 모두 수사 대상이 돼 있다”며 당헌 80조 개정에 찬성 입장을 밝혔다. 지난 5일 신현영 민주당 대변인은 비상대책회의 후 “당헌 개정 청원에 대한 동의가 5만 건을 넘었기에 8월 중순 전준위(전당대회준비위원회)에서 통합적으로 논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앞서 7월 중순부터 전준위는 당헌·당규·당무발전 분과에서 당헌 80조 개정에 착수했다고 알려졌다.
당헌 제80조는 문재인 전 대통령이 새정치민주연합(더불어민주당 전신) 대표를 맡고 있을 때 만들어졌다. 2015년 김상곤 새천년민주당 혁신위원장은 사무총장제 폐지를 비롯해 △부정부패 등으로 직위 상실시 재보선 무공천 실시 △부정부패 연루 당직자의 당직 박탈 등 혁신안 마련에 따른 당헌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당시 김 위원장은 “새로운 시스템 공천은 실력, 도덕, 정체성을 기준으로 삼을 것”이라며 “다음 선거만을 생각하는 기득권 정치인에게는 더 이상의 기회가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공천개혁에 나선 민주당은 이듬해 20대 총선에서 승리했다.
민주당은 지난해에도 당헌 개정을 두고 곤욕을 치른 바 있다. 민주당 당헌 제96조 2항에는 ‘당 소속 선출직 공직자가 부정부패 사건 등 중대한 잘못으로 그 직위를 상실하여 재보궐 선거를 실시하게 될 경우 해당 선거구에 후보자를 추천하지 아니한다’고 명시돼 있다. 민주당은 이 조항에 ‘단, 전당원투표로 달리 정할 수 있다’는 문구를 추가했고, 전당원투표를 통해 지난해 4월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에 후보를 냈다.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과 오거돈 전 부산시장 성비위로 치러진 선거였음에도 당헌까지 바꿔 후보를 냈지만 모두 패했다.
이재명 의원은 당헌 제96조 2항 개정 주장이 나오자 “정말 아프고 손실이 크더라도 기본적인 약속을 지키는 것이 맞다”며 당헌대로 무공천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냈다. 그런데 당헌 80조 개정 관련해서는 지난 11일 “야당 탄압으로부터 모든 민주당 당직자를 보호하기 위한 민주당 구하기 시도”라며 “검찰총장 출신 대통령이 집권함에 따라 검찰의 민주당에 대한 정치보복성 수사가 예상되는 상황이다. 비대위와 전준위가 이러한 상황을 고려해 ‘당헌 80조’ 개정에 대한 논의 및 추진 과정을 진행 중이라는 점을 분명히 말씀드린다”고 말했다.
민주당 한 보좌진은 “당권주자 중에 사법 리스크로 위협을 받는 사람은 이재명 후보뿐이다. 이 후보가 당대표가 된다면 그 리스크는 2024년 총선까지 이어질 것”이라며 “지금은 윤석열 정부의 실책으로 인해서 반사효과를 보고 있지만 이 후보가 당대표가 되는 순간 그 효과가 사라질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현재 수원지검과 경기남부경찰청은 이재명 의원과 관련해 △성남FC 후원금 의혹 △백현동 개발사업 특혜 △경기주택도시공사(GH) 합숙소 선거사무소 사용 △대장동 개발사업 특혜 △부인 김혜경 씨 법인카드 사적 유용 △장남 불법도박 의혹 △변호사비 대납 의혹 △무료변론에 따른 청탁금지법 위반 의혹 등을 수사하고 있다.
#당헌 바꿔가며 출범한 비대위
국민의힘은 당헌을 바꿔가며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로 전환했다. 국민의힘 당헌 제96조 1항 비대위 구성 요건은 ‘당대표가 궐위되거나 최고위의 기능이 상실되는 등 당에 비상상황이 발생한 경우’다. 이준석 대표는 ‘당원권 정지 6개월’ 중징계를 받았지만, 국민의힘은 궐위가 아닌 직무가 정지된 ‘사고’로 규정했다. 이 대표 임기는 내년 6월까지 남은 셈이다. 이를 비상상황으로 볼 수 있을지도 쟁점이다. 또 당헌 제96조 3항에는 비상대책위원회 위원장은 전국위원회의 의결을 거쳐 당 대표 또는 당 대표 권한대행이 임명한다고 명시돼 있다. 권성동 직무대행이 비대위원장을 임명할 권한이 없는 셈이다.
국민의힘은 당헌 개정안 2개를 놓고 논의를 시작했다. 비대위원장 지명권을 ‘직무대행’에게도 준다는 ‘최고위원회의 안’과 당 대표 궐위가 아닌 사고시에는 비대위가 출범하더라도 기존 대표는 그 지위를 유지시키고 복귀시 잔여 임기를 수행할 수 있게 한 ‘조해진·하태경 의원 안’이다. 지난 5일 열린 국민의힘 상임전국위원회에서는 참석 위원 40명 중 26명이 최고위원회의 안을 택했고, 현재의 당 상황을 ‘비상상황’으로 해석해 당헌 제96조 1항 비대위 요건을 충족한다고 의결했다.
이에 대해 지난 7일 이언주 전 의원은 페이스북을 통해 “자기 정치 생명이 끝날 판인데 가만히 앉아서 죽을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라며 “더구나 이준석 대표가 ‘핍박받는 약자’가 돼 몸집이 자꾸 불어나 독자세력화가 얼마든 가능한 상황이다. 왜 이 대표에게 출구조차 열어주지 않고 궁지로 모는지 이해가 안 된다. 이렇게 되면 누구라도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돌아서서 물 수밖에 없지 않느냐”고 말했다.
지난 9일 국민의힘은 당헌 제96조 개정안을 의결하며 비대위 체제 전환을 공식화했다. 제96조 3항에 ‘당 대표 또는 당 대표 권한대행’뿐만 아니라 직무대행에게도 비상대책위원장 임명권을 부여하도록 변경했다. 곧바로 권성동 직무대행은 5선 주호영 의원을 비대위원장으로 임명했다. 비대위 출범으로 인해 이준석 대표는 자동 해임됐다. 8월 12일 주호영 비대위원장은 “(비대위 공식 출범은) 8월 16일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준석계는 비대위 체제 전환에 반발했다. 지난 10일 이준석 대표는 국민의힘과 주호영 비대위원장을 상대로 비대위 전환과 관련해 서울남부지법에 효력정지 가처분신청을 했다. 다음날인 11일 청년당원들을 주축으로 한 ‘국민의힘 바로 세우기(국바세)’도 국민의힘 비대위 출범에 반발하며 효력정지 가처분신청을 법원에 냈다. 국바세에 따르면 집단소송에 당원 1558명이 참여했다. 12일에는 ‘국민의힘 비대위 전환에 반대한다’는 내용을 담은 2502명의 시민 탄원서를 제출했다고 밝혔다. 이 대표는 8월 13일 기자회견을 진행한다. 법원은 8월 17일 이 대표의 효력정지 가처분신청 관련 심문을 진행할 예정이다.
국바세 측은 “이준석 대표 지지를 위해 모인 모임이 아니다. 국민의힘이 위법하게 당헌·당규를 지키지 않고 비대위를 출범했기에 소송에 이르게 된 것”이라며 “정당의 주인은 당원이다. 국민의힘이 추진하는 비정상적인 절차에 의한 당권 쿠데타가 사법적 권리보장의 보루인 법원에 의해 올바로 잡히는 것이 국민의 뜻일 것이다. 사법부의 현명한 판단을 기대한다”고 밝혔다.
가처분 소송 핵심 쟁점은 △당이 비상상황이라는 상임전국위의 유권해석 △사퇴를 선언한 최고위원들의 의결 참여가 절차적 민주주의를 훼손했는지 △비대위 출범으로 인한 대표 자동 해임이 당원 민주주의에 위배되는지 등이다.
국민의힘 한 중진 의원은 “당헌·당규를 함부로 고치면 안 된다. 경찰의 수사 결과 발표 이후에 이준석 대표를 징계했으면 이런 상황이 오지도 않았다”며 “당이 이 대표한테 활로를 열어주지 않으면서 결국 법정공방까지 이어지게 됐다. 법원 판결이 나오기 전까지 당을 수습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최근 여론조사를 보면 가처분신청 인용에 대해 반대보다 찬성 비중이 높다. 법원이 가처분신청을 인용한다면 당이 더 큰 혼란에 빠질 것”이라고 말했다.
허일권 기자 onebook@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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