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면진찰·열치료 없었는데 내역서에 버젓이…병원 측 “진찰료와 비급여항목 있어야 ‘실비’ 잘 나와”
A 씨도 그런 일을 경험했다. 갑자기 목과 어깨에 담이 걸려 목이 잘 돌아가지 않는 증상 때문에 B 정형외과를 찾은 A 씨는 의사 진찰 후 치료가 필요하다는 진단에 따라 당분간 물리치료를 받기로 했다. 물리치료의 일종인 도수치료를 권유 받은 A 씨는 며칠 동안 도수치료를 받기 위해 B 정형외과에 갔다. 도수치료는 정형외과와 신경외과 등에서 행해지고 있는 물리치료의 일종이다. 말 그대로 손으로 하는 치료를 말한다. A 씨는 초진 후에는 특별히 의사 대면 진료 없이 바로 도수치료실로 들어가라는 안내를 받았다.
그런데 보험금 청구를 위해 A 씨가 B 정형외과에서 받은 진료비 세부내역서를 자세히 보니 매회 의사 진찰료와 함께 자신이 받지도 않은 열치료 항목이 포함되어 있었다. 병원에 문의하자 “열치료는 비용이 1000원 내외인 데다 건강보험이 되니 그리 신경 쓸 필요 없고, 의사 진찰 항목은 그날의 도수치료를 받기 위해선 절차상 꼭 필요한 항목”이라는 답변을 받았다. 병원 측은 대수롭지 않은 일처럼 말했다.
실제로 A 씨가 B 정형외과에서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며 한동안 지켜보니 많은 도수치료 환자들이 의사와의 대면 진찰 없이 바로 도수치료실이나 물리치료실로 향했다.
이는 진료비 허위 청구에 해당한다. 치료를 받기 위해 절차상 꼭 필요한 항목이라면 실제로 A 씨에게 매회 의사 진찰이 이루어졌어야 한다. 열치료 역시 실제 행해지지 않고 비용만 청구됐다.
A 씨가 병원에 따져 묻자, 병원은 “원활한 실비(실손의료보험) 청구를 위한 절차”라며 “진료 항목에 의사진찰료와 비급여 항목이 들어가 있어야 실비 보상금이 무리 없이 잘 나온다”고 잘라 말했다. 이어 “의사 진찰료는 급여 항목이라 환자가 부담하는 비용은 3000~4000원에 불과하고, 열치료 역시 1000원 내외다. 이렇게 진료비를 꾸려야 보험사의 컴플레인 없이 안전하게 실비 보상금을 받을 수 있다”고 말하며 ‘환자를 위한 일’임을 강조했다.
진료비 계산서는 대개 급여 항목과 비급여 항목으로 구분돼 있다. 쉽게 말해 급여 항목은 국민건강보험이 적용되는 항목이고 비급여 항목은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항목을 뜻한다. 즉 비급여 항목은 환자가 모두 지불해야 하는 금액이다. 성형외과나 치과, 피부과 등에서 흔히 선택진료비로 통용되는 비용이 대부분 비급여 항목이며 도수치료 역시 비급여 항목에 해당된다.
비급여 항목은 사실 정해진 금액이 없다. 부르는 게 값이다. 병원이 정하기 나름이다. 병원들은 흔히 “주변 병원과 비교해 시세를 맞춘다”고 말한다. 그야말로 ‘시가’다. 비급여 항목에 해당하는 도수치료비는 병원마다 차이가 있지만 최근엔 보통 30분에 8만~10만 원, 1시간에 15만~20만 원 선이다. 실비 보험에서 이를 보장해주지 않는다면 환자에게는 상당히 부담스러운 금액이다.
실비 보험에서 치료 비용을 보장해주다 보니 실비 보험이 있는 환자는 큰 부담 없이 도수치료를 이용할 수 있다. 또 병원에서 의료비를 허위 청구해도 본인이 부담하는 금액은 어차피 정액으로 정해져 있으니 크게 신경 쓰지 않는 분위기다. 보험사에 제출하는 진료비 세부내역서를 꼼꼼하게 보는 환자도 많지 않다. 또 막상 환자가 꼼꼼히 들여다보겠다고 작정해도 의료용어인 치료 항목을 일일이 다 알아볼 수 없는 경우도 많다.
한 물리치료사는 “어차피 의사들은 물리치료사가 하는 도수치료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한다. 의사가 매회 진찰을 한다고 해도 치료가 달라질 게 별로 없다”며 “도수치료가 진전을 보인다고 해도 이를 단기간에 엑스레이(X-ray) 검사로 잘 알 수 없고 물리치료사가 근육 이완 정도나 관절 가동 범위를 보고 판단할 수 있을 뿐이다. 도수치료가 계속 진행되는 상황에서 환자가 꼭 의사 진료를 받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하지만 매번 환자를 진료하지 않고 치료를 시행하는 것이 물리치료 시 관행이고, 의사 진료가 실제 환자 치료에 별 영향을 못 미친다고 해도 이는 명백한 진료비 허위 청구다. 환자에게는 고가의 비급여 진료를 받도록 하면서 건강보험공단에는 하지도 않은 진찰료 명목으로 급여 청구를 하기 때문이다.
급여 항목은 본인 부담금과 공단 부담금으로 나뉜다. 허위 청구된 의사 진찰료의 일부는 환자가, 일부는 공단이 부담하게 된다. 환자가 실비 보험을 청구한다면 보험사가 환자 측 부담금을 부당하게 부담하게 되는 셈이다.
진료비 허위청구가 발각되면 법적·행정적으로 처벌의 수위가 가볍지 않다. 국민건강보험법에 따르면 속임수나 그 밖의 부당한 방법으로 보험자·가입자 및 피부양자에게 요양급여비용을 부담하게 한 경우 업무정지를 명할 수 있고 부당 청구 금액의 5배 이하의 금액을 과징금으로 부과할 수 있다.
또 의료법에 따르면 의사의 자격을 정지하는 행정처분이 내려지거나 사기죄로 추가 형사 처벌을 받을 수도 있다. 의사에게 징역형이나 집행유예가 선고되면 병원 개설허가를 취소하거나 의료기관 폐쇄 처분이 내려지기도 한다.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많은 병원에서 이러한 관행이 너무나 아무렇지 않게 이루어지고 있다. 환자와 보험사가 모르는 사이 병원 이익만 늘어난다. 환자 입장에서는 실비 보상금으로 되돌려 받기 때문에 별 문제 없이 받아들일 수 있지만 실비 보험료 인상으로 결국 환자의 부담도 늘어난다.
한편 정부는 2022년 하반기에 진료비 이중청구와 허위청구 등에 대해 현지조사를 실시한다고 예고했지만, 현실적으로는 환자의 협조가 일일이 이루어져야 하는 조사인 만큼 제대로 된 조사가 이루어질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이송이 기자 runaindia@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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