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엽·정근우 등 국가대표 출신이라면 예능 말고 현장에서 노하우 전수해야”
2017년 5월 23일 한화 이글스 감독직에서 물러난 김 전 감독은 2018년 일본 프로야구 소프트뱅크 코치 고문으로 지도자 생활을 이어갔다. 2020년에는 1군 코치 고문으로 승격됐고, 2022시즌부턴 감독 특별고문으로 정식 1군 코칭스태프에 합류, 등번호 71번을 단 유니폼을 입고 직접 선수들을 가르친다.
1942년생 만 80세의 나이에도 여전히 현장에 있는 김성근 소프트뱅크 감독 고문과 오랜만에 전화 인터뷰를 가졌다.
김성근 소프트뱅크 감독 고문이 몸담고 있는 소프트뱅크 호크스는 8월 11일 현재 일본 프로야구 퍼시픽리그 2위를 차지하고 있다. 1위 세이부 라이온스와 0.5게임 차. 지난 시즌 성적에 비하면 한층 안정된 경기 운영을 이어가는 중이다.
소프트뱅크는 쿠도 기미야스 감독이 사령탑에 있었던 최근 7년간 총 세 차례 퍼시픽리그 우승을 차지했고, 재팬시리즈에선 무려 5번의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그러나 지난해 60승21무 52패로 부진을 거듭하자 쿠도 감독은 자진 사퇴했고, 이후 3군, 2군 감독을 역임한 후지모토 히로시를 신임 감독으로 선임, 팀 분위기를 빠르게 수습했다.
김성근 감독 고문은 2018년부터 일본 프로야구 소프트뱅크에서 코치 고문이라는 특별한 보직을 맡았다. 개인적인 인연이 있었던 오사다하루(왕정치) 회장의 부탁을 받고 일본으로 향했던 것. 2022년부터는 공식 코칭스태프에 합류하면서 등번호 71번이 달린 유니폼을 입고 선수들을 지도하는 등 활동 영역을 넓혔다.
김 감독 고문과 전화 인터뷰가 이뤄진 날은 소프트뱅크가 전날 삿포로에서 니혼햄과 원정 경기를 마치고 이동한 날이었다. 김 감독 고문과 소프트뱅크 선수단은 삿포로 원정 호텔에서 오전에 출발해 차로 1시간 20분 거리의 삿포로 공항으로 이동했다가 2시간 40분 후 후쿠오카 공항에 도착해선 곧장 홈구장으로 이동, 야구장에서 간단한 식사 후 그날 있을 홈 경기를 위해 훈련에 나서는 강행군을 소화했다. 김 감독 고문은 “일본 프로야구에선 흔히 볼 수 있는 스케줄”이라고 한다.
“여기선 이동하는 날 경기를 치르는 게 자연스럽다. 선수들도 그런 고된 일정에 익숙한 터라 몸은 고달파도 힘들다고 하소연하지 않는다.”
김 감독 고문은 처음 소프트뱅크와 인연을 맺을 때만 해도 1, 2년 있다가 한국으로 돌아갈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실제 그런 움직임도 있었지만 번번이 구단의 만류로 일본에 남을 수밖에 없었다는 것.
“지난 시즌 마치고도 일본 생활을 정리하려 했는데 자진 사퇴한 쿠도 감독도 팀에 남아 달라고 부탁했고, 왕정치 회장이 계속 있어달라고 손을 잡는 바람에 팀에 남은 것이다. 얼핏 보기엔 나 같은 사람이 이 팀에 무슨 도움이 될까 싶은데 팀에선 내가 필요하다고 한다. 짧게 있다가 돌아가려 했던 게 어느새 5년이란 시간이 흘렀다.”
소프트뱅크가 최근 7년 동안 재팬시리즈에서 다섯 차례나 우승했을 정도로 강팀의 면모를 보이다 지난해 성적을 내지 못한 이유가 궁금했다. 김 감독 고문은 우승의 후유증이라고 설명한다.
“팀이 정상에 오르려고, 그 정상 자리를 지키기 위해 무리했던 부분이 있다. 여러 차례 우승으로 인해 부상 선수들이 속출했다. 그에 대한 준비와 보강을 하지 않다 보니 지난 시즌 힘든 시간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 육성과 성적을 동시에 이루기란 어려운 일이다. 내가 SK를 맡을 당시 우린 육성이 아니라 승부를 위해 싸웠다. 베테랑 선수들을 배제하거나 일찍 은퇴시키지 않고 나이 어린 선수들이 성장하는 동안 베테랑 선수들이 중요한 역할을 해줬다. 즉 신구조화를 이룬 것이다. 세대교체한다는 명목하에 노장 선수들을 버렸다면 SK는 우승을 이루지 못했을 것이다. 육성과 세대교체가 말처럼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김 감독 고문은 올 시즌을 마치고 은퇴를 예고한 이대호(롯데)의 행보에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이대호는 2014년부터 2년간 소프트뱅크 주포로 활약했고 2년 연속 팀을 재팬시리즈 우승으로 이끈 바 있다. 2015년에는 재팬시리즈 최우수선수(MVP)에 오르기도 했다.
“우리 팀에 야나기타 유키라는 선수가 있는데 이 선수가 가장 존경하는 야구선수가 이대호다. 이대호는 소프트뱅크에서 그 정도의 위치에 있던 선수였다. 손목이나 팔 스윙의 부드러움 덕분에 지금까지 주전선수로 활약한다고 본다. 지난해 이대호랑 통화한 적이 있었다. 내년 시즌 마치고 은퇴할 예정이라고 해서 왜 은퇴하려는지를 물었다. 친구들이 대부분 은퇴했고, 주위에서 은근히 은퇴를 부추기는 시선도 있다고 말하더라. 이번에 은퇴한 박용택도 마찬가지다. 기량만 봤을 땐 충분히 더 선수로 뛸 수 있었다. 하지만 노장들은 어느 순간부터 눈치를 보게 된다. 박용택도 그런 갈등 속에서 은퇴를 택했을 것이다.”
김 감독 고문이 실력이 뛰어난 베테랑 선수들의 은퇴에 대해 목소리를 높이는 건 분명한 이유가 있었다.
“현재 한국 프로야구를 보면 아직 1군에서 뛸 만한 실력이 안 되는 선수인데도 1군에서 공을 던지는 경우가 있다. 그러다보니 경기 내용이 떨어진다. 조금만 잘하면 태만해진다. 이런 악순환이 반복되면서 야구의 재미, 흥미가 감소한다. 결국 야구장을 찾는 팬들의 숫자가 적어지는 것이다. 야구가 있어야 자리에 있는 것이지, 야구가 없다면 그 자리도 없는 것 아닌가. 구단이나 선수들이 팬들의 고마움을 알아야 한다.”
내년 3월에 시작하는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대회와 관련해서도 질문을 이어갔다. 일본은 일찌감치 쿠리야마 히데키를 대표팀 감독에 선임했고, 쿠리야마 감독은 역대급 대표팀 구성을 위해 현재 미국 메이저리그에서 활약 중인 일본인 선수들을 직접 만나 대화를 나누고 있는 중이다. 다르빗슈 유(샌디에이고 파드리스), 오타니 쇼헤이(LA 에인절스), 스즈키 세이야(시카고 컵스) 등 주요 선수들에게 WBC 대회 출전을 설득 중이라는 후문이다.
일본 프로팀에선 ‘괴물 투수’로 알려진 사사키 로키(치바롯데 마린스)의 대표팀 합류가 유력하다. 김 감독 고문은 사사키 로키에 대해 향후 메이저리그 진출 시 오타니 쇼헤이 정도의 활약을 펼칠 가능성이 농후한 뛰어난 투수라고 설명했다.
“치바롯데에선 사사키의 성장과 육성을 위해 1년 동안 시합에 출전시키지 않았다. 구속과 제구를 잡기 위해 구단에서 특별관리를 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로 인해 160km/h의 속구를 던지게 됐고, 제구도 잡았다. 나이 어린 선수들이 프로에 입단하면 가장 먼저 몸을 만들어야 한다. 체력을 만든 다음 기술적인 완성도를 꾀할 수 있는 것이다. 과연 한국 프로야구는 어린 선수들에게 이런 인내심을 발휘할 수 있을까 싶다.”
김 감독 고문은 지난해 일본 도쿄 올림픽에서 한국 대표팀의 성적을 언급하며 한국 야구가 어느 순간부터 제자리에 머물러 있다며 쓴소리를 날렸다.
“일본대표팀의 감독과 코치들이 이정후에 대해 칭찬을 많이 했는데 조금 더 성장해야 한다. 구자욱은 여전히 그 자리에 머물러 있는 것 같다. 한국 타자들은 에이스급의 좋은 투수를 만나면 제대로 공략하지 못했다. 투수들도 힘 있는 타자와 맞붙으면 컨트롤 난조를 보였다. 한국 야구가 어느 순간부터 우물 안에서만 야구하는 것 같다. 세계적인 수준의 야구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김 감독 고문은 최근 인기리에 방영 중인 야구 예능 프로그램 ‘최강야구’ 출연 선수들에 대해서도 분명한 메시지를 전했다. ‘몬스터즈’ 팀 감독을 맡고 있는 이승엽과 선수로 뛰고 있는 정근우 등 국가대표 출신들은 예능보다 현장으로 돌아가 후배들에게 도움을 줘야 한다는 내용이다.
“지난해 이승엽 만났을 때도 물었다. 왜 현장으로 돌아가지 않느냐고. 쓸데없는 일 하지 말고 빨리 돌아가라고 말했다. 예능 출연이 좋다 안 좋다 문제가 아니라 대표팀 출신이라면 그래도 야구의 길을 가야 한다고 본다. 이들의 경험과 노하우가 현장에서 발휘돼야 하는 것이다.”
인터뷰 말미에 언제쯤 일본 생활을 정리하고 한국으로 돌아올지 물었다. 김 감독 고문은 “소프트뱅크에서 5년 정도 했으니까 이젠 쫓아내지 않겠느냐”며 웃음을 보인 뒤 “남의 집에서 일하는 게 쉽지 않다”는 말로 대답을 대신했다.
이영미 스포츠전문기자 riveroflym@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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