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8월10일 신세계백화점 본점 개점행사에 참석한 정용진 부사장. 최근 그의 경영승계작업이 본격화됐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우태윤 기자 wdosa@ilyo.co.kr | ||
신세계 오너인 이명희 신세계 회장의 장남인 그는 사촌인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아들 이재용씨가 재산승계 과정을 둘러싼 법적 공방으로 마음고생을 하고 있는 가운데서도 별 무리없이 재산승계 작업을 차착 진행해가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좋은 일만 있는 것은 아니다. 전처인 탤런트 고현정씨가 광고 모델을 한 사진이 신세계 매장에서만 보이지 않는다는 구설수에 곤욕을 치르고 있기도 하다.
그래도 정 부사장의 처지는 삼성과 이건희 회장 부자에 비할 바가 아니다. 2세 승계를 눈앞에 둔 재벌그룹에선 삼성그룹 사태에서 빚어진 편법 상속 논란과 반기업정서의 후폭풍이 불까봐 바짝 긴장하고 있다. 지금 삼성이 짊어진 짐이 향후 2세 승계를 해야할 그룹에서 반복될 여지가 크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 부사장과 신세계는 오히려 최근 경영승계에 가속 페달을 밟고 있다. 정 부사장의 지분 확대가 눈에 띄게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삼성그룹이 다소 주춤거리는 사이 ‘작은집’격인 신세계는 정 부사장의 후계 승계 작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는 평이다.
정 부사장은 지난 9월12일부터 23일까지 신세계 주식을 대량 매입했다. 지분율 0.2%인 3만7천6백 주를 사들여 자신의 신세계 지분을 4.8%(9백17만1백 주)로 늘렸다. 정 부사장의 주식 매입 시점 당시 신세계 주가가 39만원선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정 부사장은 이번 주식 매입에 1백50억원가량을 쏟은 셈이다. 이로써 정 부사장은 어머니인 이명희 회장(15.3%)과 아버지인 정재은 신세계 명예회장(7.8%)에 이어 3대 주주 자리를 확고히했다.
신세계측은 이번 주식 매입을 당장 후계구도와 연관짓는 시선에 대해 고개를 가로젓지만 정 부사장의 승계 작업이 급물살을 탔다는 게 재계의 중론이다. 정 부사장은 지난 3월 중국 이마트 3호점 개점식에 참석했는가 하면 지난 8월 신세계백화점 본점 개점행사에 모습을 드러내며 후계자로서의 위상을 다지고 있다. 최근엔 신세계 본사와 이마트에 번갈아 출근하며 경영감각을 넓히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정 부사장 보유 지분은 지난 98년 어머니인 이명희 회장으로부터 신세계 주식 50만 주를 물려받은 이후 수년간 큰 변동이 없었다. 그의 지분 확대에 가속이 붙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 초부터. 정 부사장은 지난해 1월 신세계 주식 10만6천5백 주를 사들였다. 당시 주가가 25만원선이었기 때문에 2백60억~2백70억원가량을 투자한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7월엔 신세계 주식 3만3천6백 주를 사들였는데 이때 주가는 27만원선이었다. 약 90억원이 소요된 것. 지난해 1월부터 올 9월까지 세 차례의 집중적 주식 매입에 쏟아부은 금액만 5백억원이 넘는 셈이다.
이에 대해 신세계측은 정 부사장의 연봉과 주식배당금 등으로 이뤄진 것이라 설명한다. 2년 사이 5백억원 정도 주식 매입에 투자할 여력은 되고도 남는다는 것이다.
이명희 회장으로부터 신세계를 물려받을 것으로 보이는 정 부사장의 주식 확보과정에 편법 증여 논란은 일어나지 않고 있다. 정 부사장이 삼성그룹과 같은 홍역을 치르지 않고 최대주주가 되려면 증여세를 다 내고 지분 상속을 받거나 장내시세대로 주식 매집을 해야한다. 현재 40만원대까지 치솟은 신세계 주가를 봤을 때 이명희 회장이 지분 증여를 하게 되면 엄청난 증여세를 내야 할 처지다.
장내시세대로의 주식 매입도 만만치 않다. 정 부사장은 최근 신세계 지분 0.2%를 늘리는 데 1백50억원을 투자해야했다. 현재 4.8%인 지분을 최대주주인 이명희 회장 수준(15.3%) 수준으로 끌어올리려면 천문학적인 금액이 동원돼야 한다.
이에 대해 재계 일각에선 정 부사장이 최대주주로 있는 광주신세계가 일정 역할을 해줄 것이란 관전평을 내놓는다. 정 부사장이 52%가량(83만3천 주)을 보유하고 있는 광주신세계는 지난 95년에 설립돼 2002년 상장됐다. 상장 당시 유상증자 가격은 1주당 3만3천원이었는데 최근에 급등해 주가 13만원대를 기록하고 있다. 신세계 후광을 업은 데다 올 상반기 4백84억원 매출에 1백24억원의 영업이익을 낸 것이 반영된 것이다.
덕분에 정 부사장은 올해 재벌2세들 중 가장 많은 주식평가이익을 올린 인물이 됐다. 지난달 증권선물거래소가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정 부사장 소유 주식 전체평가액이 연초 2천8백1억원에서 9월22일 현재 4천6백44억원으로 치솟았다. 올해에만 1천8백42억원의 평가이익을 낸 것.
이는 곧 ‘광주신세계 같은 알짜 계열사 수익이 정 부사장의 신세계 지분 매집 비용으로 이어질 것’이란 관측을 낳게 한다. 광주신세계가 신세계의 지점 형태가 아니라 정 부사장이 최대주주로 있는 독자법인 형태이기 때문에 고스란히 그 수익금이 정 부사장에게 가기 때문이다. 즉, 광주신세계의 수익 신장과 사업 확대가 결국 정 부사장의 신세계 지분 확보와 경영권 승계를 위한 ‘실탄’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현재 정 부사장의 광주신세계 지분을 모두 처분해도 신세계 지분과 비교하면 약 1.5%밖에 안된다. 그러나 광주신세계는 현지에서 34%의 시장점유율을 차지하고 있으며 내년엔 5천평 규모 이마트 광주점 오픈과 내후년 복합쇼핑센터를 준비하는 등 공격적 경영에 나서고 있다. 광주신세계의 규모와 실적이 커지는 동시에 정 부사장의 신세계 지분이 늘어나게 되면 ‘광주신세계가 정 부사장 경영승계를 위한 종잣돈’이란 관전평은 계속해서 나올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