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손보험 환자 치료 유도, 통원비 상한선 꽉 채워 처방…횟감처럼 ‘시가’ 우스갯소리까지
#치료 전 보험부터 확인
비급여는 건강보험 혜택이 적용되지 않아 치료비 전액을 환자가 부담하게 되는데, 비급여 항목에 들어가는 도수치료의 경우 실손의료보험의 혜택을 받을 수 있다. 그러다 보니 병원에선 환자가 진료 접수를 할 때부터 실손보험이 있는지부터 확인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나이, 생년월일, 전화번호 등을 적는 접수표에 아예 실손보험 여부를 체크하게 하거나 간호사가 접수 시 구두로 물어보는 경우도 많다.
도수치료는 보통 30분에 8만~10만 원, 1시간에 15만~20만 원가량 드는 고가의 치료인데 한 번 치료가 시작되면 주 2회 정도의 주기적 치료가 요구되기 때문에 실손보험이 없는 환자가 치료를 결정하기는 비용 면에서 쉽지 않다. 때문에 병원에서는 환자 진료 후 도수치료를 권유하기 앞서 실손보험 유무부터 확인하는 것이 관행처럼 되어 있다.
실손보험이 있다면 보험사의 정책과 보험 종류에 따라 환자는 80~90%의 의료 실비를 보장받을 수 있다. 또 실손보험에서는 하루 통원진료비에 대해 보통 20만~30만 원가량 보장하고 있어서 환자는 전체 치료비의 10~20%만 부담하고도 도수치료를 받을 수 있다. 그러다 보니 병원에서는 환자에게 하루 통원비 상한을 먼저 확인하고 이를 꽉 채워 치료 처방을 내는 곳도 있다. 반대로 실손보험이 없는 환자에게 도수치료는 필요해도 받기 어려운 치료가 됐다.
병원의 위치와 규모에 따라서는 임대료가 높거나 병원의 규모가 크면 치료의 질과는 무관하게 도수치료비가 올라가기도 한다. 강남 요지에 위치한 병원에선 도수치료 1시간에 30만 원을 받는 곳도 있다.
고가의 도수치료비는 고스란히 병원의 수입이 된다. 도수치료가 실손보험에 적용되고 이를 활용하는 환자가 많아지면서 도수치료비는 재활의학과와 정형외과의 주요 수입원이 되고 있다. 때문에 상당수의 병원들이 실손보험이 있는 환자들을 은근히 도수치료로 유도하기도 한다.
한 물리치료사는 “솔직히 재주는 물리치료사가 부리고 돈은 의사가 챙긴다”며 “물리치료사는 연차에 따라 급여가 다르다. 신입들은 기본급만 받기도 하고 연차가 오래되고 단골 환자가 많은 물리치료사는 기본급에 10~20%의 인센티브를 더 받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수익은 병원이 가져간다. 몸을 써서 해야 하는 힘든 도수치료는 물리치료사가 다 하는데 의사는 가만히 앉아서 80~90% 수익을 챙겨가는 셈”이라고 말했다.
도수치료를 받는 환자 대다수가 실손보험에 치료비를 의존한다는 점에서 병원의 수익으로 직결되는 도수치료비의 80~90%를 보험사가 부담하는 셈이다. 이는 다시 실손보험을 든 고객의 부담으로 귀결된다. 실손보험료가 오를 수밖에 없는 이유다.
#진료와 치료가 따로따로
최근엔 휴대폰과 노트북 사용의 증가로 거북목과 일자목 등으로 인한 어깨와 목의 통증, 두통을 호소하는 사람이 많다. ‘X-ray(X선 촬영)를 찍으면 무조건 하나는 나온다’는 말까지 있다. 외상이나 큰 증상 없이도 진단명이 쉽게 나온다는 뜻이다. 의사는 간단한 진료 후 도수치료를 권하는 사례가 많다. 도수치료는 물리치료사가 한다.
목 통증으로 재활의학과를 찾은 A 씨는 일자목 진단을 받고 도수치료를 하게 됐다. 그런데 도수치료실에 들어간 A 씨는 아무것도 모르고 있는 물리치료사에게 다시 한번 자신의 증상을 상세히 설명해야 했다. 알고 보니 물리치료사에게 자신의 진료차트가 전달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A 씨는 의사에게 진료를 받고 X-ray까지 찍었지만 물리치료사에게는 X-ray 결과지조차 전달되지 않았다.
의아하게 생각한 A 씨가 물리치료사에게 물으니 “의사들은 물리치료사가 하는 도수치료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에 어차피 차트가 전달돼도 물리치료사는 다시 환자에게 증상을 물어야 하고 물리치료사가 도수치료의 방향을 정해 치료하게 된다”며 “X-ray 결과만으로 명확하게 알 수 없는 증상도 많은 데다 실질적으로 치료는 환자와의 세세한 소통을 통해 이뤄진다. 물리치료사는 의사의 진단과는 또 다르게 나름의 진단을 통해 치료를 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한 정형외과 의사는 “의사들 대부분이 도수치료에 대해서는 사실 자세히 모른다. 물리치료사에 전적으로 맡기는 경우가 많다”며 “환자들의 피드백을 통해 치료가 잘 되고 있는지 아닌지 알 수 있을 뿐”이라고 말했다.
#체외충격파 끼워 팔기?
병원 수익을 더 높이기 위해 도수치료와 함께 기계치료인 체외충격파를 처방하는 병원도 많다. 체외충격파는 기계가 내보내는 충격파를 통해 통증 부위에 자극을 줘 통증을 감소하고 신체 기능을 개선하기 위한 치료법이다. 체외충격파는 고가의 장비를 이용한 치료로 이 역시 비급여이기 때문에 도수치료처럼 병원 마음대로 치료비를 책정한다.
체외충격파는 타수로 계산되는데 보통 10~15분 치료에 병원에 따라 비용이 천차만별이다. 일요신문이 10여 개의 병원을 조사했을 뿐인데도 체외충격파의 치료비는 최저 3만 원에서 최고 14만 원까지 치료비의 폭이 컸다.
실제로 강남의 한 재활의학과에선 A 씨에게 실손보험 여부와 상한선을 확인한 후 도수치료 스케줄이 여의치 않자 10분에 14만 원인 체외충격파를 처방했다. A 씨는 이전에 체외충격파 치료 경험이 없어 의사의 처방대로 치료를 받았다. 하지만 고가의 치료비에 비해 엉성한 치료에 실망을 금치 못했다.
물리치료사들의 말에 따르면 체외충격파는 해부학 지식이 풍부하고 경력이 많은 물리치료사가 진행해야 효과를 볼 수 있고 장기적으로 진행해야 한다. 또 간호사나 간호조무사 등이 시술하는 건 불법이다. 하지만 도수치료 스케줄이 꽉 차 있던 해당 병원에서 A 씨는 간호사에게 체외충격파 시술을 받았다.
체외충격파는 도수치료에 비해 손이 덜 가지만 치료비는 높다. 일부 병원에서는 실손보험이 보장해주는 일일 통원비를 상한까지 채워 받기 위해 환자가 모르는 사이 불필요한 체외충격파 처방을 끼워 넣기도 한다.
하지만 이 같은 병원의 폭리나 불법 시술이 당국의 제재를 받는 일은 드물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는 건강보험이 적용되는 ‘급여’ 항목에 대한 관리만 할 뿐 비급여 항목에 대해서는 관여하지 않는다는 입장이다. 보건복지부 역시 병원의 비급여 치료비에 대한 뚜렷한 관리 방안이 없는 실정이다.
의료법 제45조에는 ‘비급여 진료비용 공개제도’가 있다. 보건복지부가 건강보험심사평가원과 함께 의료기관에서 제출한 가격 등의 정보를 확인해 공개하는 제도다. 해당 의료기관의 적정한 비급여 제공과 의료기관을 이용하는 환자의 합리적인 선택에 도움이 되고자 하는 취지다. 하지만 보건복지부가 도수치료를 비롯한 비급여의 액수까지 관여하고 있지는 않다는 점이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이송이 기자 runaindia@ily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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