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정치인 이준석 전 대표는 한국 정치의 미래라는 생각을 했었다. 수액이 다 빠진 고목 같은 정당에 생기를 불어 넣어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아침이슬도 오물 독에 빠지면 악취를 풍기는 것일까. 한 원로 정치인이 라디오방송에서 당사에서 이준석 전 대표를 만나도 그가 인사하는 걸 못 봤다고 했다. 겸손하지 못하다는 평가였다. 자칫하면 오만으로 갈 수도 있었다.
또 다른 정치인은 그가 나이는 어려도 짧은 기간 동안 노련한 정치 술수를 너무 많이 배웠다고 했다. 꽃이 피기도 전에 썩을 수 있듯이 일찍 권력을 맛보면 그럴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이준석 전 대표의 설익은 행동들에 대해 대통령은 어떻게 대할까. 내가 경험한 비슷한 상황이 있었다.
김대중 대통령 시절 젊은 김홍신 의원이 공개 연설 석상에서 “김대중 대통령은 거짓말을 많이 해서 염라대왕이 하듯 그 입을 바늘로 꿰매야 한다”고 했다. 그는 대통령이 거짓말을 하도 많이 해서 아예 공업용 미싱으로 입을 드르륵 박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그 말이 파문을 일으키고 김홍신 의원이 법정에 섰다. 내가 그 변호인이었다.
수사기록을 보니까 고소인이 자연인 김대중이었다. 이름 옆에 찍힌 개인도장도 막도장이었다. 고소했다는 사실이 납득이 되지 않았다. 목숨이 위험한 수많은 고비를 겪었어도 정치보복을 하지 않은 대통령이었다. 자기를 고문했던 정보부 수사관도 용서했다. 개인적으로 친했던 젊은 국회의원의 한마디에 발끈하고 형사고소할 사람이 아니었다.
이럴 때 담당 변호사는 그 고소가 진정한 것인지 확인할 법적의무와 권리가 있었다. 나는 진짜 고소했는지 알기 위해 김대중 대통령을 증인으로 신청했다. 재판장은 어떻게 대통령을 법정에 부르느냐고 기각했다. 나는 다음으로 그 고소장 작성에 관련된 비서실장을 증인으로 신청했다. 한편 나는 다른 계통으로 당시의 김대중 대통령이 측근에게 보인 반응을 알아보았다.
“대통령이 그런 말이 있었다는 보고를 받으시고 슬며시 웃으시면서 ‘공업용 미싱에 박히니까 입술이 근질거리네’라고 하셔서 옆에서들 함께 웃었죠.”
역시 대단한 정치인이었다. 모욕을 위트로 변질시킨 것이다. 그런데 이상한 건 그렇게 끝나지 않고 재판이 시작된 것이다. 나는 증인으로 나온 비서실장에게 고소장에 찍힌 개인 김대중의 막도장 자국을 보이면서 물었다.
“이거 대통령 개인 도장 맞습니까?”
“비밀이라 확인시킬 수 없습니다.”
“대통령이 고소하라고 지시했습니까?”
“그것도 말할 수 없습니다.”
나는 신문의 한계를 넘어 상대방을 압박했다.
“대통령 눈치를 보고 알아서 긴 건 아닙니까? 그럴 대통령이 아닌데 비서실장이 과잉 충성에 독단적으로 고소 공작을 벌였다고 보는데 뭐라고 대답하시겠습니까?”
“그 그건 아닙니다.”
비서실장이 완연히 당황한 모습이었다. 속이 타는지 게처럼 입가에 하얀 거품이 번지고 있었다. 그가 손수건을 꺼내 입을 닦고 말했다.
“아닙니다. 내가 마음대로 고소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대통령이 겉으로는 재치 있게 위트로 넘기고 뒤로는 혼을 내라고 했다는 거네요?”
그는 어쩔 줄을 몰랐다. 그쯤에서 추가 신문을 끝내버렸다. 고소 행위 자체를 정권의 망신으로 만들어 버린 것으로 충분하다는 생각이었다. 상황을 파악한 재판장이 관대한 형을 선고할 게 분명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지금의 윤석열 대통령은 이준석 전 대표를 어떻게 할까. 얼마 전 검사 시절 윤석열 대통령이 존경하던 상관으로부터 사석에서 이런 말을 들었다.
“윤석열 검사는 보스 같은 기질을 가지고 있었어. 공부를 잘하니까 검사가 됐지 그렇지 않았다면 아마 조직 보스쯤 되어 있을지도 몰라.”
저항과 배신을 과감히 용서하고 품는 인격을 말한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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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상익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