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준표, 윤석열 엄호하며 여권 ‘키맨’ 부상…실점 많은 ‘윤핵관’ 녹다운은 아니지만 단일대오 흔들
#휘청거리는 철석연대
윤석열 대통령은 2021년 7월초 안철수 의원(당시 국민의당 대표)를 서울 광화문 한 식당에서 만났다. 윤 대통령이 정치를 하겠다고 선언한 직후로, 국민의힘 입당 전이었다.
이날 회동에서 윤 대통령과 안 의원은 야권통합, 정권교체 등에 공감대를 형성했다. 국민의힘 입당(윤석열) 및 국민의힘과의 합당 논의(안철수)를 하고 있던 둘이 이를 일단 접고 공동전선을 먼저 형성하려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제기됐다. ‘철석연대를 통해 야권 빅텐트를 칠 것’이라는 전망이 꼬리를 물었다. ‘철석연대’가 본격적으로 가시화하된 것도 이때부터다.
이후 윤 대통령이 국민의힘으로 입당하고 안 의원은 국민의당 대선 후보로 독자 출마하면서 철석연대는 없던 일이 되는 듯했다. 그러나 결국 철석연대는 부활했다. 둘이 대선 기간 단일화에 성공하면서다.
윤 대통령과 안 의원은 대선을 불과 일주일도 남기지 않은 3월 3일 공동 기자회견을 통해 “안철수 후보 사퇴, 그리고 윤석열 후보로의 단일화”를 전격 선언했다. 대선 본투표를 엿새, 3월 4일 시작되는 사전투표를 불과 하루 남긴 시점이었다. 투표용지는 이미 인쇄된 상태였고 재외투표는 마무리된 상황이었던 만큼 벼랑 끝 단일화였다.
단일화는 윤 대통령의 대선 승리라는 해피엔딩을 이뤄냈다. 단일화 효과를 두고 정가에선 갑론을박이 벌어지기도 했다. 단일화가 오히려 윤 대통령 표를 갉아먹었다는 주장이 나왔던 것이다. 하지만 윤 대통령 측은 대선 결과가 초박빙이었던 것을 떠올리며 “안 의원과의 단일화가 신의 한 수”라고 자평했다. 윤 대통령은 안 의원을 대통령직인수위원장으로 발탁하면서 이에 보답했다.
그러나 윤 대통령 임기 초반 지지율 급락으로 공동창업 간판은 상당 부분 빛이 바랜 상태다. 둘이 손잡고 만든 공동정부 개업 효과가 임기 초반인데도 불구, 전혀 나타나지 않으면서 ‘철석연대’의 위상을 최근에는 거의 찾아보기 어려운 실정이다. 심지어 여권 일각에서는 안철수 인수위 체제에서 국정 과제를 제대로 잡지 못한 데다 인사 준비까지 제대로 못해 임기 초반이 어렵게 됐다는 ‘인수위원장 책임론’까지 나온다.
국민의힘 한 의원은 “안 의원이 이끌던 국민의당과의 합당으로 국민의당 소속이었던 권은희 의원은 국민의힘과 이제 한솥밥을 먹고 있다. 그런데 경찰국 신설 과정에서 권 의원의 발언은 선당후사의 모습이 아니었고, 윤석열 정부를 더욱 곤혹스럽게 만들었다”며 “안 의원이 이 정도는 블로킹을 해줬어야 하는데 이런 역할이 없으니 답답하다”고 말했다.
철석연대가 휘청거리면서 안 의원 위상도 당내에서는 더 이상 대통령직 인수위원장 급이 아니라는 의견이 주를 이룬다. 비대위 체제 가동 직후 주호영 비대위원장의 말을 들어보면 이런 상황을 읽을 수 있다.
주 위원장은 안철수 의원이 ‘혁신위를 없애고 비대위 체제로 일원화하자’는 취지의 주장을 편 데 대한 의견을 묻자 8월 18일 기자들에게 “내일 최재형 당 혁신위원장으로부터 혁신위 활동에 대해 보고를 받도록 돼 있다. 저는 비대위와 혁신위가 각각의 역할이 있고 활동 공간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혁신위가 활발히 활동해주기를 기대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안 의원의 혁신위 해체 요구를 사실상 일축해버린 셈이다.
#표석연대 등장하나
대선과정에서 윤 대통령과 날 선 경쟁을 벌였던 홍준표 대구시장이 최근 잇따라 윤 대통령 엄호사격에 나서는 것은 남다른 의미가 있다는 게 정가의 분석이다. 특히 홍 시장은 다른 정치인을 엄호하는 후방 지원사격형이 아닌 전형적인 최전방 공격형 파이터에 가깝다. 그런 그가 최근에는 깜짝 놀랄 만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때문에 새로운 ‘표석연대’ 구도가 꾸며지는 것 아니냐는 의견이 나온다.
홍 시장은 연일 현직 대통령을 공격하며 윤 대통령에게 부담스러운 존재가 되고 있는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와 관련, 8월 15일 “더 이상 이준석 신드롬은 없다”고 말하며 이 전 대표의 정치적 위상에 대한 종결선언을 내렸다. 홍 시장은 페이스북 글에서 “막말을 쏟아내면서 떼를 쓰는 모습은 보기에 참 딱하다. 이제 그만 새로운 변화에 적응하고, 보다 성숙되고 내공 있는 모습으로 돌아오라”고 언급, “이 (전) 대표는 정치권 일시 퇴장감”이라고 몰아세웠다.
홍 시장은 이보다 앞선 8월 13일에도 국민의힘 현 상황에 대해 이 전 대표 책임론을 제기했다. 이날 자신이 만든 온라인 플랫폼 ‘청년의꿈’에서 홍 시장은 ‘이 XX 저 XX 하는 사람을 대통령 만들기 위해 열심히 뛰었다’고 말한 이 대표를 향해 “왜 그런 욕을 먹었는지도 생각해봤으면”이라고 했다.
홍 시장은 ‘이준석 사태’ 초기부터 일찌감치 이 전 대표 반대편에 서서 윤 대통령을 옹호해왔다. 그는 지난 8월 5일 SNS를 통해 “당 대표가 이유가 무엇이든 간에 징계를 당하고 밖에서 당과 대통령에 대해 공격하는 양상은 사상 초유의 사태로 꼭 지난 박근혜 탄핵 때를 연상시킨다”며 “이미 이준석 대표는 정치적으로 당 대표 복귀가 어렵게 됐다. 자중하시고 사법 절차에만 전념하시라고 그렇게도 말씀드렸건만 그걸 참지 못하고 사사건건 극언으로 대응한 것은 크나큰 잘못”이라고 질타했다.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와 윤 대통령 간 문자 대화가 언론 보도를 통해 노출된 직후인 7월 27일에는 홍 시장이 윤 대통령을 직접 엄호하는 듯한 발언을 내놨다. ‘청년의꿈’에 ‘윤석열 본심 드디어 드러났는데 보셨습니까’라는 제목의 질문이 올라왔는데, 이에 홍 시장은 “대통령도 사람입니다”라고 댓글을 달았다.
그리고는 “대통령도 사람인데 당대표가 화합적 리더십으로 당을 이끌지 않고 내부 불화만 야기하는 것을 보고 어찌 속내를 계속 감출 수가 있었겠나”라며 “이제 그만들 하고 민생을 돌보는 정치들 좀 해야 한다. 이러다간 어렵사리 잡은 정권이 더 힘들어질 수도 있다”고 했다.
뿐만 아니다. 홍 시장은 일선 경찰관은 물론, 야당의 강한 반발을 부른 경찰국 신설 논란에 대해서도 윤석열 정부를 두둔하며 7월 26일 자신의 SNS를 통해 “역대 어느 정권이 경찰 장악을 하지 않고 정권 운영을 한 적이 있느냐”고 반문했다. 그 전날에는 경찰 조직을 겨냥해 “검찰에 의한 통제도 벗어나고 모든 수사권을 장악하고 대통령실, 행안부 통제도 안 받겠다면 경찰 독립국을 만들겠다는 것이냐”고 따져 물으며 “참 간 큰 조직이 되어간다”고 일갈했다.
대구의 한 전직 국민의힘 의원은 홍 시장이 전당대회 등 향후 여권의 정치 구도에서 중요한 ‘키맨’이 될 수 있을 것이며 힘을 축적해 차기를 노릴 것이라고 예측하며 이렇게 분석했다.
“김영삼 정부 때부터 정치를 들여다봐온 정치 9단 홍 시장은 인사권과 예산권 등 임기 초반 대통령이 지닌 파워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사람이다. 이를 최대한 이용해 자신의 입지를 키우려는 전략으로 보인다. 정치적 의리를 중시하는 윤 대통령 입장에서도 이에 대한 정치적 보상을 하려고 할 가능성이 높다. 홍 시장은 충분한 정치적 노림수를 갖고 이런 행동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
#윤핵관은 흔들
윤석열 대통령 핵심 측근 그룹으로 지목돼온 ‘윤핵관’의 단일대오는 흔들리는 기색이 역력하다. 원내대표직 사퇴 압력까지 받은 권성동 원내대표는 가까스로 자리를 지켰지만 압도적 지지에 의한 당내 선택은 아니었다는 것이 중론이다. 장제원 의원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그는 권성동 원내대표와는 달리 당 지도부에 있지는 않아 화살은 덜 맞는 편이긴 했다. 최근엔 일단 소나기는 피하고 보자는 태도가 읽힌다. 당내 의사결정 전면에 나서지 않고 있는 것이다.
윤핵관 스스로 ‘자숙 모드’를 보인다는 해석도 있지만 여권의 정치적 리더라고 할 수밖에 없는 윤 대통령의 윤핵관에 대한 신뢰도가 예전만 못하다는 얘기도 나온다. 맡겨봤더니 득점은커녕 실점이 더 많더라는 이유에서다. 윤핵관이 비록 흔들리지만 녹다운 상태는 결코 아니라는 분석도 나온다. 윤핵관 중 한 명인 이철규 의원이 노른자위로 불리는 예결위 간사에 최근 선임된 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 이 의원은 이준석 대표와의 여론전에서도 맞대응에 나선 상황이다.
어쨌든 최근 여권 상황은 대통령 임기 초반 권력지형도가 지지율 급락으로 인해 인위적 재편 바람에 휩싸이면서 새로운 형태로 변이되는 전환 국면으로 해석된다. 비대위 출범, 전당대회를 통한 미래권력 탄생 준비를 하고 있는 여당이 불안정한 지반 위에서 시계제로의 안갯속 길을 따라 진격 행보를 하고 있는 것이다.
국민의힘의 한 당직자는 “정당생활을 돌아보면 임기 말 대통령의 지지율이 떨어지면 여러 새로운 세력이 등장해 당내 세력균형이 다극화된 체제로 가는데 지금은 임기 초반인데 그런 상황으로 가고 있다”며 “지지율이 반등하면 윤심이 다시 힘을 얻으면서 지금처럼 다극화되고 변동성이 큰 양상은 사라질 것인데 지지율 반등이 이뤄지지 못하면 권력 지형 변이는 더 잦아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
최경철 매일신문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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