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방송사냐보단 어떤 작품이냐’ 배우·광고주 드라마 선택 기준과 폭 달라져
#만약 지상파였다면?
가장 먼저 남자 주인공으로 강태오가 아닌 다른 스타급 배우가 캐스팅됐을 가능성이 높다. 주조연급인 강기영, 하윤경, 주종혁 등 법무법인 한바다의 동료 변호사 캐릭터와 우영우의 절친 ‘동그라미’ 역할의 주현영 등도 마찬가지다. 보다 유명하고 보다 인기가 검증된 배우들을 캐스팅해야 한다는 지상파 방송사의 요구가 제작사에 전달됐을 가능성이 크다.
시청자 입장에선 더 친숙하고 평소 좋아하는 배우들이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 더 많이 출연하는 게 좋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그런 출연진 버전의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가 지금보다 더 좋았을 것이라고 장담할 순 없다. 지금 출연진의 조화로운 하모니 역시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성공 요소 가운데 하나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시청자 입장에선 새로운 얼굴의 배우들을 애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며 그들이 스타로 떠오르는 순간을 목격하는 보너스도 누릴 수 있었다.
방송 관계자들은 가장 큰 변화로 우영우가 집착할 만큼 좋아하는 대상이 ‘고래’에서 다른 대상으로 바뀌었을 가능성도 크다고 지적한다. ENA 채널은 우영우가 좋아하는 고래를 표현하기 위해 상당한 비용을 고래 CG(컴퓨터그래픽)에 투자했다.
ENA 채널은 기존 skyTV와 미디어지니가 함께 출범시킨 ENA 브랜드 가운데 한 채널로 KT그룹 계열이다. KT그룹은 ENA 브랜드 출범을 대대적으로 홍보해왔고 첫 작품인 곽도원·윤두준 주연의 ‘구필수는 없다’가 다소 아쉬운 성적을 기록하자 두 번째 작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 집중 투자했는데 그 결과 제작비가 무려 200억 원가량 들었다. 그 결과 이제는 우영우를 통해 ENA 채널을 전 국민이 알게 되는 성과를 거뒀다.
드라마 초반부에는 지상파 방송사가 아니기에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는 PPL(간접광고)가 없어 보기 편하다는 시청자들의 의견이 많았다. 물론 드라마가 후반부로 접어들면서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도 PPL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당연히 지상파 방송사에서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가 방송됐다면 첫 회부터 PPL이 자주 등장했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지상파 방송사에서 방영됐다면 PPL은 더 늘어나고 고래 CG는 사라진 버전의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가 됐을 가능성이 크다.
#‘우영우’가 깬 기준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는 지상파 방송사가 아닌 신생 케이블 채널 ENA를 통해 방송됐고, 마지막 회에서 17.5%의 시청률을 기록하는 큰 성공을 거뒀다. 기대를 훨씬 넘는 성공은 방송가에 큰 변화를 불러올 수밖에 없다.
우선 배우들의 작품 선택 폭이 넓어지고 그 기준이 달라졌다. 드라마 시장은 오랜 기간 지상파 방송사들이 주도해왔는데 CJ ENM 계열 케이블 채널이 몇몇 드라마로 큰 인기를 얻으며 시장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이후 종합편성채널(종편) 방송사들에서도 좋은 드라마가 나오기 시작하면서 배우들이 더 이상 지상파 방송사 드라마에만 집중할 이유가 사라졌다.
이후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드라마)들이 국내 흥행은 기본, 글로벌 흥행에도 성공하면서 배우들의 선택 폭은 더 넓어졌다. 이후 다른 글로벌 OTT(온라인 동영상 서비스) 업체들이 연이어 국내 제작사와 손잡고 오리지널 콘텐츠들을 제작하기 시작했고, 이에 뒤질세라 국내 OTT 업체들도 오리지널 콘텐츠 생산에 돌입했다.
이러다 보니 배우들은 지상파 방송사 드라마보다 오히려 글로벌 OTT 업체의 오리지널 시리즈에 출연해 월드스타로 등극하는 꿈을 꿀 만큼 선택 기준이 달라졌다. 게다가 최근에는 iHQ 계열 채널과 AXN 채널 등 오리지널 콘텐츠 제작에 돌입한 케이블 채널도 급증했다. 여기에 최근 KT 계열 ENA 브랜드가 가세해 본격적인 오리지널 콘텐츠 생산에 돌입해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라는 초히트작을 내놨다.
아무리 선택의 폭이 넓어질지라도 배우들 입장에선, 그리고 이들의 소속사에선 조금이라도 검증된 채널을 통해 방송되는 드라마를 먼저 고려할 수밖에 없다. 여전히 지상파 방송사의 영향력은 유지되고 있고, 검증된 종편과 케이블 채널, 그리고 넷플릭스 등이 우선순위다. 디즈니 플러스(+) 등 다른 글로벌 OTT와 국내 OTT, 비교적 늦게 오리지널 콘텐츠를 제작하기 시작한 케이블 채널 등은 아무래도 배우들의 작품 선택에서 순위가 조금 밀릴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가 그런 기준을 깼다. 작품 자체만 좋다면 더 이상 어디서 방영되는 드라마냐를 굳이 따질 까닭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PPL 등 광고 시장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기존처럼 지상파와 종편 방송사, CJ ENM 계열 등 검증된 채널, 그리고 확실한 톱스타나 스타 제작진이 주도하는 드라마에 집중적으로 PPL 광고를 집행하는 방식이 오히려 더 위험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막강한 출연진과 제작진을 앞세운 tvN ‘지리산’의 경우 드라마 자체가 화제성과 흥행에서 낮은 점수를 받은 데다 과도한 PPL에 대한 지적이 넘쳐났다. PPL로 인한 매출 증대는커녕, 오히려 기업이나 브랜드 이미지를 깎아내릴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사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에 비교적 PPL이 적었던 이유 역시 대기업인 KT그룹 계열사인 ENA 채널이 200억 원의 막대한 제작비를 투자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ENA 채널이 비교적 잘 알려지지 않은 데다 드라마 자체에 대한 기대감도 낮았던 이유가 더 크다. 그러나 보니 제한적인 PPL만 이뤄졌다. 반면 그럼에도 작품 자체를 믿고 PPL을 집행한 기업과 브랜드는 쏠쏠한 홍보 및 매출 증대 효과를 누리게 됐다.
배우들 작품 선택의 폭과 기준이 달라지는 만큼 이제는 PPL 등 광고주의 선택도 그 폭과 기준이 달라지고 있다. 결과적으로 무한경쟁의 시대가 도래했다. 지상파 방송사의 황금시간대에 편성한 드라마와 신생 케이블 채널에 편성된 드라마가 동일 선상에서 경쟁하는 상황이 연출됐다. 지상파와 종편, 케이블과 국내외 OTT 등 매우 다양한 채널에서 거듭 오리지널 콘텐츠를 제작하는 데다 IT 기술의 발달로 채널은 보다 늘어날 전망이다. 이런 무한경쟁으로 인해 한국 드라마의 글로벌 경쟁력은 더욱 올라갈 것으로 기대된다.
신민섭 기자 leady@ilyo.co.kr
김소리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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