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노히트노런 메이커’로, 박 ‘국민 유격수’로 명성…정식 감독 승격 점쳐지지만 과거 사례 볼 때 안심 못해
8월의 시작과 함께 허삼영 삼성 라이온즈 감독도 자진 사퇴했다. 2019년 9월 삼성 사령탑에 오른 허 감독은 2년 차였던 지난해 팀을 정규시즌 2위에 올려 놓으면서 6년 만에 삼성의 가을야구를 이끌었다. 삼성은 이후 또 한 번의 '왕조' 구축에 나설 것으로 기대를 모았지만, 주축 선수의 부상과 부진 등이 겹치면서 올해 다시 하락세를 탔다. 특히 전반기 막바지부터 팀 창단 이후 최다인 13연패를 이어가면서 후반기 들어 9위까지 추락하자 허 감독은 결국 스스로 물러나기로 했다.
NC와 삼성은 나란히 감독대행 체제로 남은 시즌을 치르는 중이다. NC는 수석코치였던 강인권 코치가 사령탑에 올랐고, 삼성은 퓨처스(2군) 감독이었던 박진만 코치를 1군 감독대행으로 올렸다. 두 감독대행 모두 이전부터 자타공인 차기 감독감으로 꼽히던 인사다. 올해 잔여 시즌이 이들에게는 사실상의 '실전 시험대'인 셈이다.
#돌아온 스타플레이어
이동욱 전 감독과 허삼영 전 감독은 부임 당시 '파격 발탁'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둘 다 현역 시절 크게 이름을 날리지 못한 무명 선수 출신이라서다. 내야수 출신인 이 전 감독은 1997년 롯데 자이언츠에 입단한 뒤 1군 통산 143경기에 나와 타율 0.221를 기록했다. 6시즌 만에 방출되면서 일찍 유니폼을 벗고, 지도자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투수 출신인 허 전 감독은 1군 출전이 통산 4경기에 불과하다. 아마 시절 강속구 투수로 기대를 모은 유망주였지만, 삼성 입단 후엔 부상으로 재능을 꽃피우지 못했다. 은퇴 후 훈련지원요원으로 프런트 일을 시작했고, 감독이 되기 전까지 삼성의 전력분석 업무를 총괄했다. 프로 코치 경험조차 없는 상황에서 삼성 사령탑에 올라 야구계를 놀라게 했다.
전임자들과 달리 강인권 감독대행과 박진만 감독대행은 현역 시절 각자의 포지션에서 이름을 날린 선수였다. 강 감독대행은 한화 이글스(1995~1999년)와 두산 베어스(2002~2006년)에서 12년 동안 통산 710경기에 나온 포수 출신이다. 타격 성적이 화려하진 않았지만, 안정적인 투수 리드와 영리한 볼배합을 자랑하면서 내실 있는 포수로 인정을 받았다.
그에게 붙은 대표적 수식어 중 하나는 '노히트노런 메이커'다. 한 투수가 안타와 실점 없이 경기 전체를 책임지려면, 투수와 함께 호흡을 맞추는 포수의 역량도 뒷받침돼야 한다. 강 감독대행은 현역 시절 선수로 두 차례 노히트노런을 합작한 포수였다. 1997년 정민철과 호흡을 맞춰 KBO리그에서 역대 유일한 무사사구 노히트노런을 만들었고, 3년 뒤인 2000년에는 역시 한화에서 송진우의 노히트노런을 도왔다.
지도자로서도 세 차례 제자의 노히트노런을 지켜봤다. NC 배터리 코치였던 2014년에는 포수 김태군이 투수 찰리 쉬렉과 노히트노런을 해냈고, 2015년과 2016년에는 당시 두산에 함께 있던 포수 양의지가 유네스키 마야, 마이클 보우덴과 차례로 노히트노런을 합작해 강 감독대행에게 보람을 안겼다.
박진만 감독대행의 경력은 더 화려하다. 그는 KBO리그 역대 최고 유격수 중 한 명이다. 현대 유니콘스(1996~2004년), 삼성(2005~2010년), SK 와이번스(현 SSG 랜더스·2011~2015)에서 20년을 뛰었다. 2000년 시드니올림픽,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 2006년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2008년 베이징올림픽 등 숱한 국제대회에서 주전 유격수로 활약하면서 '국민 유격수'라는 별명도 얻었다.
2005년과 2006년에는 소속팀 삼성의 통합 우승을 이끈 일등 공신이었고, 유격수 부문 골든글러브를 총 5회(2000, 2001, 2004, 2006, 2007년) 수상하면서 당대 최고의 유격수로 명성을 떨쳤다. 특히 숱한 타자의 안타를 빼앗은 그의 유격수 수비 능력에는 '메이저리그급'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녔다. 통산 1993경기에서 타율 0.261, 홈런 153개를 기록해 공격력 역시 준수했다.
#준비된 감독대행
강인권 감독대행과 박진만 감독대행은 공히 '준비된 감독 후보'로 통했다. 특히 강 감독대행은 최근 수년간 프로야구 감독 자리에 공석이 생길 때마다 주요 후보 중 한 명으로 언급됐다. 김경문(전 두산·NC), 조범현(전 SK·KIA 타이거즈·KT 위즈), 김태형(두산) 감독 등 앞서 유능한 지도력을 보여준 포수 출신 사령탑들의 계보를 이을 1순위 적임자로 평가 받았다. 무엇보다 강 감독대행은 양의지(NC), 최재훈(한화), 박세혁(두산) 등 리그 대표 포수들의 성장에 큰 영향을 미친 '포수 조련사'로 정평이 나있다. 포지션 특성상 경기를 읽는 시야가 넓고, 야수와 투수 모두를 아우르는 포용력도 갖췄다는 주변의 얘기가 잇따르고 있다.
임시였지만, 팀을 이끌었던 경험도 있다. 지난해 9월 NC 핵심 선수들의 방역수칙 위반 사태가 불거지자 이동욱 전 감독은 선수단 책임자로서 책무를 다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구단으로부터 10경기 출장정지 처분을 받았다. 이때 수석코치였던 강 감독대행이 처음으로 대신 지휘봉을 잡고 1군 10경기를 소화했다. 올해 3월에는 이동욱 전 감독이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고 격리하게 돼 강 감독대행이 시범경기를 대신 이끌었다.
강 감독대행은 이 같은 경험을 살려 어수선한 팀 분위기를 빠르게 수습했다. NC는 강 감독대행이 팀을 이끌기 시작한 5월 11일 이후 5할 이상의 승률을 기록하는 등 서서히 정상궤도로 진입하는 분위기다. 팀 순위도 최하위권에서 중위권으로 상승했다.
박 감독대행 역시 허 전 감독이 사퇴하기 전부터 차기 사령탑으로 꾸준하게 거론됐다. 3년 전 김한수 전 감독의 계약이 만료됐을 때도 새 사령탑 후보로 이름을 올렸는데, '데이터 야구'에 무게를 둔 삼성이 허 전 감독을 선임하는 '모험'을 택하면서 시기가 미뤄졌다.
박 감독대행은 현대에 입단한 뒤 삼성을 거쳐 SK에서 은퇴했지만, 삼성의 전성기를 이끈 주역이라 삼성 색깔이 가장 강하다. 또한 현역 시절 주장을 자주 맡았던 터라 선수단을 아우르는 능력도 탁월하다는 평가다. 이전까지 1군 지휘 경험이 전무했던 박 감독대행은 빠르게 팀을 재정비해 안정적으로 남은 시즌을 치르기 위한 준비에 돌입했다. 특히 2군에서 컨디션이 좋았던 강한울을 곧바로 1군에 올린 뒤 2번타자로 파격 배치하는 수를 뒀는데, 강한울은 맹타를 휘두르면서 박 감독대행의 기대에 보답했다.
#바늘구멍과 같은 감독 자리
NC와 삼성 구단은 "감독대행 역시 차기 감독 후보일 뿐 아직 내정된 인물은 아무도 없다"고 가능성을 모두 열어뒀다. 하지만 야구 관계자들은 대부분 "남은 시즌 동안 큰 문제가 발견되지 않는 이상, 강인권 감독대행과 박진만 감독대행은 올 시즌이 끝난 뒤 '대행' 꼬리표를 뗄 가능성이 크다"고 점치고 있다. 두 감독대행에 대한 외부 평가와 팀 내 입지, 그간의 성과 등을 종합했을 때, 이들보다 나은 적임자를 찾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양 팀 선수들 역시 두 감독대행에 대해 호의적인 목소리를 내고 있다.
물론 아직 안심하기는 이르다. 과거 사례를 봤을 때, 감독대행에서 정식 감독이 된 경우는 많은 편이 아니다. 시즌 도중 감독이 물러날 정도로 바닥을 친 팀이 극적인 반등을 이뤄내기도 힘들고, '대행'으로서 자신의 색깔을 입히기도 쉽지 않다. 한 전임 감독은 "감독대행 체제에서 팀 성적이 이전보다 상승한다고 해서 모든 것을 감독대행의 역량이라고 평가할 수는 없다"며 "전임 감독이 떠나면서 일시적으로 분위기가 전환된 효과가 더 클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대행을 거쳐 정식 감독으로 계약한 인물은 총 14명이다. 이재우 윤동균(이상 OB) 이희수(한화) 유남호 서정환(이상 KIA) 유백만 천보성 김성근(이상 LG 트윈스) 이만수(SK) 강병철 김명성 우용득(이상 롯데) 강태정(청보 핀토스) 김준환(쌍방울 레이더스)이다. 양승호 전 롯데 감독은 2006년 LG에서 이순철 전 감독을 대행해 잔여 시즌을 치른 뒤 2012년 롯데에서 프로야구 감독이 됐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감독대행을 두지 않은 팀은 가장 늦게 창단한 막내구단 KT밖에 없다. KT는 1대 조범현 감독이 임기를 다 채우고 물러난 뒤 2대 김진욱 감독이 지휘봉을 잡았다. 김 감독은 2018시즌을 모두 마친 뒤 자리에서 물러났고, 3대 이강철 감독이 2019년부터 팀을 이끌었다.
역대 최초로 감독대행을 맡았던 인물은 프로야구 원년인 1982년 삼미 슈퍼스타즈의 이선덕 투수코치였다. 삼미 초대 사령탑인 박현식 감독이 13경기 만에 3승 10패(승률 0.231)라는 저조한 성적을 남긴 채 물러나자 대신 지휘봉을 잡았다. 이 감독대행은 실업야구를 주름잡은 명투수 출신으로 1990년대까지 삼미, 태평양 돌핀스, 쌍방울 등에서 투수코치로 일하면서 많은 선수를 키웠다. 실업야구 시절 감독 경험도 있었지만, 잔여 67경기 12승 55패(승률 0.179)로 삼미의 반등은 일궈내지 못했다. 삼미는 역대 한 시즌 최저승률 0.188(15승 65패)로 시즌을 마쳤다.
대행 꼬리표를 떼고 사령탑이 된 첫 사례는 강병철 전 롯데 감독이 남겼다. 강 감독은 1983년 7월 박영길 초대감독이 사임하자 대신 지휘봉을 잡았다. 그리고 1984년 롯데 2대 감독으로 정식 취임해 창단 첫 한국시리즈 우승을 일궜다. 롯데에서는 이후 같은 사례가 두 번 더 나왔다. 1998년 6월 김용희 감독이 떠나면서 김명성 감독대행이 바통을 이어 받았고, 1999시즌에 앞서 정식 감독으로 취임했다. 다만 건강 악화로 2001년 7월 퇴진했다. 이때 빈자리를 채운 우용득 감독대행은 남은 시즌을 무사히 마치고 이듬해 감독이 됐지만, 한 시즌을 채우지 못하고 2002년 6월 중도 퇴진했다.
유남호 전 KIA 감독은 무려 다섯 번이나 감독대행을 맡은 역대 최다 경험자다. 주로 '코끼리' 김응용 감독을 대신해 감독석을 지켰다. 다혈질인 김 감독이 심판에게 항의하다 퇴장당한 뒤 그 자리를 메우는 식이었다. 1998년 9월 4일, 1999년 5월 1일, 2000년 9월 1~3일, 2000년 10월 5일처럼 하루 혹은 사흘 정도 팀을 대신 이끄는 경우가 많았다.
한 시즌의 절반 이상을 대행으로 팀을 이끌었던 대행들도 바늘구멍을 통과하지 못했다. 2017년 이상군 한화 감독대행은 101경기, 2018년 유영준 NC 감독대행은 85경기를 이끌었지만, 구단은 각각 한용덕, 이동욱 감독을 새로운 사령탑으로 앉혔다.
공교롭게도 삼성과 NC 모두 단 한 번도 감독대행이 감독으로 승격한 사례가 없다. 삼성은 1983년 5월 재일교포 이충남에게 서영무 감독의 대행을 맡긴 뒤 차기 감독까지 맡기려 했지만, 팬들의 반대가 거세 결국 무산됐다. 1997년 백인천 감독 대신 팀을 이끈 조창수 감독대행은 그해 포스트시즌까지 치렀지만, 역시 차기 사령탑으로 서정환 감독이 선임돼 승격이 불발됐다. NC는 2017년 6월 초대 사령탑인 김경문 감독이 중도 퇴진한 뒤 수석코치나 2군 감독이 아닌 유영준 당시 단장이 지휘봉을 잡아 남은 시즌을 이끌었다. 그동안 볼 수 없었던 파격적인 행보로 철저한 '프런트 야구'를 천명한 셈이다. 시즌 종료 후엔 무명 선수 출신인 이동욱 코치를 새 감독으로 뽑아 이런 방침을 더욱 확실하게 드러내기도 했다. 박진만 감독대행과 강인권 감독대행이 다음 시즌 새 감독으로 선임된다면 둘 다 구단 최초의 역사를 남기는 셈이다.
배영은 중앙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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