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름떼 지지자 BBK 주가조작사건 관련 허위사실 유포 혐의로 징역 1년의 실형이 확정된 ‘나꼼수’ 멤버 정봉주 전 민주당 의원이 12월 26일 지지자들에게 둘러싸인 채 서울중앙지검에 출석하고 있다.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
무성한 뒷말과 숱한 의혹을 뒤로한 채 잊히는 듯했던 ‘BBK 사건’이 정 전 의원의 수감을 기폭제로 새 국면을 맞고 있다. 지난해 12월 22일 대법원은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정 전 의원에게 징역 1년을 확정했다. 정 전 의원은 지난 대선 직전 “이명박 대통령이 BBK의 실소유주”라고 주장하며 ‘BBK 저격수’ 역할을 맡았다. BBK 사건과 관련한 허위사실 유포 혐의 등으로 기소돼 징역 1년형이 확정돼 12월 26일 구속수감된 정 전 의원은 수감 직전에 “교도소에는 쥐약을 놓을 수가 없어서 제가 쥐 잡으러 간다. 오늘은 진실이 갇히지만 내일은 거짓이 갇힌다”고 주장했다.
정 전 의원이 수감되자 통합민주당은 12월 28일 ‘정봉주 구명위원회’를 구성했다. 법무장관을 지낸 천정배 의원이 위원장을 맡고, 우윤근 박영선 이춘석 의원 등 국회 법사위원들이 구명위원으로 임명됐다. 대법원 확정판결로 유죄가 확정된 전직 의원을 구명하기 위해 당이 공식 위원회까지 꾸린 것은 극히 드문 사례다.
민주당은 또 수감 중인 정 전 의원을 위원장으로 하는 BBK 진상조사위원회도 이날 가동했다. 박영선 의원과 김현미 최재천 정성호 서혜석 전 의원 등 과거 BBK 의혹을 파헤치는 데 관여한 전·현직 의원들이 대거 참여했다.
구명위원장을 맡은 천정배 의원은 “정 전 의원을 구출하기 위한 전쟁을 시작한다. 법적·정치적 모든 수단을 활용해 대대적인 구명운동을 벌이겠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또한 최영희 최고위원은 “박근혜 한나라당 비대위원장의 BBK와 정 전 의원의 BBK가 서로 다른 것이 아니다”며 박 위원장을 직접 겨냥하기도 했다.
‘정봉주 구명위원회’는 현행 공직선거법을 개정하는 내용의 이른바 ‘정봉주법’을 추진하는 동시에 시민사회가 참여하는 공동대책위원회를 구성해 서명운동, 청와대 1인시위, 법무부 장관 항의방문 등을 전개한다는 방침이다. 또한 전세계 비정부기구(NGO)와 엠네스티 유엔인권이사회 등에 이번 사건을 알리는 국제활동도 병행할 계획이다.
정치적 이슈로 재부상한 BBK 사건의 불똥은 박근혜 위원장에게도 튀고 있다. 정 전 의원의 팬클럽 회원인 김 아무개 씨가 최근 박 위원장을 고발했기 때문이다. 서울남부지검은 박 위원장이 “BBK 사건과 관련한 허위사실을 유포해 이명박 대통령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고발장이 접수돼 수사에 착수했다고 12월 29일 밝혔다.
고발인인 김 씨는 정 전 의원이 BBK 관련 발언으로 대법원에서 유죄 확정 판결을 받은 것에 반발해 BBK 관련 발언을 한 적이 있는 박 위원장을 고발한 것으로 전해졌다. 실제로 박 위원장은 2007년 대선 당시 한나라당 경선 과정에서 이명박 후보의 BBK 실소유주 문제와 관련해 의혹을 제기한 바 있다.
원혜영 민주통합당 공동대표도 12월 27일 자신의 블로그를 통해 박 위원장을 겨냥했다. 원 대표는 ‘진실을 밝히고자 감옥으로 간 사나이 그는 다시 돌아와야 합니다’라는 글은 통해 “진실을 밝히려 분투하다 오히려 감옥에 간 사나이 정봉주 전 의원을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다”며 비통함을 전했다.
그는 특히 “BBK 의혹을 가장 먼저, 가장 강력하게 제기했던 집권 여당의 박근혜 의원은 여당의 비대위원장에 올라 비대위원 인선에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는 반면 정 전 의원은 정권에 위협이 되는 ‘나는 꼼수다’의 맴버여서 억울하게 감옥에 들어가게 된 것이 아닌지 불공정과 몰상식 앞에 국민들은 분노한다”고 주장했다.
BBK 사건 판결을 둘러싼 형평성 논란이 증폭되고 있는 가운데 홍준표 전 한나라당 대표는 “두 가지가 서로 다른 문제”라는 이색적인 주장을 펼쳤다. 12월 26일 모 방송에 출연한 홍 전 대표는 “친박(친 박근혜)에서 BBK가 이명박 후보 소유라고 주장했지만 그건 가치판단의 문제였다. 객관적 팩트를 둔 공방전이 이뤄진 것은 당내 경선이 아닌 대선 때”라고 말했다. 홍 전 대표는 정 전 의원의 의혹제기와 관련해선 “사법부의 판단은 당시 정 전 의원이 내놓은 자료 중 상당수가 허위였다는 것이지 정치적 평가 부분이 허위였다는 것은 아닐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처럼 양측의 주장이 엇갈리고 있는 가운데 편지 조작 및 기획입국설과 관련한 실체적 진실은 검찰 수사를 통해 가려질 것으로 보인다. 특히 검찰이 양측의 주장에 대한 진위를 가리는 과정에서 편지 작성의 배후가 드러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특히 신명 씨가 주장한 대로 편지 조작 배후가 드러날 경우 기획입국설과 맞물려 상당한 후폭풍을 몰고 올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검찰은 김 씨의 고소 건을 4년 전 BBK 의혹 사건을 수사했던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에 배당해 수사를 본격화하고 있다. BBK 사건에 대한 사실상의 재수사가 진행되고 있는 형국이다.
미국 법원에서 진행되고 있는 BBK 투자금 반환소송도 새 뇌관으로 부상하고 있다. BBK 주가조작 피해자들은 미국 법원이 김경준 전 BBK 대표와 ㈜다스 사이의 민사소송이 취하되자 ‘소송 취하 승인’을 취소하라고 미국 법원에 항소를 제기한 상태다. 지난해 12월 4일 미국 법원 기록공시 인터넷 사이트에 따르면 옵셔널캐피털은 지난해 11월 17일 연방법원 캘리포니아주 중앙지원이 ㈜다스가 김경준 씨를 상대로 진행하던 민사소송 취하를 승인하자 나흘 뒤 미국 연방 제9 항소법원에 민사소송 취하 승인은 부당하다며 항소한 것으로 밝혀졌다.
옵셔널캐피털은 김 씨가 BBK 주가조작 사건 때 동원한 회사이고, 옵셔널캐피털 주주들은 김 씨와 누나 에리카 김이 회사돈 371억 원을 횡령했다며 미국 법원에서 이를 돌려달라는 민사 소송을 벌이고 있다.
이에 앞서 지난 2003년 김 씨가 140억 원을 빼돌렸다며 투자금 반환소송을 냈던 ㈜다스는 지난해 2월 돈을 돌려받자 소송을 취하했지만 미국 법원은 돈의 출처가 의심스럽다며 소송 취하를 받아들이지 않았었다. 이런 와중에 미국 법원이 갑자기 ‘소 취하’를 승인하자 옵셔널캐피털이 반발하고 나선 것이다. 옵셔널캐피털은 김 씨가 ㈜다스에 건넨 140억 원은 원래 옵셔널캐피털 소유라고 주장하고 있다.
따라서 미국 연방항소법원이 이 항소를 받아들일 경우 BBK와 다스, 김 씨와 누나 에리카 김 등을 둘러싼 각종 의혹이 미국 법원을 통해 가려질 수 있는 기회가 되살아날 수 있다는 점에서 이해 당사자들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정 전 의원의 수감을 기폭제로 수면위로 재부상한 BBK 사건의 뇌관이 곳곳에서 꿈틀거리고 있는 형국이다. 숱한 의혹과 무성한 뒷말이 끊이질 않고 있는 BBK 사건이 이번에도 변죽만 울리고 마무리될지 아니면 휘발성이 강한 시한폭탄으로 정국을 강타할지 국민적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홍성철 기자 anderia10@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