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한민 감독 시도 “이해 도움” “몰입 방해” 찬반론…OTT에선 이미 콘텐츠 즐기는 새 방식 정착
하지만 최근 “자막을 보며 콘텐츠를 즐긴다”는 목소리가 점차 커지고 있다. 생경한 풍경인데, 이런 흐름에 동참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는 것은 콘텐츠를 소비하는 과정에서 무언가 변화가 생기고 있다는 방증이다. 그 변화는 과연 무엇일까.
#‘한산’의 한글 자막을 둘러싼 호불호
‘한산: 용의 출현’의 하이라이트는 막판 50분가량 이어지는 해상 전투 장면이다. 전투가 시작됨과 동시에 스크린 하단에는 자막이 붙는다. 이 장면에 대한 시선은 엇갈린다. “작품 이해에 도움이 됐다”는 긍정과 “작품 몰입에 방해가 됐다”는 부정이 부딪히는 모양새다.
전자의 경우, 해상 전투 장면에서 자칫 효과음에 묻힐 수 있는 대사를 정확히 전달하는 데 도움이 됐다는 입장이다. 이 장면은 물, 북과 징, 대포 소리 등이 한데 뒤섞여 전장의 한복판에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이 엄중한 상황 속에서 배우들은 목소리를 높여 대사를 읊는다. 하지만 강렬한 효과음을 넘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김한민 감독은 자막을 통해 이런 우려를 씻었다.
김 감독은 개봉 후 언론 인터뷰에서 “전쟁의 밀도감을 높이기 위해 사운드의 힘이 필요했다. 대사를 잘 전달하려면 이 사운드를 눌러버려야 했다”면서 “대사가 안 들린다는 원망을 들으면 안 되지 않나. 그래서 전쟁을 생생하게 표현하기 위해 자막을 쓰기로 했다. 고뇌에 찬 결단이었다”고 설명했다.
김 감독이 ‘고뇌’라는 단어를 쓸 만큼, 한국 영화에 한글 자막을 붙이는 것은 새로운 시도였다. 그런 만큼 불편하다는 시선도 존재했다. 자막이 붙으면 자연스럽게 눈이 자막으로 갈 수밖에 없다. 그 사이 빠르게 지나가는 장면을 놓치게 된다. 한국 영화에 한글 자막을 붙이는 행위 자체에 대한 거부감을 호소하는 이들도 있다. 일종의 사족이라는 의미다.
하지만 찬찬히 살펴보면, 과거에도 한국 영화에 한글 자막을 입힌 사례는 있었다. 2021년 개봉한 영화 ‘모가디슈’와 ‘강철비2: 정상회담’이다. 두 영화의 공통점은 ‘북한 사투리’가 등장한다는 것이다. 등장인물들이 북한 사투리를 구사하는 장면에서 한글 자막이 쓰였다. 하지만 이번처럼 그 시도가 화제를 모으진 않았다. “북한 사투리를 알아듣기 힘들다”는 관객의 불평이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실제로 2018년 개봉했던 영화 ‘PMC: 더 벙커’에서는 배우 이선균이 연기한 북한 의사의 사투리가 잘 들리지 않는다는 반응이 많았다.
최근에는 TV에서도 한글 자막을 볼 수 있었다. 노희경 작가가 쓴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가 대표적이다. 제주도를 배경으로 한 이 드라마 속 주인공들은 대부분 제주도 사투리를 구사한다. 제주도 사투리는 표준어와는 거리가 멀다. 경상도나 전라도 사투리처럼 대중에게 자주 노출되지도 않는다. 결국 제작진은 시청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자막을 입혔다.
한 방송 관계자는 “최근 콘텐츠들의 자막 사용이 더 빈번해지고 있다. 한국 작품이니까 한글 자막은 어울리지 않는다는 것이 오히려 하나의 편견일 수 있다”면서 “각 상황에 맞게 자막을 적절히 사용하면 오히려 대중의 시청 편의성을 높일 수 있다”고 말했다.
#넷플릭스의 영향인가
콘텐츠를 즐길 때 제공되는 자막은 ‘개방형 자막’과 ‘폐쇄형 자막’으로 나뉜다. 개방형 자막은 콘텐츠를 소비하는 모든 이들이 접하는 자막 형태이고, 폐쇄형 자막은 자막을 필요로 하는 이들에게 특정 기기나 화면 조작을 통해 서비스를 제공하는 형태다. 대표적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인 넷플릭스는 확보된 대다수 콘텐츠에 자막 서비스를 제공한다. 약 29개 언어를 자막으로 볼 수 있고, 한글도 여기에 포함된다. 그리고 넷플릭스 이용자 가운데 “콘텐츠를 볼 때 자막을 켠다”는 이들이 적잖다.
이는 빠른 시간 안에 콘텐츠를 보려는 이용자들의 소비 패턴과도 맞물린다. 넷플릭스는 콘텐츠를 1.25배속 혹은 1.5배속으로 볼 수 있는 기능을 제공한다. 이 경우 등장인물들의 대사 처리 속도도 빨라진다. 당연히 집중해서 듣지 않으면 이해도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이런 경우, 자막을 활용하면 보다 정확하게 콘텐츠를 이해할 수 있다.
공공장소에서 스마트폰으로 콘텐츠를 즐기는 이들에게도 자막은 유용하다. 굳이 이어폰을 사용하지 않아도 자막 서비스를 통해 콘텐츠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시끄러운 지하철이나 버스의 경우, 이어폰을 사용하더라도 소음을 이기기 위해 필요 이상으로 볼륨을 높이곤 한다. 이는 귀에 무리를 준다. 자막이 이런 불편함으로부터 자유를 주는 셈이다.
이런 흐름에 발맞춰 넷플릭스뿐만 아니라 웨이브나 티빙 같은 토종 OTT들도 점차 한글 자막 서비스를 늘려가는 추세다. 특히 의학물이나 법정물처럼 전문 용어 사용이 빈번한 콘텐츠의 경우, 자막이 이용자들의 이해도를 크게 향상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김소리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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