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19회를 맞은 평창대관령음악제는 고대 그리스 '호메로스 찬가' 중 '대지의 여신: 가이아에게'를 읊으며 4개의 화분을 타악기 삼아 연주하는 무대로 시작을 알렸다. 지난해 작고한 프레데릭 르제프스키의 ‘대지에(To the earth)’를 메튜 에른스터가 연주한 이 무대는 팬데믹으로 동면에 들어갔던 인류의 축제들이 깨어나기 시작한 첫 여름의 축제라는 점에서 감응을 더했다.
이어서 이번 축제의 예술감독인 피아니스트 손열음과 함께 플루티스트 조성현, 첼리스트 김두민이 조지 크럼 작곡의 ‘고래의 노래’를 연주했다. 몽환적 분위기에서 다양한 현대적 기법으로 뿜어내는 악기들의 사운드 결합으로 해양의 누적된 시간과 혹등고래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인간의 존재감이 투사되는 것을 최소화하고자 마스크를 쓴 채 연주하고 푸른 조명으로 무대를 감쌌다. 작곡가는 이를 통해 ‘자연의 존재와 비인간적인 힘’을 얘기하고 싶었다고 한다. 1971년에 작곡가가 들은 혹등고래 소리의 영감으로 인간과 비인간, 자연과 지구의 수명에 대한 성찰을 음악으로 풀었다. 반백년이 흐른 오늘날, 작곡가의 성찰이 더욱 더 날카롭게 와닿는다.
뜨거운 여름이 다가오면 어김없이 찾아오는 것 중 하나가 음악제다. 연간 세계적인 연주자의 무대가 국내 곳곳에서 열리지만, 음악제는 집중된 시기에 특정 공간에서 세계적인 연주자들을 모아낸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관객은 반복적으로 찾는 자신의 여름 음악제 리스트를 만들기도 한다. 음악가들에게도 동료들을 만나고 새로운 앙상블 연주를 시도하며 미래의 후배들을 양성하는 교육과 대화에 기꺼이 함께하는 일종의 커뮤니티를 확인하는 장이 된다. 19년 전 2주간의 숙식을 함께하는 아카데미를 병행했던 대관령음악제 때는 그 양상이 더욱 두드러지기도 했다.
미국과 유럽에서는 음악제가 5월 중순부터 9월 사이 활발하게 열린다. 운신이 비교적 자유로워진 음악가들과 단체들을 섭외해 도심에서, 산속에서, 너른 파크(공원)에서 클래식 음악의 접점을 넓히는 시기다. 음악가들도 역시 자연 속에서, 동료들 안에서 음악을 하는 즐거움을 누리는 휴식 같은 무대로 여긴다. 오케스트라단에도 여름의 일부를 기꺼이 투척하는 페스티벌 리스트가 있다. 보스턴 심포니의 탱글우드나 시카고심포니오케스트라의 라비니아페스티벌, L.A.필하모닉의 헐리우드볼은 오케스트라가 위치한 홈 도시에서 열리는 음악제다. 뉴욕필하모닉과 필라델피아오케스트라가 인연을 맺은 브라보베일밸리, 세계 40여 개 오케스트라 단원들로 임시 오케스트라를 구성하는 콜로라도 뮤직페스티벌, 다음 세대 음악가들의 학습과 성장의 장을 세계적 연주자들과 함께 만드는 아스펜 음악제와 스쿨 등도 유명하다. 특히 아스펜음악제와 스쿨은 평창대관령음악제가 지향하는 모델이다.
유럽에서도 음악가들이 초청받고 싶어하는 페스티벌이 줄이어 펼쳐진다. 런던의 로열알버트홀을 중심으로 8주간 열리는 BBC프롬, 음악의 도시 잘츠부르크 뮤직페스티벌, 오페라인들을 모으는 베이루스 페스티벌, 스위스의 루체른 음악페스티벌이 대표적이다. 그런가 하면 오페라로 특화해 고대 로마 원형경기장에 1만 5000명의 관객을 모으는 베로나, 오페라의 정수를 무대에 올리는 바이로이트, 영국의 작은 시골마을에서 제작한 오페라로 전 세계 애호가를 끌어들이는 동시에 지역민의 예술활동 참여 플랫폼으로서 역할을 하는 글라인드본 페스티벌이 있다. 작은 규모지만 실내악 연주자들이 전 세계에서 모여들어 음악가와 주민, 관객이 함께 어우러지는 쿠오모 챔버도 손꼽히는 페스티벌이다.
오감이 최대치로 열리는 듯한 여름날, 음악제의 풍요로운 스토리는 감각과 기억에 오롯이 새겨진다. 장소와 계절이 제공하는 자유로움과 포용성은 음악가들의 새로운 시도와 목소리를 더욱 다채롭고 선명하게 한다. 마주앉은 관객들도 팡파르를 불 준비가 돼 있다. 도시와 자연 속, 그 어디든 음악제는 우리를 새로운 공간과 시간으로 이동시킨다. 19년 전 찾았던 평창대관령음악제는 해질녘 야외 잔디에 둘러앉아 관람하는 우리 가족에게 평화로움을 선사했다면, 올해 음악제는 인류와 개인이 처한 치명적인 현실과 성찰이라는 조금은 무거운 질의를 건네받은 음악제로 새겨질 것이다.
여름은 음악제의 시즌이다. 이건 누군가에게는 당연하고 누군가에게는 의아한 명제일 것이다. 청소년 시절 가족과 미국 여행 중 우연히 들른 공원에서 음악제가 열리고 있었다. 그때 즐겁게 놀랐던 감각이 내게는 하나의 기점이 되었다. 뉴욕필하모닉에서 근무하던 때에 여름 센트럴파크 공연에 최대한 많은 유학생들을 모아 피크닉 연주의 경험을 나눴다. 누구든 여름철 온전히 열림 오감으로 클래식음악의 시공간 감각을 한 번 경험하면, 음악으로 체화된 몸과 마음의 즐거움을 잊을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국내에서도 평창대관령음악제 외에도 서울의 예술의전당 여름음악축제, 롯데콘서트홀의 클래식 레볼루션, 힉 엣 눙크! 페스티벌, 대구현대음악제, 계촌 클래식 축제, 제주국제관악제, 신생의 여수음악제 등 감각의 접점을 만들 수 있는 기회들이 활짝 열리고 있다.
아스펜음악제의 올해 주제가 ‘정체성’이라고 한다. 하지만 주제를 굳이 레퍼토리로 연결 짓지 않았다고 한다. 작품 하나하나에 작곡가뿐 아니라 연주자 자신이 짓는 무대에 반영되는 정체성에 대한 고찰을 관객들과 각자의 무대 자체로 감응한다는 점에서다. 음악이, 연주가 그렇다. 그 연주가 대화하고자 마주하는 관객에게 전해지는 진한 감응의 시작점이 그러하기에 나를 다시 찾아가고자 하는 회복, 복원의 시기인 이때 음악제에, 음악회에 눈을 돌려볼 것을 권한다.
서지혜 인컬쳐컨설팅 대표이자 한국예술종합학교 겸임교수는 예술경영과 예술교육, 문화정책 분야에서 연구와 사업 기획, 컨설팅, 인재양성 활동을 통해 예술과 시민의 삶 사이 간극을 좁히고, 의미 있는 접점과 관련성을 형성하는 데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음악가들의 사회에서의 존재에 대한 인식과 실천적 활동을 넓히기 위해 ‘사회참여적음악가네트워크’를 발족했으며, 저서로는 ‘한국형 엘시테마: 아동청소년오케스트라 일궈가기’가 있다.
서지혜 인컬쳐컨설팅 대표